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 등 20년째 같은 이름만 불려 ‘전성기이자 정체기’
1946년부터 프랑스 칸에서 시작돼 매년 개최되는 칸 국제영화제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전 세계 영화인 누구나 수상은 못할지라도 공식 레드카펫에 한 번 서보고 싶어하는 권위 있는 영화제다.
지금이야 한국 영화가 급성장해 황금종려상 수상작도 나왔고 한 해에 2개의 경쟁부문 수상까지 일궈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공식 경쟁부문 후보작만 등장해도 환호했던 게 우리 현실이다. 그만큼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의 첫 번째 의미는 2편이나 경쟁부문 후보작을 배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수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당연히 기쁜 소식이지만 영화계 일각에선 우려 섞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6월 8일 개봉 예정인 영화 ‘브로커’가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서 공개되면서 이런 반응이 더 커지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우려는 20여 년째 한국 영화계가 새 인물을 발굴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수상 소식 대부분 일부 거장 감독들에게만 집중돼 있다. 이번에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봉준호 감독, 홍상수 감독, 이창동 감독 그리고 세상을 떠난 고 김기덕 감독 등이다.
2004년 제5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시작으로 2009년 제62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2007년 제57회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2011년 제61회 베를린 영화제 단편영화부문 황금곰상, 그리고 올해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 등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은 말 그대로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다.
또한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칸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그 기세는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 4관왕으로 이어졌다. 또한 홍상수, 이창동, 고 김기덕 감독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자주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끈 감독들이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평론가는 “이들의 등장으로 한국 영화를 향한 전세계 영화인의 시선, 특히 세계 3대 영화제가 열리는 유럽에서의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며 “문제는 20여 년째 이들의 이름만 보인다는 점이다. 대를 이을 새로운 감독, 20여 년 전 그들이 그랬듯 새로운 미학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감독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금이 한국 영화의 전성기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정체기라는 지적이다.
영화계에서는 다양한 원인이 거론된다. 우선 상하 수직적 도제식 교육을 통해 영화감독이 배출되던 시기에 등장한 앞서의 거장들과 달리 요즘 감독들은 보다 참신하고 독창적인 영화를 선보이곤 하지만 데뷔작의 기세를 잘 이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등장 등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과거처럼 극장 개봉용 영화에 소위 인재들이 몰리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극장 개봉 영화 외에도 방송 드라마, OTT 오리지널 영화와 시리즈(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점도 분명 긍정적이만 그 반작용으로 거장급 한국 영화감독의 탄생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거듭된 영상산업의 상업적인 발전이 오히려 예술성은 도태시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5월 31일 ‘브로커’가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이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국내 영화인과 관객들도 늘어나고 있다. 분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거장이고 송강호도 뛰어난 배우지만 칸에서 12분 동안이나 기립박수가 이어지고 남우주연상까지 받을 만한 걸작이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체적으로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중기작들에 비해 힘이 많이 빠져 있다는 평이 이어졌다. 2018년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음에도 ‘어느 가족’ 개봉 당시 제기됐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브로커’로 이어지고 있다.
송강호의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대다수의 영화인과 관객들이 반기는 분위기지만, 그 작품이 ‘브로커’라는 점에선 의아하다는 반응도 많다. 더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 영화들에 비하면 ‘브로커’에서의 송강호의 캐릭터와 연기는 다소 아쉬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에선 ‘전관예우’ 논란까지 이어졌다. 송강호가 2021년 제7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이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출신 후보라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이 전관예우로 남우주연상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개연성이 있다. 칸 영화제는 한 편의 영화가 아닌 그동안 칸에서 소개된 영화들에서 보여준 성과까지 감안해 수상자를 선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감독주간), 2007년 ‘밀양’(경쟁부문),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비경쟁부문),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경쟁부문),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경쟁부문), 2021년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비경쟁부문)에 이어 올해 ‘브로커’(경쟁부문)로 일곱 번째 칸을 찾아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결국 ‘브로커’에서의 성과뿐 아니라 7번이나 칸 영화제를 찾은 꾸준한 활동, 다양한 영화에서 보여준 송강호라는 배우의 성과가 더해져 수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제가 뭔가를 했다기보다는 송강호 씨가 그동안 이뤄낸 성과”라며 “솔직히 제 영화로 받아서 송구한 마음이 있다”고 했고 박찬욱 감독 역시 “기다리니 때가 왔다”고 평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