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컬쳐랩 대표 ‘aT 상표 무단 사용’ 주장, 스타트업 IP 보호 장치 마련 목소리…aT “시즈닝 포괄적 의미”
#'김치 시즈닝' 최초 개발자가 분노한 이유
지난 6월 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김춘진 aT 사장이 아니타 본즈 워싱턴D.C 의원으로부터 ‘워싱턴D.C 김치의 날’ 제정 결의안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자료에는 올해는 김치뿐 아니라 김치 시즈닝 등 다양한 김치 가공품 수출에도 힘을 쏟고, 이들 김치 가공품을 국가대표 수출품목으로 발굴·육성하는 ‘미래클 K-Food 프로젝트’로 선정해 육성 중이라고 내용이 담겼다.
이 보도자료에 대해 김치 시즈닝을 최초로 개발한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는 특허권, 상표권 등의 지식재산권(IP)을 정부에서 탈취하는 행위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 6월 6일 안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장에서 카피 제품이 나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정부가 스타트업에서 피땀 흘려 일군 브랜드와 네이밍을 그저 홍보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행태에 정말 화가 난다”며 “aT가 카피 제품을 만드는 곳을 지원해주는 반면 원 창작자에 대한 지원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T의 지원 업체로 선정된 소스·파우더 전문제조기업 상경에프앤비는 김치 시즈닝, 김치 케첩 등 김치 가공품 개발에 착수해 곧바로 해당 제품을 출시했다. 지난해 상경에프앤비의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3% 증가한 19억 8900만 원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의 대표는 “식품 회사가 직접 공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푸드컬쳐랩은 스타트업 특성상 공장을 갖고 있지 않고 지분 투자만 한 상황이라 원 창작자임에도 지원을 못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푸드컬쳐랩은 한국에 ‘김치 시즈닝’ 상표권 출원을 완료했고, 중국과 일본, 미국 등 해외에도 상표권 출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치 시즈닝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도 출원했다. 안태양 대표는 2016년 10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김치 시즈닝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이를 토대로 2018~2019년 제품 개발에 착수해 프로토타입(시제품) 개발을 완료했다.
2019년 9월 시제품은 세계 최대 식품 박람회 ‘SIAL INDIA’에서 혁신상 은상을 수상했다. 2020년 3월 시제품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 시범 판매했고, 3개월 뒤 본격 입점해 칠리 파우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현재까지도 해당 부문 정상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2020년 11월에는 비건 인증을 취득하며 푸드컬쳐랩 자체 브랜드 서울시스터즈의 김치 시즈닝이 완성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 관계자는 “자료에 사용된 시즈닝이라는 용어는 김치를 활용한 가공품을 뜻하는 포괄적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사익을 위한 상업적인 목적으로 특정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어서 상표권 침해라 하기 어렵다”며 “원 창작자가 소유한 '김치 시즈닝' 해당 상표는 문자로만 이뤄진 단일 상표가 아닌 도형과 일체로서 등록된 도형복합상표로, 공사가 언급한 김치를 베이스로 하는 가공품으로서의 김치 시즈닝 제품군 전체를 말하는 표현과 해당 상표를 혼동할 가능성은 낮으므로 상표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수출지원사업은 aT수출지원종합시스템을 통해 신청한 업체를 대상으로 공정한 평가 절차를 거쳐, 업체 선정·지원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고도 못 지키는 스타트업의 권리
지원 제도의 맹점 때문에 정작 원 개발자는 혜택을 못 보는 사이,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서울시스터즈의 ‘김치 시즈닝’은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끈 후 방송을 통해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2020년 12월 9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월드클래스 특집 2탄을 맞아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인물들을 소개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는 자사 브랜드 서울시스터즈와 직접 연구개발(R&D)을 통해 내놓은 첫 제품 김치 시즈닝 등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방송 이후 이름, 가격, 패키지 디자인까지 유사한 김치 시즈닝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통업계는 협업 형태로 접근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서울시스터즈 김치 시즈닝’ 팝업 스토어를 명동, 강남점 지하 1층 식품관에 열었다. 이마트 전국 매장에 서울시스터즈 제품을 매대 전면에 배치했고, SSG닷컴에 제품을 입점시켰다. 올해 이마트24는 서울시스터즈의 고추장핫소스를 활용한 도시락, 김밥, 주먹밥, 햄버거, 냉장라면을 출시했다. 서울시스터즈는 BGF리테일 위탁생산(OEM) 덕분에 짧은 기간 내에 취급 품목수(SKU)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김치아몬드, 김치바삭김, 김치볶음밥, 김치큐브닭, 김치우동 등이 이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제품이다. 홈플러스는 팔도, 서울시스터즈와 협업해 ‘팔도 서울시스터즈 김치짜장면’을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기업의 진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대상 청정원은 와디즈에서 올해 3월 19일부터 28일까지 10일간 펀딩을 진행한 후 김치·고추장 시즈닝을 출시했다. 대상 관계자는 “청정원의 종갓집 김치, 순창 고추장을 조금 더 쉽고 간판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시즈닝을 개발했다.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제품이라 타 업체에서 따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스타트업이 상표권을 지키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재단법인 경청의 ‘2021년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영업비밀 유출과 기술탈취, 권리침해 등의 법률분쟁 대응 시 애로사항으로 △민형사상 소송비용 부담(44.2%) △분쟁 관련 업체와의 거래관계 유지 어려움(38.4%) △분쟁 관련 사실 입증 어려움(12.1%) 등의 순으로 답했다. 미투 브랜드(경쟁사의 인기제품을 모방해 출시한 것)를 상대로 승소하기도 쉽지 않다.
2020년 10월 김봉남 포장마차가 “김복남맥주 상표 사용을 막아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상표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지난해 법원은 후발주자인 김복남맥주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앞서의 푸드테크 대표는 “설탕, 소금 등의 함량을 살짝 바꾸기만 해도 다른 제품으로 인정하기에 식품 관련 특허권을 보호받기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