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들 펄떡펄떡 큰물서도 통할까
▲ 최근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한 KIA 윤석민(왼쪽)과 한화 류현진. |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진출 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온통 보라스에 쏠렸다. 케빈 브라운, 알렉스 로드리게스, 카를로스 벨트란 등 당대 최고 선수들에 천문학적 액수의 몸값을 안겼던 보라스는 박찬호, 김병현과도 함께 일해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일부에서 “보라스가 에이전트면 윤석민의 메이저리그행은 떼어논 당상”이라고 평한 것도 보라스의 이름값이 주는 위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인 모 에이전트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윤석민과 계약한 곳은 미디어앤파트너스일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앤파트너스가 ‘윤석민의 미국 진출 시 보라스가 구단을 알선해준다’는 계약을 보라스 코퍼레이션과 따로 맺었을 것이다. 미디어앤파트너스가 자신들이 받아야 할 수수료 가운데 일부를 보라스 코퍼레이션에 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이런 식의 재대행은 관행이다. 내가 보기엔 윤석민과 류현진을 보라스와 계약했다고 밝힌 J 씨도 보라스의 정식 직원이 아닌 프리 에이전트로 알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제기되는 이견이 맞는다면 윤석민과 보라스는 별 관계가 없다. 되레 미디어앤파트너스가 보라스의 이름을 팔았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사실일까.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추신수 전담 직원으로 활동한 한국인 J 씨는 여전히 그 회사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보라스 측은 “J 씨가 우리 측 계약직 사원이 맞다”고 밝혔다. 윤석민과의 계약도 미디어앤파트너스가 아닌 보라스 코퍼레이션 이름으로 했고, 미디어앤파트너스는 보라스 코퍼레이션 소속인 추신수, 이학주의 한국 매니지먼트를 대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윤석민-보라스 계약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많은 미국 야구 관계자는 “한국 언론에서 윤석민과 류현진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많은 한국 언론이 윤석민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당장에라도 10승 투수가 될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 현지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모 메이저리그구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스카우트는 “미국 구단이 윤석민, 류현진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두 선수를 10승 투수로 생각하는 스카우트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미국 야구계는 한국 야구 수준을 트리플A 정도로 본다. 윤석민, 류현진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올림픽에서 호투했지만, WBC는 빅리그 선수들의 몸이 덜 풀린 2월에 열렸고, 올림픽엔 주로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나갔다. 거기다 윤석민은 제구가 썩 좋지 못하다. 빅리그에서 성공하려면 지금보다 향상된 제구력이 필요하다. 류현진 역시 체인지업은 빅리그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뛰어나지만, 속구 구속이 평균 140㎞ 중반대인 게 약점이다. 무엇보다 류현진은 어깨와 팔꿈치 부상 정도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윤석민과 류현진에 대한 과장은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상투적인 전략일 뿐이다.”
다른 팀 국제스카우트도 두 선수의 현재를 매우 냉정하게 평가했다. “윤석민과 류현진이 포스팅을 거쳐 미국행을 추진한다면 원하는 액수를 받기 어렵다. 많이 제시해도 200만 달러 전후일 것이다. 9년을 채우고 FA 자격으로 미국행을 추진해도 몸값은 수직으로 상승하기 어렵다. 대개 한국 선수들은 9년이 지나면 부상으로 몸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스카우트는 “건강한 류현진이라면 미국 진출 시 한해 연봉 100만 달러 이상은 손에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윤석민과 류현진이 보라스 사단에 합류하며 한국야구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두 선수는 자신들의 관리와 홍보를 보라스 측에 맡겼다. 미국 진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매니지먼트를 보라스 측이 책임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현행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규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야구규약은 대리인 제도는 인정하지만, 시행 날짜는 보류해 실질적으로 대리인 제도를 부정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야구계를 대표하는 두 투수가 대리인의 기본 업무인 매니지먼트를 외부 회사에 맡겼다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KBO도 “두 선수가 구단 허락 없이 대리인을 뒀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대리인이 단순 매니지먼트를 넘어 연봉계약에도 참여하려 한다면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동료 선수 대부분은 두 선수를 부러워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한국도 대리인 제도를 빨리 시행해 선수들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선수는 윤석민을 보며 “솔직히 부러웠다”고 털어놨다.
“(윤)석민이의 일정을 꼼꼼히 챙기는 에이전트를 보고 내심 부러웠다. 우리는 말만 ‘프로’지, 실상은 모든 걸 스스로 챙겨야하는 아마추어다. 선배 야구인들이 ‘아직 우리는 프로가 되려면 멀었다’고 주장하기 전에, 선수들이 프로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여건을 먼저 조성해줬으면 좋겠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