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45>
▲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겨울철에 착용하는 방한모가 다양하게 발전했다. 왼쪽 사진의 남바위는 남녀노소 공용으로 쓰는 방한모다. 오른쪽은 여성 전용 방한모 조바위를 쓴 모습.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남바위는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경향신문> 1950년 1월7일자를 보자.
‘1950년 1월 영하 15.2도의 혹한에도 서울 한강에서는 어부들이 잉어를 잡았다. 재수 좋은 날이면 스무 마리도 잡았다고 한다. 당시 어부들은 삭풍이 몰아치는 얼음장 위에 솜방석을 깔고, 토시를 끼고, 머리에는 남바위를 썼다.’
1955년 성탄카드에도 남바위가 등장한다. 당시 성탄절 카드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기생이 춤추는 장면’ ‘승무’ ‘불국사 다보탑’ ‘이도령과 성춘향’ 등을 그려 넣었다. 일부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남바위’ ‘복건’ 등을 입기도 했다.
‘50년대 말이 되면 서양 복식에 밀려 전통 방한모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한탄조의 기사들이 등장한다. <동아일보> 1959년 2월24일 칼럼을 보자.
신부들이 쓰는 족두리는 본래 몽고의 부녀들이 외출할 때 쓰던 모자이고…(중략)…그러던 것이 근래에 와서는 예식에 쓰는 화관 족두리만 남아있고, 일반이 쓰던 조바위가 간혹 눈에 띠일 뿐, 그 외의 것으로 풍차, 남바위, 아얌 등 지금은 모양조차 볼 수가 없고…(중략)…요즘에 와서는 모자 대신 넥카치프(neckerchief)로 머리를 싸게까지 되었으니(후략).’
▲ 남바위를 착용한 모습(위)과 조바위를 쓴 모습. 사진=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남바위와 함께 볼끼, 풍차 같은 방한모는 남녀가 같이 썼다. 볼끼는 턱과 뺨을 따뜻하게 하려고 안에 털을 대어 만들었는데, 별도로 만들어 남바위에 달기도 했고, 아예 넓적한 띠 모양으로 만들어 턱과 뺨을 가리고 머리 위에서 끈을 묶어 사용하기도 했다. 풍차는 볼끼가 모자부분과 이어져 있어서 마음대로 뗄 수 없었다.
아얌, 조바위는 여성 전용이었다. 추위를 막는 외출용 쓰개라 여성의 외출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조선 말기에 나타나게 되었다. 아얌은 귀를 덮지 않고 머리 위만 감싸는 형태다. 조바위는 뺨을 둥글게 감싸는 모양인데 요즘에도 돌잔치 때 여자 아이에게 씌워주기도 한다.
만선두리, 휘항은 남성전용이었다. 만선두리는 벼슬아치가 예복에 맞춰 썼고, 휘항은 목덜미를 보호하던 호항에서 유래한 것으로 귀마개 방한모였다.
아이들은 굴레를 썼다. 굴레는 3~4세 이하의 남녀 어린이만 사용했고, 서울에서는 세 가닥, 개성에서는 아홉 가닥의 굴레를 사용했다.
남바위는 일반적으로 위가 뚫려 있다. 이러한 구조는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옛 어른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아래는 3단계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장식도 화려했다. 술과 매듭, 산호줄과 비취로 장식했다. 겉감은 대부분 비단(緞)이 사용되고 안감은 털이나 융이 사용되었다. 여자용에는 학·나비·봉황·국화무늬 등을 다양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성탄절 카드에 불국사 다보탑을 그려넣거나 이도령과 성춘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어색하다. 남바위가 등장하는 건 더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우리의 복식, 우리의 방한모가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시절에는 어색함을 자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통 방한모가 사라진 지금에는 그런 자각마저도 사라졌다. 누구를 탓하랴.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지 못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