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제국 ‘위풍당당’ 원걸제국 ‘왕의 귀환’
▲ 2010년 제12회 한중 가요제 무대에 오른 소녀시대. 사진제공=KBS |
올해 초 커다란 화제를 불러 모았던 ‘걸그룹 지도’를 보면 한국 걸그룹들의 인기 변천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걸그룹 태동기는 ‘8세기’(2008년을 의미하는 지도상의 표현)에는 역시 이효리가 가장 큰 제국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직은 ‘국가’가 아닌 ‘족’ 단위인 ‘원더족’과 ‘소시족’이 보인다. 9세기에 접어들면서 ‘원걸제국’이 걸그룹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천하를 제패하고 소시국이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렇지만 10세기 들어 소시국이 ‘소시제국’으로 거듭나면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해 원걸제국과 비슷한 영토를 차지했으며 11세기에 이르러선 소시제국이 ‘카라제국’, ‘21제국’과 함께 걸그룹을 삼분했고 원걸제국은 귀퉁이의 소국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11세기 후반, 그러니까 2011년 연말 원더걸스가 반격을 시작했다. 두 번째 정규앨범 <Wonder World>를 발표한 원더걸스가 1년 6개월여 만에 컴백한 것. 특히 지난 10월 새 앨범 <The Boys>를 발표한 소녀시대와의 정면 승부가 눈길을 끈다. 2007년 나란히 데뷔한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같은 시기에 음반을 발매해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걸그룹 태동기에 천하를 재패했지만 미국 진출을 위해 한국 활동을 중단하면서 소국으로 전락한 원더걸스, 조금씩 세력을 키워 최고의 걸그룹이 돼 카라, 2NE1과 걸그룹을 삼분하고 있는 소녀시대, 이제야 비로소 두 그룹이 진정한 승부가 시작됐다.
▲ 지난 15일 SBS MTV의 <더 쇼> 녹화에서 열창하고 있는 원더걸스. 연합뉴스 |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민심이다. 민심을 거스른 전쟁은 필패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걸그룹에게 민심은 단연 인기이며 이를 입증하는 바로미터는 바로 음원차트다.
올해 음원차트의 가장 큰 트렌드는 ‘방송의 힘’이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나가수)’가 방영된 직후에는 ‘나가수’ 음원이 음원차트 10위권을 휩쓸었으며 Mnet <슈퍼스타K> MBC <위대한 탄생>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노래들 역시 음원차트 상위권을 전세 내다시피 했다. 가수들이 앨범 발매를 망설이게 만들 정도로 올 한해 음원차트에선 방송의 힘이 컸다.
그렇지만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앞에선 이런 ‘방송의 힘’도 맥을 추지 못한다. 지난 10월 새 음반 <The Boys>를 발매한 소녀시대는 음원 공개와 동시에 타이틀곡 ‘The Boys’가 주요 실시간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올레뮤직, 벅스뮤직 등에선 앨범의 수록 전곡이 1위부터 15위까지를 점령해버렸을 정도였다. ‘The Boys(더 보이즈)’는 2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으며 한국어 버전 ‘MR. TAXI(미스터 택시)’도 함께 음원차트 상위권을 지켰다.
원더걸스 역시 마찬가지. 타이틀곡 ‘Be My Baby’가 11월 2주차 주간차트 1위를 차지했고 이번 앨범 수록곡인 ‘Me, in’ ‘Girls Girls’ ‘G.N.O’ ‘Act Cool’ ‘Stop!’ 등도 주간차트 20위권에 랭크됐다. 게다가 <슈퍼스타 시즌3> 음원들과의 정면 승부에서도 밀리지 않는 저력을 선보였다.
소녀시대에 대한 민심은 변함없이 유지됐고 돌아온 원더걸스에 대한 민심 역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전자’로 소녀시대와 맞짱 승부를 벌이려는 원더걸스 입장에선 민심을 통해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은 “두 그룹 모두 기존의 색깔과는 다소 다른 앨범을 내놓았는데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추려는 경향이 짙다”면서 “각자의 개성이 뛰어난 데다 두 앨범 모두 완성도가 높아 우위를 논하기 어렵다”는 평을 들려줬다.
▲ 소녀시대의 새 앨범 재킷과 원더걸스의 새 앨범 재킷. |
#전투력 대결 ‘방송 활동’
아무래도 걸그룹에게 가장 큰 활동 기반은 방송이다. 걸그룹은 콘서트나 행사를 위주로 활동하는 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걸그룹의 왕성한 방송 활동이 전쟁의 전투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KBS <뮤직뱅크>에서 정규 2집 첫 무대를 선보인 원더걸스는 빡빡한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KBS 2TV <개그콘서트> Mnet <와이드 연예뉴스> ‘오픈 스튜디오 토크’ SBS 라디오 <붐의 영스트리트>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 등에 연이어 출연한 것. 게다가 힘겨운 미국 진출기를 들려주면서 방송 출연 때마다 화제를 양산하고 있다. 원더걸스는 내년에도 미국 활동을 이어갈 예정으로 이번 국내 활동은 한 달을 조금 넘는 기간으로 제한해 놓고 있다. 따라서 한 달가량 방송 활동에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늘릴 예정이다. 한마디로 원더걸스는 군사력을 집중해 한 달 동안 팬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려는 전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
소녀시대 역시 새 앨범을 발매한 뒤 왕성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원더걸스에 앞서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소녀시대는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SBS <강심장>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연이어 출연했다. 게다가 SBS <도전1000곡> KBS2 <출발 드림팀 2> 등 과거엔 잘 출연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또한 소녀시대는 12월부터는 종편채널 JTBC에서 일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8시 40분까지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소녀시대 멤버 전원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은 제목 자체가 <소녀시대(가제)>다.
원더걸스가 짧은 활동 기간 동안 방송 출연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동안 꾸준한 방송 활동을 이어온 소녀시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소녀시대는 이번 앨범 활동을 통해 잘 출연하지 않았던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는 등 활동 범위를 좀 더 넓혔다. 게다가 종편 JTBC의 일요 예능을 스스로 책임지게 됐다. 원더걸스는 소녀시대와 한 주 차이를 두고 출연한 ‘라디오스타’에서 거의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부분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한 SBS 예능국 PD는 “원더걸스는 토크 프로그램에서 미국 진출 당시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1회성 게스트로의 화제성은 높지만 흥행성에선 소녀시대에 미치지 못한다”라며 “예를 들어 원더걸스가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서 재밌는 방송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따른다는 얘기”라고 설명한다.
#병참 능력 보여주는 ‘CF’
전쟁은 전방에서 싸우는 전력도 중요하지만 후방 지원도 중요하다. 병참이 얼마나 원활하게 이뤄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걸그룹들의 결전에서 병참은 단연 수입이고 스타의 가장 주된 수입원은 CF다. CF 시장에서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지난해 5월 원더걸스가 미국 활동을 잠시 접고 <2 Different Tears>라는 앨범으로 국내 활동을 했을 당시만 해도 원더걸스는 CF 업계에서 각광을 받았다. 컴백 이전에 이미 6개의 CF를 출연했을 정도였는데 당시 CF 수입만 30억 원이 넘었다. 2년여의 공백이 있었지만 여전히 원더걸스의 영향력이 CF 업계에 미치고 있었던 것. 그렇지만 이번엔 다르다. 원더걸스가 1년 반 만에 국내 무대로 컴백했지만 CF 시장의 반응이 미온적이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노바디’ ‘텔미’ 등 워낙 폭발적인 히트곡을 가진 걸그룹이라 2년여의 공백을 충분히 딛고 다시 유행메이커가 될 거라는 기대가 많았지만 이젠 그런 기대치가 많이 낮아졌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반면 소녀시대는 CF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연예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걸그룹과 아이돌 그룹의 CF 모델 열풍이 불었던 치킨 CF를 필두로 휴대폰, 전자제품, 화장품, 아웃도어 용품까지 톱스타만 모델로 기용하는 CF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다. 멤버 모두가 함께 출연하는 CF부터 멤버들의 개별 출연까지 소녀시대는 알차게 CF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 소녀시대는 일본 CF 시장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일본 인기 목캔디 ‘e-ma 노도아메’의 TV 광고 모델로 선발된 데 이어 립톤의 ‘립톤 팩 500ml’과 ‘립톤 엑스트라 샷’ CF 모델로도 발탁된 것.
원더걸스는 미국 진출 이후 수입도 변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선 “미쓰에이보다 수입이 적은데 사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정산 자체가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아직은 미국 진출을 위한 투자 기간이기 때문이라는 게 원더걸스의 설명이다.
#장수 능력 지수 ‘개별 활동’
요즘 걸그룹과 아이돌 그룹의 가장 큰 활동 특성은 그룹 활동과 멤버들의 개별 활동이 조화롭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멤버들의 개별 활동은 마치 전장에서 장수들끼리의 일대일 결전과 비슷하다. 여기서도 원더걸스는 소녀시대에 크게 뒤진다. 개별 활동으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이는 원더걸스의 소희였다. 2008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 그렇지만 같은 해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을 통해 윤아는 주부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소녀시대의 팬층을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윤아는 내년에도 <겨울연가>의 윤석호 PD가 연출하는 드라마 <사랑비>에 출연한다.
소녀시대 역시 요즘 걸그룹들 가운데에는 개별 활동이 많지 않은 편이긴 하다. 서현의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과 태연의 <승승장구> 고정 출연 정도가 눈길을 끄는 개별 활동이다. 태연은 솔로 앨범까지 발매한 것은 아니지만 OST 등을 통해 솔로 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국내 무대에서의 반응만 보자면 원더걸스는 2009년 미국 진출 이후 제자리걸음, 아니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인기는 물론이고 수입도 거의 없는 수준이다. 반면 원더걸스가 전성기를 누리던 2007~2008년엔 계속 뒤처지던 소녀시대는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이후 ‘지’가 큰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고의 걸그룹이라는 호칭을 떼고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올랐을 정도. 라이벌의 정면 승부라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클 정도로 소녀시대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관건은 언제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느냐다. 만약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지난 3년여의 시간을 모두 보상 받을 수 있다. 아직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진정한 맞대결을 논하기에 조금 이른 시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해외 도전기
원걸은 ‘상륙전’ 소시는 ‘고공폭격’
원더걸스가 걸 그룹 지도에서 ‘천하재패’에 성공하고도 ‘소국’으로 몰락한 까닭은 2009년부터 미국 진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원더걸스가 3년 넘게 미국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동안 소녀시대는 미국이 아닌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동방신기에 이어 일본에 진출한 소녀시대는 카라와 함께 일본 내에서 케이팝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발 케이팝 열풍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 유럽까지 강타했다. 최근 소녀시대는 뉴욕 공연까지 성황리에 끝마치면서 미국 진출의 기회까지 잡았다.
반면 원더걸스는 미국에 진출해 바닥부터 차분히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2009년 10월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76위에 올라 화제가 된 원더걸스는 인기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투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해 지명도를 높였다. 심지어 멤버들이 직접 길거리 홍보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다. 최근에는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인 닉 캐논이 제작하는 TV용 영화 <원더걸스 앳 디 아폴로> 촬영을 마쳤다. 이번 앨범 가운데에는 이 영화의 OST도 포함돼 있다. 미국 시장에서 단계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
TV용 영화 <원더걸스 앳 디 아폴로>가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OST를 통해 이번 앨범까지 히트에 성공하면 비로소 원더걸스의 미국 성공시대가 가능해진다.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바닥부터 다소 더딘 성장을 거듭해온 데 반해 소녀시대는 케이팝 열풍을 주도하며 단번에 뉴욕으로 진입했다. 자칫 국내 시장을 포기하다시피하고 전념한 미국 시장에서의 우위까지 소녀시대에게 내줄 위험성도 있는 것.
반면 소녀시대는 미국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다.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 김은아 과장은 “소녀시대를 비롯한 SM 소속 가수의 일차적인 해외 무대는 현재 세계 두 번째 음반 시장인 일본과 미래의 세계 최대 음반 시장인 중국”이라며 “유럽과 미국 공연은 현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벤트로 아직 유럽과 미국 진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섭]
원걸은 ‘상륙전’ 소시는 ‘고공폭격’
원더걸스가 걸 그룹 지도에서 ‘천하재패’에 성공하고도 ‘소국’으로 몰락한 까닭은 2009년부터 미국 진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원더걸스가 3년 넘게 미국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동안 소녀시대는 미국이 아닌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동방신기에 이어 일본에 진출한 소녀시대는 카라와 함께 일본 내에서 케이팝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발 케이팝 열풍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 유럽까지 강타했다. 최근 소녀시대는 뉴욕 공연까지 성황리에 끝마치면서 미국 진출의 기회까지 잡았다.
반면 원더걸스는 미국에 진출해 바닥부터 차분히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2009년 10월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76위에 올라 화제가 된 원더걸스는 인기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투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해 지명도를 높였다. 심지어 멤버들이 직접 길거리 홍보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다. 최근에는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인 닉 캐논이 제작하는 TV용 영화 <원더걸스 앳 디 아폴로> 촬영을 마쳤다. 이번 앨범 가운데에는 이 영화의 OST도 포함돼 있다. 미국 시장에서 단계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
TV용 영화 <원더걸스 앳 디 아폴로>가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OST를 통해 이번 앨범까지 히트에 성공하면 비로소 원더걸스의 미국 성공시대가 가능해진다.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바닥부터 다소 더딘 성장을 거듭해온 데 반해 소녀시대는 케이팝 열풍을 주도하며 단번에 뉴욕으로 진입했다. 자칫 국내 시장을 포기하다시피하고 전념한 미국 시장에서의 우위까지 소녀시대에게 내줄 위험성도 있는 것.
반면 소녀시대는 미국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다.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 김은아 과장은 “소녀시대를 비롯한 SM 소속 가수의 일차적인 해외 무대는 현재 세계 두 번째 음반 시장인 일본과 미래의 세계 최대 음반 시장인 중국”이라며 “유럽과 미국 공연은 현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벤트로 아직 유럽과 미국 진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