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 카다피’ 흔드는 반란의 기운
▲ 요미우리 구단주인 와타나베 쓰네요 회장(작은 사진)은 선수기용까지 개입했는데, 이승엽이 부상으로 부진했을 때도 주전 명단에서 빼라고 감독에게 직접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연합뉴스 |
기자회견에서 기요다케 대표는 “와타나베 회장이 팀 수석코치를 합의 하에 정해놓고선 갑자기 독단적으로 다른 사람을 앉히려 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선수나 코치도 자존심이란 게 있다”며 “팀과 프로야구를 개인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는 “구단 내 최고 권력자가 마구잡이 인선을 하면 건전한 기업 체질을 갖출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 요미우리 구단 대표 기요다케 히데토시가 “와타나베 쓰네요 회장이 인사 전횡을 일삼고 있다”고 폭로하며 눈물을 보였다. |
상황은 와타나베 회장에게 좋지 않게 흐르고 있다. <산케이 신문>은 “앞으로 회장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와타나베 회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등과 절친한 사이로 일본 정계에 광범위한 인맥을 자랑해왔는데 정계에서조차 등을 돌린다고 한다. 한 자민당 간부는 “통솔력을 잃었다”고 평했다.
그간 일각에서 자이언츠 구단은 ‘와타나베 회장의 왕국’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와타나베 회장이 장기간 구단주로 있으면서 선수기용 등에 사사건건 개입해 온 탓이다. 예를 들어 이승엽이 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로 활약하던 중 손가락 부상을 입고 이듬해 부진을 겪었다. 이에 와타나베 회장이 나서서 감독에게 주전 명단에서 빼라고 일일이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아무리 구단주 입김이 막강한 일본 구단이라고 해도 구단주가 선수의 경기 출전 여부까지 지시하는 건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와타나베 회장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을 소유한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63세가 되던 1989년 신문사 부사장 겸 구단의 공동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1996년에는 구단주로 취임했다. 실상 무려 22년간 구단주를 한 셈이다. 지난 2006년에는 “딱 94세까지만 구단주를 하겠다”고 밝혀 ‘독재자’, ‘카다피’란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다. 그런가 하면 독설과 폭언에 가까운 돌출발언을 일삼아 오죽하면 인터넷에 ‘어록집’이 나돌 정도다.
“올해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가 우승을 못하면 자살하겠다”고 <일본일간스포츠>와 인터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3월 11일 대지진 후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지진이 날 것을 우려해 프로야구 개막을 늦추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있자는 거냐”라며 묵살했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전력부족으로 프로야구 개막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자 바로 받아들여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선수들을 홀대하는 발언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004년 일본 프로야구 양대 리그 통합 문제를 놓고, 와타나베 회장과 의견을 대립한 선수협회에서 면담을 요청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뒤 인터뷰에서 선수협회를 두고 “무례하다. 분수를 알아야지 기껏해야 선수 주제에…”라고 말해 야구팬들의 분노를 샀다. 또 잘나가던 한 선수가 성적이 떨어져 2군으로 가자 “우리 팀에 승리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 늘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이런 일련의 발언으로 인해 ‘와타나베 회장이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표적 우익계 인물로 분류되던 와타나베 회장은 2005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당시 돌연 참배 반대 목소리를 높여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타 구단 팬들의 반감도 크다. 와타나베 회장이 구단주 취임 후 줄기차게 ‘드래프트 자유획득제’를 추진해 성사시킨 탓이다. 이는 신인선수를 구단 공동으로 구성된 선발 모임에서 일괄 교섭해 선발하는 드래프트제에서 벗어나 일정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영입하는 제도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이후 자이언츠 구단은 니혼TV, <요미우리신문> 등 구단 계열사의 막강한 자본으로 유력한 선수를 월등하게 높은 보수를 주고 데려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요미우리와 타 구단과 전력 차이를 크게 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결국 야구 경기가 재미없어져 팬이 줄어든다는 염려도 크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 회장은 “자유경쟁 사회다. 마음에 안 드는 구단은 나가서 새롭게 리그를 차려라”고 응수했다.
물론 와타나베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자극적인 발언을 지지하는 노년층 야구팬들이 건재하다. 그는 월드컵 등으로 축구 인기가 올라가면 “축구는 곧 망한다. 앞으로도 야구 시대일 것”, 피겨스케이팅 팬이 늘어나면 “심판 점수로 판정이 나는 피겨 같은 경기는 부정부패가 많다”라며 야구팬을 결집시키곤 했다. 또 과거 40번이나 우승을 거머쥐는 등 승승장구해 온 요미우리의 팬층이 워낙 두텁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FIFA대회에서 우승한 여자축구팀 인기가 크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야구팬이 크게 줄었다는 소식도 나와 일본 프로야구계의 위기의식이 깊어지고 있다. 여러 구단이 팬 수가 줄면서 적자를 내고 있어 설상가상인 격이다.
<석간후지신문>은 “요미우리 구단이 내부를 개혁할 수 있을지가 일본 야구계 향후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와타나베 회장이 여전히 물러날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아 관계자들은 구단 내부 개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