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았나? 쟤들이 둘러쌌지’
▲ 지상 6층 ‘윤빌딩’이 신축중인 삼성타운 건물 세 동에 둘러싸여 있다.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입주할 삼성타운은 완공되면 강남역의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 ||
세 개 동이 들어서는 삼성타운 부지는 대지면적만 4천평이 넘는다. 건물의 골격이 거의 올라간 A동의 경우 대지면적 2천평, 건축면적 8백평이다. 나머지 공간은 녹지 및 보행자용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현재 남대문 태평로에 있는 삼성생명 본관처럼 건물과 주변 조경이 적절히 조화된 방식이다.
그렇지만 삼성이 처음 구상했던 그림이 완벽하게 그려질지는 미지수다. 삼성타운 부지 중간에 6층짜리 건물 하나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 윤아무개씨(82)의 이름을 따 윤빌딩으로 이름지어진 이 건물은 아직 윤씨의 소유다. 삼성은 이 건물을 그대로 놓아둔 채 건물의 좌, 우, 뒤를 둘러싸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물의 입지가 이상한 모양새를 띠자 주변에서는 알박기가 아니냐고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은 1971년 윤씨가 매입한 토지에 윤씨가 1999년 직접 건물을 지은 것으로 삼성타운이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기 전의 일이다. 유독 이 건물만 삼성이 매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양측이 원하는 가격의 차이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인근 부동산 업소는 전했다.
등기부상으론 서초2동 13XX번지 136평의 이 땅은 윤씨가 1971년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이 주변은 구릉지와 하천이 흐르는 땅이었다고 한다. 이 일대를 고속터미널로 개발하려고 했던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삼성이 이 일대 땅을 본격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제일모직, 삼성코닝,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이 조금씩 부지를 샀다.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1993년, 1994년, 1997년. 그러나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속 흙파기 공사 등 기초공사만 계속 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윤빌딩 부지를 제외한 모든 토지를 삼성이 매입한 것으로 보아 윤씨에게도 매입 의사가 타진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윤씨는 오히려 1998년 현재의 건물을 짓기 시작해 1999년 4월 지상 6층, 지하 2층 건물을 완공했다.
윤씨가 땅값을 제대로 보상받기 위해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윤빌딩측은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윤빌딩 관리인은 “삼성이 땅을 매입할 당시 삼성이 나서지 않고 개인이 나서 매입을 추진했기 때문에 매입자가 삼성인지는 알지 못했고 당시에는 팔 생각이 없었다. 최근에도 삼성이 흙파기 공사만 몇 년째 하고 있어 건물들이 들어설지 불확실한 상태였다”고 말하고 있다. 삼성을 겨냥해 보란 듯이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윤씨의 한 가족은 “신문에 ‘알박기’라고 기사가 났는데 우리끼리 보고 웃었다. 삼성이 직접 나서 건물을 사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윤씨는 법무사 출신이다. 큰 빌딩 옆에 건물을 지으면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윤씨가 삼성에게 토지를 비싸게 팔기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삼성타운이 들어선 것은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윤씨의 빌딩에는 지하1층에 주점, 1층에는 커피전문점과 편의점, 2층에는 카페, 3층부터 6층까지는 개인병원들이 입주해 있다. 이곳은 강남역에서는 다소 외진 곳이라 현재 월세는 층당 4백50만원(2∼6층의 경우)을 받고 있다고 부동산중개소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건물이 완공되고 유동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임대료가 몇 배로 뛸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윤씨로서는 건물을 팔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윤씨는 1996년, 2001년, 2004년에 걸쳐 부인과 다섯 아들, 8명의 손자손녀에게 토지와 건물을 분할 증여했다. 건물을 매입하기 위한 절차는 더욱 복잡해진 상황. 하지만 가족들에 따르면 아직 윤씨가 건물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잘 모른다. 어른이 정정하시기 때문에 직접 모든 일을 다 처리하신다”고 가족 중 한 명이 전했다.
한편 삼성도 이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윤빌딩이 위치한 곳은 매입한다 하더라도 녹지공간이 들어설 자리이기 때문에 현재의 공사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사인부들이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담배를 사기 위해 이용하는 등 공사장 편의시설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윤빌딩측도 ‘삼성과의 갈등 같은 것은 없다’며 삼성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에 따르면 윤빌딩이 위치한 부지에 도로가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이어지는 테헤란밸리의 도로는 왕복8차선, 중간에 10차선이 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교대역사거리에서 강남역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왕복6차선에 불과해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구간이다.
아직 계획이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이지만 2008년 삼성타운이 완공되면 교통량이 증가해 도로확장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윤빌딩을 매입해야 할 곳이 삼성이 아니라 서초구청이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윤씨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어떤 경우든 손해볼 것은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