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은 두 개의 큰 틀로 이루어져 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표현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야기는 내용이며, 표현 방법은 형식인 셈이다. 내용과 형식은 물과 그릇의 관계와 같다. 이를테면 막걸리를 와인글라스에 담아 먹을 수도 있다. 반대로 와인을 사발에 따라 마신다고 맛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맛을 제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감성적인 문제인 것이다.
막걸리는 사발에, 와인은 커다란 유리잔으로 먹어야 제맛이 난다. 미술작품에서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이와 같은 것이다. 내용에 맞는 형식을 갖췄을 때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다. 예술가는 이 둘의 조화를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 그런 정성의 결실로 자신의 내용과 형식을 창작했을 때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이를 우리는 ‘예술’이라고 칭송한다.
내용에 무게 중심을 실으면 구상적 회화가 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형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 추상적 회화다. 따라서 구상 회화와 추상 회화는 서로 모순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의 조화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적 감동이 배가된다.
어쩌면 예술의 생명력은 모순의 조화를 통해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큰 것과 작은 것, 길고 짧음, 강함과 약함, 단순함과 복잡함, 무거움과 가벼움. 이런 것들의 적절한 균형과 배치에서 아름다움은 더욱 빛난다. 모순의 법칙은 세상 이치에서도 나타난다.
정지연 작품이 품고 있는 것도 모순의 법칙이다. 그는 추상적인 배경 위에 구상적 형상 이미지를 그려 넣는다. 금박을 입힌 품격 있는 배경은 금색 모노톤의 추상이다. 그 위에 검정 무늬를 가진 흰색 고양이를 그린다. 아주 사실적인 기법으로.
배경을 따로 떼어 놓아도 세련된 추상 회화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화면에 물질적인 느낌을 드러내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성과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공들여 만들어낸 배경은 고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배경은 작가가 주제로 선택한 고양이의 실제감을 증폭시킨다. 전통 동양화 채색 기법으로 묘사하는 고양이는 털 하나하나를 일일이 그려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그런데 배경의 추상성과 모순의 조화를 이루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마치 신성을 품고 있는 고려불화를 보는 느낌이다. 작가가 의도한 고도의 연출인 셈이다.
그는 고양이 작가로 알려져 있다. 반려묘가 모델이지만, 단순한 선택은 아니다. 고양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삶은 단순할수록 고귀할 수 있다는 진실을 고양이의 생태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작품으로 담는 것이 작업의 지향점이라고 말한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