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저택에 그림 좀 거나
▲ 구본무 LG그룹 회장(오른쪽)의 한남동 새집.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런데 신축공사중인 구 회장 새 저택 안에 다른 집에선 찾아보기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서류상’으로만 놓고 보면 구 회장 새집 안에 미술관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측은 지난 2002년 말과 2003년 4월 두 번에 걸쳐 한남동 74X-X5, 74X-X6 일대 5백14평 대지를 사들여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 집은 바로 앞에 위치한 이건희 삼성 회장 아들 이재용씨 소유 집을 비롯해 이태원동 일대 ‘삼성타운’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집은 위치뿐만 아니라 내부구조에서도 한번 더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이 건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집 내부에 1백80평 규모의 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신고된 등기부등본 내역에 따르면 용도가 ‘2층 문화 및 집회시설, 단독주택’으로 나와있다. 지상 1층과 2층은 각각 주택 용도로 설계돼 있으며 지하엔 대규모 주차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지하1층이다. 이곳엔 미술관 용도로 무려 1백80평 규모의 건평이 할당돼 있다.
과연 삼성의 리움미술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 회장 새 저택 안에도 LG그룹의 미술관이 들어서게 되는 것일까. 재계 인사들은 LG그룹이 미술관을 지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삼성그룹처럼 대대로 내려오는 미술품이 많다면 모를까 LG가 굳이 새집 안에 미술관 명목 건물을 지을 까닭이 없다는 반응이다.
등기부등본엔 지난 8월 건축 목적으로 미술관 용도가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나와 있다. 관할관청인 용산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주택용도 부지에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 건축 사유가 추가될 경우 설계허가를 아예 다시 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번거로움이 따른다”고 밝힌다.
그러나 등기부상 ‘미술관’으로 표기된 공간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대규모 주차장 부지 마련 가능성이 거론된다. 재벌가 총수의 경우 저택 내에서 중요 결정을 위한 가족회의나 외부인사 초대행사를 벌일 경우 손님용 대규모 주차공간이 필요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태원동에 신축한 새 저택 지하에도 넓은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저택이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저택 내엔 아예 별도의 주차장 건물이 들어서 있다.
구 회장 신축 저택의 경우 이미 1백33평 규모의 주차장 부지가 마련돼 있다. 미술관 명목의 1백80평 부지가 주차공간으로 더 필요한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일각에선 구 회장측이 일종의 ‘영빈관’을 새 저택 내에 마련하고 있다는 추측도 제기한다. LG그룹 내에 있거나 따로 분가시킨 구씨 일가들이 명절이나 가족행사 때 모두 모일 경우나 외부인사의 대거 방문에 대비한 연회·회의·숙식을 위한 장소로 보는 것이다. 과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서울 성북동 소재 별채를 VIP 접대용 영빈관으로 활용했던 점이나 삼성그룹이 승지원을 영빈관 부지로 사용했던 점에 기인한 추측이다.
구 회장 새 저택에선 삼성이 지난 10년 동안 한남동·이태원동 일대에 조성해온 삼성타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최근까지 거주하던 한남동 자택 주변 5천여 평 부지에 있는 이 회장 부인 홍라희 관장의 리움미술관도 구 회장 새 저택의 조망권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구 회장측이 이 회장측에 대한 라이벌 의식 때문에 삼성타운을 내려볼 수 있는 곳에 집을 짓는다’는 미확인 소문도 나돈다. ‘이참에 소규모로라도 미술관을 지어 삼성에 필적할 문화시설을 만들려는 것 아닌가’라는 추측이 덧붙여지지만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다.
구 회장이 거주해온 한남동 72X-2XX 소재 저택의 대지면적은 2백96평이며 연건평은 1백평 규모다. 한남동 74X-X5 소재 새집 대지면적은 5백14평이며 주택 용도와 미술관 용도를 합산한 연건평은 4백18평에 이른다. 건물 면적만 4배 이상 커지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구 회장 새 저택은 구 회장 거주 이상의 여러 목적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다른 재벌그룹 회장 부인처럼 구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가 미술관장으로 대외활동을 시작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그럴 경우 구 회장이 관청에 신고한 것처럼 새집의 미술관 용도도 신고사항과 자연스레 일치가 된다. LG그룹은 다른 그룹과 달리 오너 일가 중 여성들의 대외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때문에 김영식 여사가 미술관 활동을 시작한다면 일대 뉴스가 되는 것.
‘미술관’에 대한 진실은 연말께 건물이 완공된 이후 구 회장 자택이 개방돼야 속시원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