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도 트윗도 참아야 하느니라
▲ YG엔터테인먼트는 최근 7인조 걸그룹과 전속계약을 맺으며 ‘성형수술 금지’ 조항을 넣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사진출처=YG엔터테인멘트 |
외모를 중시하는 걸그룹에게 성형을 금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많은 걸그룹들이 공백기를 가진 후 새로운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성형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외모로 화제를 모으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룹 활동을 위한 소속사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는 조항을 활용해 오히려 성형을 장려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YG 이전에도 가수 임재범 조관우 등이 속한 예당엔터테인먼트가 소속 7인조 걸그룹 치치와 계약하며 같은 조항을 넣은 적이 있다. 치치의 계약서에는 ‘성형하면 계약 파기’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 깎아놓은 듯한 외모보다는 옆집 소녀 같은 신선함과 풋풋함을 가진 치치의 매력을 앞세우겠다는 의미다.
치치의 멤버 나라는 “외모에 한참 관심이 많은 나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물론 성형하고 싶은 곳도 있지만 순수하게 내가 가진 매력을 보여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치치의 또 다른 멤버 지유는 “몰래 성형수술을 하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속사 대표님의 눈썰미가 너무 좋아서 엄두를 못 낸다. 가르마 하나 바뀐 것까지 다 아실 정도니 몰래 할 수가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성형 금지’는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속사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외모를 다듬기 위해 성형을 권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반면 멤버 본인이 성형 중독에 가까운 증상을 보여 소속사가 애를 먹기도 한다. 걸그룹 A의 멤버 B가 대표적이다. B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끊임없이 성형설에 휘말린다. 소속사는 “살을 뺐을 뿐이다” “메이크업을 바꿨을 뿐이다” 등의 말로 해명하지만 확연히 달라진 인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성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A가 속한 연예기획사의 매니저는 “보통 활동이 끝나면 개인적인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맞다. 하지만 B는 또 다시 얼굴에 손을 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일정을 체크한다”고 토로했다.
아이돌 그룹의 전속 계약서에 담긴 또 다른 재미있는 조항은 ‘연애 금지’다. 몇몇 아이돌 그룹 멤버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이 조항을 거론하기도 했다. 2NE1의 산다라박은 “양현석 사장님이 데뷔 후 5년간 연애 금지령을 내렸다”고 말했고 유키스의 멤버 동호 역시 “소속사에서 연애를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컴백한 원더걸스는 “이번 앨범을 계기로 연애금지령의 봉인이 해제됐다”며 연애금지 조항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알렸다. 지난해 7월 그룹 UV가 서울 종로구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아이돌 기획사의 연애 제한규정 금지를 위한 법’의 제정을 위한 법안 제안서를 제출한 것도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였다.
이 조항은 대부분 구두 계약으로 존재한다. 그룹 시스타와 시크릿 역시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서면이 아닌 구두 계약이다. 그냥 약속인 거다”고 설명했다.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는 뜻. 하지만 소속사의 허락 없이 연애를 하다 외부에 노출돼 문제가 불거지면 법적인 강제성을 넘는 페널티를 받기도 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개별 스케줄을 잡아주지 않거나 휴대전화 사용을 당분간 금지하기도 한다. 멤버 한 명만 구설에 올라도 그룹 전체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소속사도 어쩔 수 없는 행하는 조치다”고 해명했다.
‘연애’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대부분 전속 계약서에는 간접적으로 연애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스캔들을 일으켜 피해를 입힐 경우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스캔들은 단순히 사건 사고 외에 연애까지 포함시키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관계자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아이돌의 경우 이성 교제는 특히 치명적이다. CF 출연이 어려워지고 팬덤도 급격히 줄어든다. 일부 팬들은 안티로 돌아서기도 한다. 때문에 스캔들이라는 개념 안에 연애가 포함된다는 것을 구두로 설명해준다”고 덧붙였다.
지난달에는 서울 강남에 연예기획사 사무실을 차려놓고 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은 전속계약서에 ‘성형 수술비를 할인받으면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은 뒤 수술비를 10배 이상 터무니없이 부풀려 받아 가로채기도 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미니홈피 및 트위터 사용 금지’ ‘소속사가 잡는 어떤 행사에도 참여할 것’ ‘소속사의 허락 없이 연예 활동을 중단하거나 은퇴할 수 없음’ ‘소속사에게 항상 위치를 보고할 것’ 등 인권 침해적 조항을 포함시킨 연예기획사는 적지 않다. 이런 조항은 특정 상황에서 소속사에 유리하게 해석될 소지를 갖고 있다.
때문에 10대 아이돌들이 부당한 조항으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표준전속계약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월 청소년 연예인에게 과다노출을 요구하는 행위를 방지하고 학습권, 인격권 등 기본권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대중문화예술인(가수중심, 연기자중심) 표준전속계약서’를 개정한다고 밝혔다. 개정된 계약서 18조에는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 조항이 신설됐다. 물론 표준전속계약서는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강제적인 구속력은 없다. 게다가 유명 연예 기획사가 아닌 중소 업체의 경우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암암리에 불공정한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