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남’이라고? 제자들 앞에선 ‘따도남’ 변신
▲ ‘내 선수’에 대한 애착이 강한 홍명보 감독은 누군가를 탈락시켜야 하는 ‘선수 선발’이 가장 어려운 미션 중 하나라고 한다. 일요신문DB |
#선수? 인간성이 먼저
올림픽대표팀 사령탑 홍명보 감독에게는 한 가지 철칙이 있다. 선수의 인간성과 내면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실력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썩 좋지 못한 성미를 가졌다고 판단되면 선발하지 않는다. 축구 실력은 키워줄 수 있어도 됨됨이는 당장 만들어줄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즉, 어느 정도 실력이 큰 차이가 나지 않고 비등비등하다면 인간성이 더 좋은 선수를 뽑는다. 그래서 물어봤다. “어떤 선수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동료들을 위해 항상 희생을 할 준비가 돼 있는 선수를 선호한다. 11명이 동등한 입장에서 플레이를 하는 축구에서 개인주의가 접목될 때 그 팀은 반드시 망가질 수밖에 없다. 조직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기회를 때론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대표팀을 둘러싸고 사실 항상 좋은 부분만 부각된 건 아니다. 현재 선수단 가운데 누군가는 탈락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런던올림픽 본선 무대에 설 수 있는 인원들은 최대 18명. 그중 3명의 와일드카드(23세 이상 연령대 선수)를 선발한다고 가정하면 많게는 10여 명이 중도 탈락할 수도 있다.
제자들 한 명, 한 명이 너무도 소중한 홍 감독이기에 벌써 마음이 아리다. 함께 고생했던 선수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가장 어려운 미션 중 하나다. 누구보다 ‘내 선수’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다.
여기서 한 가지 일화. 올 시즌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청소년월드컵에 출전했던 윤일록(경남FC)은 홍명보호에서 한 차례 탈락한 쓰라린 경험을 지닌 19세 유망주였다. 9월 21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오만과의 최종예선 1차전 홈경기를 앞두고 윤일록을 불러들였던 올림픽대표팀은 결국 최종 엔트리를 제출하면서 그의 이름을 제외했다. 올해 K리그에서 펄펄 날며 유력한 신인왕 후보 중 한 명으로 부각됐던 윤일록이지만 정작 올림픽대표팀 소집 훈련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수차례 고민 끝에 홍 감독은 윤일록을 명단에서 빼기로 하고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는 올림픽대표팀 코치진까지 동석했다. 이들을 배석시킨 까닭은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선수에게 알림과 동시에 또 다른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
“넌 아직 어리지만 선생님은 이번에 너를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 약속한다. 계속 널 주시할 것이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반드시 다시 불러들이겠다. 다만 그때에도 기대이하의 태도를 보였을 때는 미안하지만 널 뽑을 수 없다.”
이를 악물었다. 윤일록은 죽기 살기로 뛰었고 결국 10월 7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때 다시 선발됐다. 여기서 맹활약을 펼쳐 올림픽대표팀의 5-1 대승을 진두지휘했다. 홍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윤일록의 태도를 높이 샀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정말 괴로워했다더라. 잠도 이루지 못했고 방황도 좀 했다고 들었다. 하긴 어린 친구가 심적인 상처가 얼마나 컸겠나. 하지만 그에겐 다른 점이 있었다. 상처를 입으면 그 또래 선수들은 포기했을 테지만 그는 의지가 강했다.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노력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지금 한 번 살펴봐라. 윤일록처럼 하는 선수들도 드물다.”
아픔을 줬지만 희망도 함께 부여했던 셈이다. 적절한 자극은 분명 효과를 냈다.
▲ 형처럼 올림픽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지난 22일 카타르 도하 알 마키야 스포츠클럽에서 훈련 도중 윤빛가람에게 다가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렇다면 또 다른 오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런던올림픽 와일드카드의 주인공이 이미 결정됐고, 성인대표팀과 소집이 겹치지만 않으면 또래 연령에 있는 선수들이 올림픽에 무혈 입성한다는 항간의 루머들이다. 국내 병역법상 올림픽 본선에서 동메달 이상 확보할 경우 엔트리에 포함된 18명의 선수들은 군 면제 혜택을 받게 된다.
당연히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몇몇 선수들에 대한 특혜 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단호히 “노(No)”를 외친다. 자신이 필요한 선수들에 대한 기준이 워낙 명쾌하기에 네임밸류가 높다고 해서 무작정 뽑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해왔던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경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실력 외적인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
그만큼 기존 멤버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홍명보호가 사실상 본격 출범을 했던 2009년 이집트 20세 이하 청소년월드컵 멤버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성인대표팀 조광래호와 중복 차출 논란을 빚은 것도 바로 이들 탓이었다. 홍 감독과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던 몇몇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차출되면서 교집합에 놓였다. 구자철(VfL볼프스부르크) 홍정호(제주) 서정진(전북) 김보경(세레소 오사카) 김영권(FC도쿄) 등은 2009년 청소년월드컵부터 한솥밥을 먹었던 멤버들. 여기에 윤빛가람(경남)도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다. 이들은 2009년만 해도 철저한 무명이었다. 하지만 홍 감독이 직접 발굴하고 키워내 지금 각급 대표팀을 오가는 국내 최고 스타플레이어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들과의 소통은 계속된다. 대표팀에 전념하는 쪽으로 거의 방향을 굳힌 구자철과는 요즘도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고 있다. 연락 수단은 문자 메시지와 육성통화 등 여러 가지다. 그만큼 구자철은 홍명보호의 원조 캡틴으로서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올림픽대표팀에는 많은 동료들이 있다. 늘 애정이 가는 팀”이라던 구자철의 각별한 생각처럼 홍 감독은 소속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자철이 항상 안쓰럽다.
“정말 좋은 친구다. 축구 실력 못지않게 성격과 책임감, 인간성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 너무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함께하지 않았던 다른 스타급 멤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역시 의견은 변함이 없다. 결코 추가 메리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되레 팀플레이를 저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 빅 리그에서 활약 중인 A 선수에 대해서는 아주 높이 평가했다.
“A는 희생정신이 강하다. 모든 결과가 이미 나온 상황에서도 멈출 줄 몰랐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난 또다시 A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충분히 기존 멤버들과도 파열음 없이 잘 섞여서 활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A는 축구계 안팎으로 나오고 있는 와일드카드 예상 명단 가운데 유일하게 홍 감독이 직접 지목했다.
▲ 2009년 당시 U-20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20세 이하 월드컵 C조 3차전에서 미국팀에 승리한 대표선수들을 끌어안으며 격려하고 있다(왼쪽). 아드보카트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을 마치고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신임감독 베어벡 코치, 홍명보 코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구자철과의 부드럽고 자상한 소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홍명보 감독의 지도원칙 1번은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통상 축구 훈련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욕설이나 폭언은 없다. 일방적인 지시조차 없다. 코칭스태프가 고자세로 강요하고, 이를 선수들이 일방적으로 따르는 기존의 틀은 애초부터 없었다.
“야!” “이 XX” 등등 선수들이 거북해하는 호칭은 아예 쓰지 않는다. “이 놈” “이 녀석” 정도의 호칭도 숙소나 사우나 등에서 서로 장난을 칠 때나 들을 수 있다.
훈련이나 경기장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호칭은 “여러분!”이다. 홍명보호가 소집되면 선수들은 부하가 아니다. 저마다 생각이 있고, 감정을 지닌 인격체다. 이는 코칭스태프에게도 매한가지.
이러한 아랫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지도자 초년병 때 모셨던 네덜란드 출신 외국인 사령탑들이 물려준 귀한 선물이다. 당초 홍 감독은 축구 행정가가 되고 싶었다. 어학 능력을 키우기 위해 현역 마지막 시절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갤럭시에서 보냈고 혹시나 모를 유학을 위해 토플 공부에도 신경을 썼다.
지도자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아니, 어쩌면 필연이었다. 2002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 휘하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했던 핌 베어벡 코치가 휴가차 홍 감독이 머물던 LA로 찾아왔다. 그때 베어벡 코치는 홍 감독의 능수능란한 영어 실력에 깜짝 놀랐다.
별다른 말도 없이 헤어진 둘. 이후 귀국해 어린이 축구교실과 홍명보 장학재단 건립에 힘을 쓰며 미래 설계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부회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팀 코치를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당황하던 홍 감독이 “왜 내가 뽑혔느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외국인 감독을 모셔오기로 했는데, 그 감독이 아예 널 점찍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외국인 감독은 2006독일월드컵 본선 체제를 위해 한시적으로 영입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고 휘하 코치가 베어벡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베어벡 코치와 함께 일하기로 하며 한국인 코치를 선임하는 조건을 ‘영어에 능통한 인물’로 못을 박았는데 LA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베어벡 코치가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홍 감독이 적임자라고 추천했다.
“당시 내게는 3급 지도자 자격증밖에 없었지만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행정가로 진로를 바꾸더라도 현장 경험이 행정 업무를 하는 데 아주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본다.”
아드보카트 전 감독을 거쳐 이후 한국 축구 지휘봉을 잡은 베어벡 전 감독까지 이렇게 두 명의 외국인 사령탑과 함께하면서 홍 감독은 제자 배려를 배웠다. 휘하에서 함께 일하는 김태영 수석코치와 박건하 코치, 김봉수 코치까지 누구나 쉽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언로가 막혀 있는 경우는 결코 없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존재하고, 의견들이 나온다. 때론 코치진 사이에서 심각하지 않은 유쾌한 언쟁이 벌어질 정도다. 팀 내 유일한 외국인 코칭스태프인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담당 코치는 “난 홍명보를 남자 대 남자로서 좋아한다. 그는 항상 귀를 열어뒀고,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자신의 지도자 인생 롤모델(정확히 말해 역할모델)로 핌 베어벡 전 감독을 꼽은 홍 감독에 있어 히딩크 전 감독은 어떤 의미일까.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 축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정말 훌륭하고 대단하다. 남다른 카리스마가 풍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밀당(밀고 당기기)’ 능력이 없다. 나는 솔직한 편이다. 워낙 내성적인지라 직설적이다. 선천적으로 상대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지 못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