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함바’ 뚜껑 열리는 ‘이국철’
▲ 지난 11월 29일 검경수사권 독립 토론회 모습. 한 경찰관의 이마에 붙은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와 관련, 검경의 전면전 불똥이 서서히 정관계로 옮겨붙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수사권 조정안 정국에서 정관계 거물급들이 떨고 있는 내막을 들여다봤다.
검경이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있다. 수세에 몰린 경찰은 10만여 명이라는 방대한 인력을 총동원해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경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신무기로 대국민 선전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등 여론몰이를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 또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완규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는 11월 30일 검찰 내부전산망에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 수뇌부의 미온적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사의를 표명했다. 특히 이 부장은 한상대 검찰총장에게 “총리실 조정안의 지휘권 침해조항에 절대 반대의사를 표명하시고 직을 거십시오. 막지 못할 상황이라면 사표를 내십시오”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부장의 글을 접한 검사들은 이를 지지하면서 “검찰에 남아 국가와 검찰을 위해 일해 달라”는 취지의 댓글을 올리는 등 수사권 조정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둘러싼 검경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상대방을 겨냥한 폭로전 및 새로운 비리파일이 공개될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경찰은 최근 법조계 이슈로 부상한 이른바 ‘벤츠 검사’ 사건을 부각시키면서 수사권 조정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경찰청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총리실 입법예고의 부당성과 수정 필요성을 알리는 글을 인터넷 공간에서 전파해달라는 호소성 내부 공문을 10만여 명의 일선 경찰에 전파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찰은 직원 1명이 10명의 팔로어만 만들어도 100만 명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계산 하에 SNS 홍보전을 전개하고 있고, 일선 경찰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분위기다. 경찰 일각에서는 이러한 SNS 홍보전을 적극 활용해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사건을 부각시켜 검사비리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네거티브 전략도 적극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검경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이 일면서 상대방의 약점이 담긴 비리파일이 공개될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총리실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입법예고하자 검찰이 기다렸다는 듯이 ‘함바 비리’ 카드를 꺼내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브로커 유상봉 씨(구속기소)가 ‘함바’(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받기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사건 수사를 통해 강희락 전 경찰청장,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 등을 기소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6월 이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았던 임상규 전 농림부 장관이 갑자기 자살하는 사태에 직면하면서 사건 수사를 중단했다. 임 전 장관의 자살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함바 비리’ 사건은 최근 유 씨가 다시 입을 열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함바 운영권 수주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를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유 씨는 최근 8건의 진정을 낸 뒤 검찰에 출석해 “진정 낸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진정서에 경찰 간부를 비롯해 공공기관 대표, 모 기업 회장 등에 대한 내용이 있어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유 씨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차명계좌를 통해 수백억대의 현금을 수시로 인출해 자택과 사무실에 보관해 온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미 사법처리되거나 법원 판결을 받은 인사들 외에도 로비 대상이 더 있을 것으로 관측돼 왔다.
문제는 검찰이 ‘함바 비리’ 수사를 재개하려고 한 시점이다. 검찰이 유 씨로부터 8건의 진정서를 접수받은 시점은 지난 10월 12일이다. 하지만 검찰은 한 달 보름이나 지난 뒤에야 이러한 사실을 공개했다. 총리실의 수사권 조정안 입법예고(11월 24일) 직후 경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하자 27일부터 일부 언론을 통해 ‘함바 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면서 수사가 재개될 경우 그 타깃은 ‘경찰 간부’가 될 것임을 암시했다.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경찰의 반발 기류를 감지한 검찰이 경찰을 옥죄기 위해 숨겨둔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경찰도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검찰이 ‘경찰비리’ 카드를 들고 나올 경우 ‘검찰비리’ 파일로 맞불을 놓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경찰은 SNS 홍보전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은밀히 ‘벤츠 검사’ 사건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또한 부산저축은행 거물 브로커로 활동한 박태규 씨와 접촉한 이른바 ‘박태규 리스트’에 거물급 검찰인사들이 상당수 오르내렸다는 점에서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방침이다. 여기에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미공개 비망록에 전현직 검사장급 인사 11명이 언급됐다는 사실을 적극 활용해 검찰을 압박한다는 내부 방침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수사권 조정 문제로 인한 검경의 갈등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자 정관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각종 비리파일을 쥐고 있는 검경이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각종 X파일을 공개할 경우 정관계 인사들에게 그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월 29일 방송된 MBC <PD수첩>은 SLS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해 제3자를 통해 진행했던 검찰 로비시도에 대한 내용이 담긴 비망록과 이 회장의 폭로 이유를 공개했다. 이 비망록에는 전현직 검사장급 인사 11명을 비롯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박배수 보좌관도 거론됐다. 또 정권 실세 로비창구로 지목된 문환철 대영로직스 대표에게 건넨 돈의 액수와 시간, 장소 등도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방송 이후 네티즌들은 “‘이국철 폭로’ 사건의 주역인 이 회장만 구속하고 현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는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다”며 “비망록에 적시된 검찰 인사들을 비롯해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등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재개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할 경우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의 파워게임이 이전투구를 넘어 정관계 비리 파일을 터트리는 도화선으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본격화되고 있는 검경의 수사권 갈등이 정관계를 뒤흔드는 핵뇌관으로 확전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