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우 베이비부머의 삶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이들은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를 일으킨 산업화의 주역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소득이 80달러도 안 되는 빈곤국가에서 2만 달러가 넘는 중진국으로 발돋움했다. 베이비부머의 역할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젊음을 불태웠다. 70년대와 80년대 군부독재에 맨손으로 항거하다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했다. 급기야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내고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불과 50년 만에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는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다. 베이비부머의 찬란한 공이다.
베이비부머는 가족을 위해 어떤 희생도 불사했다. 이들의 생활은 직장생활, 부모봉양, 자식교육이 전부였다. 직장에서 몸이 부서져도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묵묵히 일을 했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가족을 위해 통장을 터는 일은 당연했다. 행여 자식이 그릇된 길을 가면 자신의 종아리를 내놓고 자식에게 때리라고 하며 가슴을 찢기도 했다.
이제 사회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이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빈손과 외로움뿐이다. 철저히 적자인생을 산 이들의 한숨 소리가 크다. 이들의 노후 문제는 국가가 푸는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 일이라도 해서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는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고용보조금, 세제지원 등을 통해 기업들로 하여금 퇴직자를 고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임금상한제, 근로시간축소 등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고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 재취업이나 자영업경영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강화하는 일도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수출과 성장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내수와 일자리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 이들의 경제적 참여기회를 근본적으로 넓혀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음성세원 발굴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등을 통해 사회안전망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하여 퇴직을 해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베이비부머가 새 희망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은 물론 안심하고 노후를 살 수 있게 하는 일은 현 세대가 당연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고 그들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