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해 강서브…날개 달았어요”
▲ 지난 15일 창단한 스포츠토토 휠체어 테니스팀.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훈련 모습은 일반 선수들과 다를 바 없었다. 왼쪽부터 박주연, 이지환, 김삼주, 여정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김삼주 씨(46)는 테니스 코트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선수였다. 다부진 체격에 긴 머리를 한데 묶어 한껏 멋을 낸 그는 가장 먼저 나와 오후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코트 안쪽에는 그를 포함한 스포츠토토 소속팀 네 명의 선수가 가볍게 2:2 랠리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합숙 첫날치고 호흡이 척척 맞아 보였다. 간혹 서브 미스가 나 공이 경기장 밖으로 튕겨나가면 실수한 선수는 살짝 손을 들어 “sorry”를 외치고 곧 전열을 가다듬었다. 일반 테니스 선수들과 다를 바 없는 훈련 광경이었다.
합숙 첫날인데도 호흡이 좋아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스포츠토토 팀에 소속되기 전부터 다들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또 나를 포함해 세 명은 같은 클럽에 소속되어 활동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15년 전 우연하게 테니스 채를 잡게 됐다는 김 씨는 “사고가 나 입원해 있던 시기에 병원에서 원내 테니스 팀을 창단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처음엔 재활운동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나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에게 휠체어 테니스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우리같이 장애를 가진 이들은 사람이 무섭다. 운동은 그런 두려움을 잊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2011 삼성증권배 대회에서 단식 부문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한 그는 “은퇴 전까지 세계 랭킹 10위권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단순한 클럽 활동만으로 벅찬 목표지만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기 위한 지원 창구로 스포츠토토의 힘을 받게 돼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전했다.
박주연 씨(32)는 이미 여자 단식 부문에서 세계 랭킹 10위에 오른 전적이 있는 그야말로 국가대표다. 대한체육회 직원의 권유로 휠체어 테니스를 시작한 그녀는 “2002년부터 거의 매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현재 여자 휠체어 테니스 선수들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선수층이 얇아 따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10년 전부터 세계를 돌며 랭킹을 끌어올려 온 그녀는 최근 몇 년간 투어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세계 대회에 참가하는 횟수가 줄어 들었다. 자연히 랭킹은 22위(12월 1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그렇기에 이번 실업팀 창단은 그녀에게 큰 지원군이나 다름없다.
10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다른 힘든 점은 없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박 씨는 “확실히 다른 스포츠보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상체의 힘만으로 휠체어를 움직이며 공까지 받아내야 하기에 매일 체력 단련이 필수다. 또 장비도 고가인 편에 속해 처음 접하는 것 못지않게 선수 생활을 오래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밝혔다. 시종일관 밝은 태도로 인터뷰에 임한 그는 체력 훈련을 받으러 올라가기 전 기자에게 “한번 만져 보실래요?”라며 단단한 팔 근육을 과시해 보이기도 했다. 1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박혀 단단해진 근육이었다.
장애인 테니스에 쓰이는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와 달리 폭이 넓고 바퀴가 엇비스듬히 달려 있다. 이는 상체 힘만으로도 자유자재로 턴을 할 수 있게 특수설계된 것이다. 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장착된 뒷바퀴는 경기 내내 또르르 구르며 마찰음을 내 현장감을 더하는 역할을 겸한다. 공개 테스트를 통해 마지막으로 스포츠토토 실업팀에 합류한 이지환 씨(37)는 5년 전 처음 이 낯선 휠체어에 처음 앉아봤다고 한다. 팀원 가운데 가장 수줍은 성격을 가졌다는 그는 테니스를 시작하기 전까지 집 밖에도 잘 나가지 않았단다.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 줄곧 집에만 있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방 안에만 있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 장애인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거기서 휠체어 테니스를 접하게 됐다.”
그는 예전의 자신과 같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있는 장애인들에게 운동을 권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동굴 같은 방에서만 지내는 장애인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은 처음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번뇌에 사로잡힌다. 그런 분들이 방 안에만 있지 말고 꼭 세상으로 나왔으면 한다. 휠체어 테니스가 아니더라도 운동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 된다”고 조언했다.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음성에서 큰 울림이 느껴졌다. 현재 그의 목표는 내년 초에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뽑히는 것인데 이번 실업팀이 그 초석이 될 전망이다. 인터뷰 내내 보여줬던 수줍음은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리라는 목표 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휠체어 테니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다. 일반 테니스 경기의 규칙과 코트의 규격 등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장애인 경기의 경우 2바운드까지 허용된다는 것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친선 경기를 가지며 어울리기도 한다.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여정혜 씨(33)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들과 테니스 코트에 섰다. “처음에는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운동하는 동호회 수준이었다. (사고를 당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바로 국가대표로 나가야 한다니 여간 부담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갑작스런 장애를 얻어 실의에 빠져 있던 그녀를 구해준 것은 가족, 그리고 테니스였다.
그 역시 장애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으로 테니스를 꼽았는데 “장애를 얻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힘도 컸지만 그들이 없는 빈 시간을 온전히 테니스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남편도 테니스를 좋아하고 아들은 학교에서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선수로서 뛰는 것도 좋지만 장애인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개인적인 바람으로 또 다른 실업팀이 많이 생겨서 팀끼리 대항전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합숙 훈련 이후 계획에 관해서는 “아직 창단한 지 열흘 정도 지나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아마 12월 10일 합숙 훈련이 끝나고 동계훈련에 돌입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이번 스포츠토토 실업팀을 이끌게 된 유지곤 감독은 “12월 10일까지 이천체육관에서 합숙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동계훈련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난방 시설이 갖춰진 실내 코트에서 연습한다는 건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해 왔던 일이다. 이어 그는 “자비로 부담해야 했던 개인 투어 경비도 스포츠토토에서 적극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내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찾을 관중이라면 그들의 일취월장한 경기력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30㎡ 남짓한 푸른색 코트가 그들 인생의 스위트 스팟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천=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