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도 않은 잠을 알람으로 깨우고 커피로 뇌를 각성시키며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우리는 시간을 쪼개 쓰는 데 익숙하다. 정해진 시간에 보다 많은 지식을 구겨 넣어야 했던 학생 시절부터 배운 것이 시간을 쪼개 쓰는 법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시간밖에 없는 사람까지도 시간이 얼마나 무섭고 중요한 인생의 학교라는 사실인지 잊고 살게 된다.
얼마 전 시간과 관련된 꿈을 꾸었다. 꿈은 복잡한데 키워드는 11살에서 13살 적의 나였다. 깨고 나서 잊고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내게 물었다. ‘11살에서 13살, 어린이에서 소녀가 되기 시작했던 그 무렵에 너는 무엇을 하고 놀았니?’
그 때 나는 방과 후, 친구들과 모여 노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와서 재빠르게 숙제를 끝낸 이유도 나가 놀기 위함이었다. 대문 밖에만 나가면 세상은 온통 놀이터였고, 온통 친구였다. 해질 무렵,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들이기 전까지 나는 고무줄을 하고, 줄넘기를 하고, 공기놀이를 하고 놀았다. 엄마가 외출을 하며 어린 동생들을 돌보라고 하면 동생들과 블록 쌓기나 술래잡기를 하고 놓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느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지향성 속엔 아이 때 놀던 방식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놀던 방식과 하는 일도 닮아있는 경우도 종종 본다. 승부욕이 자극되어야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 승부욕과 관련된 놀이를 통해 자기를 만들어갔을 것이다. 딱지를 따고, 구슬치기를 하고, 땅따먹기를 하고, 대장놀이를 하는 등. 반면 소꿉놀이와 인형놀이를 주로 하며 놀던 소녀들은 관계지향적인 일을 잘한다. 일과 놀이는 그렇게 연결되고, 놀이는 언제나 창의성의 보고(寶庫)다.
어제는 안산의 감골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북 콘서트’라는 것에 참여해봤다. 노래도 듣고,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2시간이 그냥 지나갔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책’과 ‘음악’을 매개로 이렇게 기분 좋게 놀 수 있는데, 아는 사람끼리는 이렇게 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다. 건강하게 노는 문화가 삶을 건강하게 만드니까. 12월이면 송년회를 한다고 여기저기서 오라고 한다. 가보면 기름진 음식에 빠지지 않는 술, 들으나 마나한 의례적인 말, 때때로 노래방!
한번 모임을 주도해보자. 형식적이지 않은 모임으로,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모임이면 더 좋다. 주제가 있어도 좋지만 관심이 비슷한 사람을 모으면 주제는 저절로 생긴다. 물론 주제는 있어도 되지만 목적이 있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관건이다.
모임이 커지면 산만해지고 형식적이 된다. 인터넷 유머나 개콘, 혹은 정치인 욕을 넘어서지 못한다. 모여서 도란도란 속 얘기가 편한 사람과 숫자가 좋다. 그리고 음식! 빚졌다는 느낌이 들거나 기가 죽어버리게 화려해서는 안 된다. 음식은 소박할수록 좋고, 하나씩 숙제해오게 해도 된다. 소박한 식사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모여야 모임이 충실해지고, 시간이, 무심하고 무겁고 무서운 시간이 아깝지 않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