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뼈째 포식 뱃속서 ‘콕콕’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대한생명 인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 ||
국정감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재계의 최대 이슈는 삼성그룹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화 때리기’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대한생명 매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대한생명이 한화그룹 부실계열사의 자금 지원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대한생명의 한화 부실 계열사 지원은 명백한 매각계약이행사항 위반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가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를 취소하고 지분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9월27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재경위)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더불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신청에 합의했다.
이 의원이 보유한 ‘한화그룹과 대한생명간 거래 현황’ 자료를 보면 한화그룹과 대한생명(신동아화재와 63시티 포함) 간의 거래는 2002년 32건에 2억원 규모, 2003년에 75건에 9억원, 2004년 2백56건에 1백80억원, 2005년 1분기에만 61건에 41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대한생명과 자회사인 신동아화재는 경기부진에 따른 회원권 미분양 등으로 13억원의 적자를 낸 한화국토개발을 도와주기 위해 미분양 콘도 회원권 1백60계좌와 골프회원권 9계좌를 집중 매입하는 방식으로 총 1백38억5천만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했다고 이 의원은 주장하고 있다.
한화국토개발은 2003년 1백7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흑자경영이 이루어져 왔으나 지난해 경상이익에서 2억원, 당기순이익에서 1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 의원의 주장대로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 등 계열사들이 한화국토개발의 회원권 등을 양수하지 않았을 경우 적자규모는 1백55억원 규모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의 모든 자산운용은 한화증권과 한화투신운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대한생명의 설비, 용역 등의 계약도 한화 계열사로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대한생명이 한화그룹의 계열사들을 먹여 살리는 ‘큰머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에 대한 매각계약이행조건을 보면, 대한생명(신동아화재, 63시티 포함)은 2005년까지 한화그룹 계열사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 금지, 한화그룹은 2005년 말까지 부채비율 200% 미만 달성 등이다. 한화는 지난 연말 부채비율(지분평평가익 제외)이 200%를 초과한 상태로 되어 있다고 이 의원은 주장하고 있다.
한편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한 입찰에서 맥쿼리생명과의 이면계약을 숨기고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이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된 것도 한화에게는 부담이다. 지난 7월1일 서울중앙지법은 한화그룹 관계자에 대한 재판에서 이면계약을 숨긴 것은 인정되나 단독입찰이었기 때문에 입찰방해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맥쿼리와의 이면계약 사실은 인정된 셈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가 반발하는 등 한화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들끓자 지난 9월7일 금융감독원은 정례브리핑에서 맥쿼리와의 이면계약이 보험업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승연 회장도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의 불법 내지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점점 부담을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7월1일 법원의 판결에서 2002년 9월 대한생명 인수가격을 낮추기 위해 당시 전윤철 재경부 장관에게 15억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뇌물로 전달하려고 시도한 것, 같은 해 8월 당시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에게 3천만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전달하고 영수증을 교부받지 않은 점 등에 대해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이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최근 도청파문으로 김승연 회장도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정치자금 전달 시도에 대한 불법도청으로 시작된 X파일 파문은 급기야 국정원 직원들이 2002년 3월까지도 계속 도청을 했다고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02년 9월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도청 녹취록을 공개하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당시 여권과 청와대의 핵심 실세들을 포함, 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에게도 로비를 하라고 직접 지시한 증거라며 폭로한 바 있다. 당시에는 녹취록의 출처에 대한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아 낭설에 그쳤다.
정 의원이 당시 제시했던 녹취록의 시기는 2002년 5월로 국정원이 밝힌 마지막 도청 시기와 두 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현재 국정원 도청이 2002년 대선 이후에도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김 회장의 불법로비 직접 지시 의혹은 상당한 심증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불법도청이 법적 증거로 쓰일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X파일 파문의 여파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삼성그룹이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속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주장해 양당 의원들의 합의로 두 사람을 함께 증인으로 세운 것이다.
김 회장의 경우 증인출석이 예정된 10월5일까지 해외출장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 특별히 국감 출석을 피해갈 뾰족한 방도가 없는 셈이다. 국회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국감 증인출석을 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김 회장은 지난해 대한생명 헐값 인수와 관련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미국에서 열린 유엔평화대학개발위원회 위원장 위촉식 때문에 출국한 상태라 출석을 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해외출장 일정을 급하게 잡아 출국한다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그러나 한화로서는 그룹 총수가 국감 증언대에 서 의원들의 집중적인 질문공세에 꼼짝달싹 못하는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대한생명은 생명보험 업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2년 당시 별다른 주력사업이 없던 한화는 대한생명 덕분에 현재 재계 순위 13위를 차지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한화는 당시 연간 순이익이 8천억원대에 이르는 대한생명을 7천억원의 가격으로 매입했다. 당시 대한생명에는 공적자금 4조9천억원이 투입되었으나 아직 3조9천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화로서는 대한생명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계열사가 되었지만 또 대한생명 때문에 가시밭길을 계속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회장이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또하나의 재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