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 실험만 하다가…꼴깍
▲ 대한축구협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지난 7일 전격 경질된 조광래 대표팀 감독. 조 감독의 1차 계약기간은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까지로 단 한 경기를 앞두고 불명예 퇴진했다. 일요신문 DB |
# 예고됐던 코미디
조광래 감독은 공중파 TV채널의 스포츠뉴스가 나가기 2시간 전인 오후 8시쯤, 황보관 협회 기술위원장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정말 어려운 말씀을 드리게 돼 죄송스럽다”는 말로 시작된 황보 위원장의 경질 통보에 조 감독은 “이것이 정말 기술위원회의 최종 결정이냐. 날 경질하기 위해 기술위원회가 소집된 적이 있느냐. 일단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을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는 코미디와 다를 바 없었다. 엄밀히 말해 기술위원회는 아직 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 비공식적으로 회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기술위원 명단을 떳떳하게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협회 내 윗선에서 결정된 걸 황보 위원장이 통보하는 형태가 이뤄졌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황보 위원장과 조 감독이 만났을 때에도 최종 통보가 이뤄진 건 아니었다. 실제로도 황보 위원장은 해임 보도가 나온 하루 뒤인 8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내가 부임한 뒤 새로운 기술위원들을 선임하고 있는 과정이다.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 비공식적으로는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이게 전부 사실이라면 결국 외부에 오픈된 환경이 아닌, 사적 자리에서 나온 얘기가 공론화됐다고 보는 게 맞다. 또 구성도 안 된 기술위원회의 ‘비공식’ 회의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협회 행정이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그렇다면 협회 고위층의 견해는 어땠을까.
일단 전임 기술위원장이었던 이회택 부회장은 “방송 보도를 통해 알았다. 한일전 이후에 조금씩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또 기술위원회가 열렸는지 여부도 알 수 없지만 (방송 보도가 나올 때까지) 부회장단에는 그런 조 감독의 해임 통보가 없었다. 대표팀 감독 해임이 결정됐다면 전임 기술위원장이었던 내게도 보고가 이뤄졌어야 한다. 나도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거나 해임할 수 있는 전권을 지니고 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전임 기술위원장이었다. 만약 기술위원회가 열렸다면 당연히 즉각 보고가 이뤄져야 했다.
황보 위원장과 함께 기자회견에 동석했던 김진국 협회 전무이사는 “기술적으로 대표팀의 경기 운영이나 경기력, 팀 선수와 지도자의 신뢰 등에 대해 기술위원장이 전체적으로 판단했다. 또 회장단 회의에 보고했고, 이를 회장단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이 내려졌다고 보면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결국 “전혀 해임 통보가 내려진 줄 몰랐다”던 부회장단과 기술위원회 중 누군가는 거짓을 얘기했다는 것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울러 제대로 구성되지도 못한 기술위원회에서, 선임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황보 위원장이 홀로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고 봐야 한다.
▲ 협회 일방통행 지난 8일 조광래 감독 해임건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해임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진국 전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조 감독에 대한 협회 내의 반응은 내내 싸늘했다. 부임 1년 5개월여 동안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아팠던 기억, 갈등했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
사실 조 감독이 선임됐을 때부터 의아하다는 시선이 많았다. 작년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허정무 감독(현 인천 유나이티드)이 물러나자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손사래 친 가운데 조 감독이 유일하게 대표팀 사령탑 부임을 희망했다. 조 감독은 축구계의 오랜 비주류였다. 밀실 행정, 그들만의 리그를 끝내고 조 감독을 끌어안는 제스처로 협회와 한국 축구는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는 듯했지만 결국 이별을 택했다.
조 감독의 발자취는 올해 1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정점을 찍었고, 8월 한일전 대패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세대교체와 전력 극대화까지 여러 마리 토끼몰이를 하기에는 지원 없이 부족함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핵심 전력이었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밴쿠버)가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성적이 좋지 않자 여러 가지 뒷말들도 쏟아졌다. 소위 ‘친 미디어’로 알려진 조 감독에 대한 협회의 불만, 대표팀 내 주전과 비주전 선수들 간의 갈등, 협회 내 대표팀 지원스태프와의 갈등 등 확인될 수 없고, 실체가 불분명한 루머들로 인해 조 감독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일본전 패배 이후 삿포로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한 협회 고위 인사는 “뭔가 대표팀이 이상하다. 걱정스럽다”고 했다. 정말 대표팀의 약화된 전력이 걱정거리였는지, 협회와 마찰을 빚는 조 감독이 걱정거리였는지는 아직까진 알 수 없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또 있다. 기술위원장을 하던 이회택 부회장이 물러나고, 올 시즌 K리그 도중 성적 부진으로 FC서울 지휘봉을 내려놓았다가 협회로 자리잡은 황보관 기술교육국장을 새 기술위원장에 선임하면서 조 감독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는 얘기다.
조 감독도 앞서 마찰을 빚었던 이 부회장이 떠나고 황보 위원장을 들여올 때부터 자신의 위치가 불안정하다는 걸 느꼈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이 기술위원장 자격으로 조 감독을 내쫓으면 좋지 못한 얘기가 나올 수 있으니 결국 황보 위원장이 협회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것. 이는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대표팀 사령탑이 경질될 때마다 기술위원회가 모든 책임을 떠안았던 전례가 대부분이었다.
조 감독의 측근도 “감독께서도 은연중 이상한 낌새는 눈치 챘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빨리 통보가 이뤄질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직 3차 예선에서 탈락한 것도 아닌 데다, 조 1위를 달리고 있다. 탈락한 것도 아닌데 수순도 이상하게 이뤄져 서운함이 클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조 감독도 “쿠웨이트전이 남아 있는데, 굳이 이런 선택밖에 할 수 없었는지는 서운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조 감독의 1차 계약기간은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까지였다. 결국 중도 해임됐다고 봐야 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발표 전후 조 감독은…
그날도 쿠웨이트전 생각뿐
조광래 감독의 경질 소식이 알려지기 전날인 7일, 조광래 감독은 한 축구인에게 전화를 걸어선 안부를 물었다. 그 축구인은 “전북과 울산의 챔피언결정전에도 안 보이시고, K리그 대상 시상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 많다. 요즘 잘 지내고 계시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경기는 모두 현장에서 봤다. 그러나 코치들과 따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어차피 경기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세상이니, 다음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 여론도 다시 좋아지리라 믿는다”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즉, 그때까지만 해도 조 감독은 자신의 경질 소식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축구인과 통화를 마치고 약 2시간이 지나 조 감독은 황보관 기술위원장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난 후 사퇴 종용을 받은 셈이다.
조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월드컵 예선전도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질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는 여전히 내년 2월 29일에 있을 쿠웨이트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는 부상으로 제외된 이청용이 합류하게 돼, 침체된 대표팀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도 저버리지 않았다.
조 감독의 경질 소식에 대표팀에 소속됐던 선수들도 당황스럽다는 반응들 일색이다. 특히 대표팀의 중앙수비수 역할을 담당한 울산현대의 곽태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계속 한숨을 내쉬며 “결국엔 우리(선수들) 때문에 감독님이 물러나시게 됐다. 우리가 잘했더라면 감독님이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으셨을 텐데…. 뭐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질 소식에) 놀랐고, 당황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곽태휘는 이런 설명도 곁들였다.
“이제야 조광래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만화축구’를 이해하고 적응해 가고 있는데, 이렇게 그만두시게 되면 그동안 선수들이 땀 흘려 만들어갔던 축구가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지난번 레바논전에서의 경기 내용에 실망하신 팬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고 결과를 확인하고 결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누구보다 감독님께 너무 죄송하다.”
조광래 감독은 8일, 수백 명의 지인과 기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일체 통화를 하지 않았다. 기자 또한 조 감독에게 전화를 하다가 받지 않아서 문자를 보냈는데 한참 후 조 감독이 이런 답장을 보냈다.
‘이 기자랑 꼭 식사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해요. 그래도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킬게요. 감독 조광래.’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그날도 쿠웨이트전 생각뿐
조광래 감독의 경질 소식이 알려지기 전날인 7일, 조광래 감독은 한 축구인에게 전화를 걸어선 안부를 물었다. 그 축구인은 “전북과 울산의 챔피언결정전에도 안 보이시고, K리그 대상 시상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 많다. 요즘 잘 지내고 계시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경기는 모두 현장에서 봤다. 그러나 코치들과 따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어차피 경기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세상이니, 다음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 여론도 다시 좋아지리라 믿는다”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즉, 그때까지만 해도 조 감독은 자신의 경질 소식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축구인과 통화를 마치고 약 2시간이 지나 조 감독은 황보관 기술위원장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난 후 사퇴 종용을 받은 셈이다.
조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월드컵 예선전도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질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는 여전히 내년 2월 29일에 있을 쿠웨이트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는 부상으로 제외된 이청용이 합류하게 돼, 침체된 대표팀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도 저버리지 않았다.
조 감독의 경질 소식에 대표팀에 소속됐던 선수들도 당황스럽다는 반응들 일색이다. 특히 대표팀의 중앙수비수 역할을 담당한 울산현대의 곽태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계속 한숨을 내쉬며 “결국엔 우리(선수들) 때문에 감독님이 물러나시게 됐다. 우리가 잘했더라면 감독님이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으셨을 텐데…. 뭐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질 소식에) 놀랐고, 당황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곽태휘는 이런 설명도 곁들였다.
“이제야 조광래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만화축구’를 이해하고 적응해 가고 있는데, 이렇게 그만두시게 되면 그동안 선수들이 땀 흘려 만들어갔던 축구가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지난번 레바논전에서의 경기 내용에 실망하신 팬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고 결과를 확인하고 결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누구보다 감독님께 너무 죄송하다.”
조광래 감독은 8일, 수백 명의 지인과 기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일체 통화를 하지 않았다. 기자 또한 조 감독에게 전화를 하다가 받지 않아서 문자를 보냈는데 한참 후 조 감독이 이런 답장을 보냈다.
‘이 기자랑 꼭 식사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해요. 그래도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킬게요. 감독 조광래.’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