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정태 될 수 있다’ 압박?
![]() |
||
▲ 김승유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 | ||
다행히도 9월28일 증권선물위원회가 김 의장의 주식거래에 대해 증권거래법 위반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김 의장은 금융기관의 수장으로서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을 내비친 셈이다. 그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김 의장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배경에 대해 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정부가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초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하나은행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실사를 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지난 6월 실시된 금융감독원 정기검사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혐의가 드러나 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의장은 지난해 하나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두고 있는 S사의 주식을 매매해 6백만원의 이득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김 의장이 S사의 내부정보를 활용해 주식거래 이득을 올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수많은 기업을 상대로 거래하면서 우월적 위치에 있는 금융기관장의 자리라면 거래기업의 정보를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도덕적 요구덕목이다.
그러나 김 의장이 직접 주식매매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S증권사에 다니던 김 의장의 아들이 가족들의 명의로 주식계좌를 만들고 이를 주식거래에 이용한 것이다. 증권사 직원 또한 주식거래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 이 일이 밝혀지자 김 의장의 아들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김 의장의 아들은 자신이 직접 주식거래를 하기 위해 퇴사했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선물위원회가 무혐의 판정을 내린 것은 ‘취득 이익이 작고, 직접 거래를 하지 않았으며, 저촉되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 이유로 보인다. 그렇지만 자식이 부모의 계좌를 활용해 주식거래를 할 정도로 스스럼이 없다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가정보를 전해줬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김 의장은 이 때문에 도덕적 타격을 입었다.
거래기업의 주식거래 외에도 김 의장이 하나은행 자사주 매각으로 3억원대의 이득을 본 것에 대해서는 반환 조치가 내려졌다. 김 의장은 8월3일 보유주식 1만주를 주당 3만3천6백56원에 매각해 3억3천6백56만원의 이익을 올렸다. 동시에 스톡옵션을 행사해 2천4백40주의 보유지분을 늘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런 일들이 금감원 관계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측은 이것이 금감원 공식발표가 아닌,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시인한 것으로 실제보다 과장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은행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있었다면 금감원에서 이런 말들이 나왔겠느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 의장의 거취가 주목받는 이유는 일단 너무 오랫동안 은행의 책임자를 지내왔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의 수장이 교체된 반면 김 의장의 경우 1997년부터 올해 3월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을 맡기 전까지 8년간 최장수 은행장이었다. 올해 12월 하나금융지주가 출범하면 또다시 거대 금융기관의 수장이 되는 것이다.
김 의장과 금융당국의 마찰은 2003년 말 LG카드 매각 절차를 앞두고 불거졌다. 당시 하나은행은 LG카드 매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다 LG카드 부실규모가 생각보다 커지면서 매각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당시 금융권의 부실해소 방안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경제부총리와의 갈등으로 낙마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LG카드의 LG그룹 책임설을 펴며 은행들의 공동책임을 강하게 반대한 것과는 다르지만 김승유 당시 하나은행장도 자사 이기주의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올해 초엔 김 의장이 내부갈등으로 노조에 의해 고발당하기도 했다. 하나은행이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는 전근대적인 여자행원 제도 때문이었다. 창구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이들은 승진과 봉급에서 차별을 받고 있어 여성차별로 불렸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올해부터는 남자 직원도 함께 뽑았으나 남자 직원은 입사 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하나은행 노조는 올해 3월 김 의장을 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고발한 바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한 직종에 한쪽 성(여성)이 과도하게 많은 경우 성차별로 볼 수 있고, 실제로 서울노동청에서 성차별 판정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2001년 합병한 서울은행 출신 직원들의 불만도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다. 통합은행인 하나은행은 구 한국투자금융 출신 직원 위주의 승진이 이루어지고 있고 구 서울, 보람, 충청은행 출신들은 여기에서 배제되어 있는 데다 승진인사가 3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등 직원들의 불만이 크다고 전해진다.
내부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김 의장 외에도 다수의 임원이 자사주 매매를 통해 억대의 수익을 올린 것을 두고 금융기관장으로서의 자격시비가 일고 있는 것이다.
송상현 사외이사의 경우 8월25일 스톡옵션 행사 후 나흘 뒤 이를 처분해 1억5천만원대의 수익을 올렸다. 김주성 이사와 김정태 이사는 비슷한 시기 스톡옵션을 행사했다. 모두 김 의장이 스톡옵션을 행사한 시점과 비슷한 시기이다. 자사주 매각으로 큰 차익을 본 임원의 수는 7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기관의 임원은 자사주를 6개월 이내에 매각할 수 없음에도 이를 어긴 것이다.
직원들에게는 자사주뿐만 아니라 주식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공문을 띄우고 특히 자금부, 경리부 직원들은 각서까지 받았는데 임원들의 행태는 이와 맞지 않는다.
금융권에서는 김 의장에 대한 최근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금융지주사 출범을 앞둔 하나은행에 대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일종의 신호가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주식거래에 대해서는 무혐의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간의 언론 보도들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나은행측은 이에 대해 “28일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무혐의 처리가 되었고, 금융감독원이 하나은행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정기검사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제기된 것이지 큰 문제가 있어서 조사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