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하나로에 실탄투하 저울질
▲ 구본무 회장. | ||
지난달 15일 LG는 오티스LG엘리베이터의 주식 1백59만2천주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처분금액은 3천3백30억원. LG측은 부채비율 축소 등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M&A설이 한창 돌고 있는 와중이라 주식처분 배경에 의문이 더 생길 수밖에 없었다.
LG그룹은 지난해 GS그룹이 분리된 이후 외형의 축소와 순이익의 감소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LG의 돌파구로 점쳐지고 있는 것은 하이닉스반도체와 하나로텔레콤이다.
2001년 10월 채권단에 의한 공동관리가 시작된 하이닉스는 올해 7월 조기 워크아웃 종료를 선언하고 10월말까지 일부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어서 조만간 인수가능한 업체들의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하나로텔레콤의 경우 뉴브리지캐피탈 등 외국계 대주주에 의한 M&A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데다 최근 LG가 통신사업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LG의 인수설이 힘을 얻고 있다.
LG로서는 1999년 ‘빅딜’로 하이닉스를 ‘빼앗긴’ 적이 있는 데다 주력사업인 전자, 통신 부문에서 반도체는 필수적이다. 당시 구본무 회장이 눈물을 머금고 반도체 사업을 떼어준 사연은 널리 알려진 사실. 최근 구자경 전 LG그룹 회장도 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밝힌 바 있다. 또 삼성의 눈부신 성장동력이 반도체라는 점도 하이닉스에 미련을 둘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지만 하이닉스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주가가 급등해 시가총액이 10조원이 넘을 정도로 덩치가 커져 인수자금에 대한 부담은 커졌다. 하이닉스의 채권단은 연내 22.8%의 지분을 매각한 뒤 2007년까지 매각이 제한된 51%는 그 이후에 매각할 계획이다. 문제는 22.7%의 지분만 해도 2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보니 이에 대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느냐이다.
LG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1조3천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또 LG전자는 7월 보유중인 LG필립스LCD 지분 44.57% 중 6.67%를 처분해 4천1백71억원을 확보했다. 지난달 (주)LG가 매각한 오티스LG엘리베이터 주식 3천3백30억원을 합할 경우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은 2조원이 넘는 셈이다. 어쨌든 하이닉스 매각에 대비한 ‘실탄’은 준비해놓은 셈이다.
현재까지 LG측은 하이닉스 인수에 대한 어떤 긍정적인 반응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를 두고 과열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 반도체 업체인 ST마이크로의 경우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되면 인텔, 삼성에 이은 업계 3위권 진입이 가능하다. 또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반도체를 국가적으로 밀고 있는 중국의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다만 국내 여론이나 채권단의 뜻이 국내업체가 인수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섣부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LG그룹의 신사업을 향한 움직임이 하나둘씩 포착되고 있다. (아래)하이닉스반도체와 하나로텔레콤에 대한 구체적인 M&A 시나리오도 떠오르고 있다. | ||
그래서인지 증시 일각에선 하나로텔레콤 인수설에 점수를 더 주고 있기도 하다. LG의 부인에도 하나로텔레콤 인수설이 사실인 양 받아들여질 정도로 주변의 관심이 뜨겁다. 한때 LG의 직원들이 구본무 회장의 지시를 받고 미국을 방문해 하나로텔레콤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과 AIG 등의 관계자를 만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LG그룹측은 이 기간 내 출장을 가는 LG 관계자는 없었다며 소문을 부인했다.
대신 데이콤이 10월11일부터 4일간 미국에서 로드쇼(기업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LG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체인 데이콤도 하나로텔레콤과의 합병에 거론되는 업체이다 보니 이러한 소문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 7월부터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직접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최태원 SK그룹 회장, 남중수 KT 사장을 잇따라 만나면서 LG그룹의 통신업 진출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국내 통신업계의 ‘빅3’ 중의 하나인 LG가 나머지 통신 ‘빅3’인 SK텔레콤, KT와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수장들을 접촉한 것은 통신사업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유·무선 통신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LG로서는 차세대 통신환경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하나로텔레콤의 초고속인터넷망이 절실한 상황이다. 초고속인터넷에서는 KT에 뒤지고 무선통신 및 무선인터넷에서는 SK에 뒤졌지만 유·무선 통합환경에서는 LG전자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선점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무 회장이 올해 초부터 주창한 블루오션에 해당하는 신사업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이닉스와 하나로텔레콤 인수와 관련해 변수가 되는 것은 SK다. 초고속인터넷 등 유선망이 없는 SK로서는 하나로텔레콤 인수가 절박한 상황일 수도 있다. LG로서는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두고 SK와 과열경쟁을 빚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물밑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LG로서는 SK와 협력관계를 구축할 경우 공동으로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고 하이닉스 인수에 자금을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LG그룹측은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LG전자의 LG필립스LCD 주식 매각이나 (주)LG의 오티스LG엘리베이터 주식 매각에 대해서도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차입경영을 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