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 균형잡기 진땀나네
▲ 최근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C&C에 계열사들이 부당지원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사랑의 집짓기(해비타트)’에서 자원봉사하는 최태원 회장. | ||
하지만 최근 SKC&C 다른 문제로 또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SK그룹 계열사들이 SKC&C에 과도하게 SI(System Integration: 시스템 통합) 아웃소싱을 몰아주어 대주주 부당지원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것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SI 아웃소싱을 삼성SDS, LG CNS 등 그룹사에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SK그룹의 경우는 공교롭게도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업체가 SKC&C이다 보니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최근 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으로 이미지업을 시도하고 있는 SK그룹으로서는 몹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SKC&C의 주요고객인 SK텔레콤은 SI 아웃소싱 비중을 줄이고 경쟁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최 회장이 SKC&C의 절대 지배 주주(44%)이고 이 SKC&C가 SK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SK텔레콤이나 SK해운, SK네트웍스, SKC, SK엔론 등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SK㈜의 1대주주(11.18%)이다. 즉 SKC&C를 통해 최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
SKC&C의 사업이 너무 잘 돼도 대주주 부당지원이라는 비난이 따르고, 사업이 안 될 경우 지배구조에 균열이 오기 때문에 SK그룹으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닌 것이다.
SKC&C는 1991년 설립된 회사로 최태원 회장이 1994년 SK건설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면서 대주주가 됐다. 이후 SKC&C는 2001년 SK㈜의 지분 11.18%를 인수하면서 사실상 지주회사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자산총액 47조원대 규모의 국내 굴지의 그룹을 자본금 4백억원대의 업체 하나를 통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비상장사이자 최 회장 개인 회사나 다름없는 SKC&C가 SK 계열사들의 아웃소싱 계약을 거의 도맡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SKC&C 매출 9천3백억원 중 계열사 비중이 70%에 달한다. 특히 매출액 중 45%는 SK텔레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대주주 지원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SKC&C가 SK텔레콤과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한 것은 1998년. 11년간 총 1조3백억원의 전산용역을 담당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사외이사들은 SKC&C가 최 회장의 개인지분이 높은 비상장사이고 과거에도 부당지원이 문제되었던 기업이라며 아웃소싱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계약은 체결됐고 SKC&C도 매출이 급성장했다.
SK텔레콤과의 계약건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난해 계약이 완료되어 재계약을 해야 하지만 SK텔레콤과의 거래 규모를 조정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재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웃소싱 작업만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매년 지급하는 용역 수수료가 계약 직후 1천억원대에서 2002년 이후 2천억원대로 크게 늘었고, 지난해까지 총 1조1천억원의 수수료를 지급했다. 11년 계약규모를 6년 만에 채운 것이다. 이 외에도 SK텔레콤은 비품 및 기계장치 등을 SKC&C를 통해 구매하면서 같은 기간 8천2백억원가량을 지급했다.
문제는 지난해 재계약이 추진되었지만 사전승인권을 갖고 있는 사외이사들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SK그룹 내부에서는 SK텔레콤의 계약 물량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주주 부당지원 논란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SK텔레콤을 대상으로 하는 계약 물량을 줄이는 방안과 최 회장의 SKC&C 지분을 계열사들에게 매각하는 방안 두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최 회장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은 SKC&C의 주식 적정 가격이 얼마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최 회장의 그룹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한편 SKC&C는 계약물량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SKC&C의 관계자는 “삼성이나 LG처럼 자체적으로 SI 물량을 소화하고 있는 것일 뿐인데 왜 문제삼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SKC&C는 계약 물량이 줄어들 것에 대한 대안을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SKC&C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인디펜던스’를 인수하고 콘텐츠 공급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인디펜던스는 국내외 방송광고의 특수효과(CG)를 전문적으로 해온 업체로 지난해부터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도 시작했다.
이는 신규사업을 통한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이달 말 출시할 PMP(Portable Media Player: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의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SKC&C는 PMP제조업체 ‘디지털큐브’로부터 단말기를 공급받고 인디펜던스 등의 업체로부터 콘텐츠를 공급받는다는 전략이다. SKC&C가 PMP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SKC&C측은 2년 전부터 신규사업을 찾아왔다고 밝혔다. “SI사업은 그룹내 물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대신 해외시장 개척 등 새로운 고객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신규사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오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SK텔레콤의 계약물량이 줄어들어도 큰 충격은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최 회장의 고민을 SKC&C가 덜어준 셈이다. 최 회장으로서는 당분간 SKC&C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도덕적 부담이 줄겠지만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대외적 명분을 위해 현재 0.89%에 그치고 있는 SK㈜의 지분을 어떻게 늘릴지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