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한’ M&A 제국 “난 아직도 배 고프다”
▲ 강덕수 STX 회장 | ||
그 주인공은 바로 STX그룹의 강덕수 회장.
지난 6일 증시 장 마감 후 장외거래로 대한통운 주식 2백32만 주(지분 21.3%)를 전격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 회장의 최근 몇 년간 기업인수합병(M&A) 성과들이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지난해 11월 범양상선(STX팬오션)을 인수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1천억원대의 M&A작업을 개시했기 때문이었다. M&A의 귀재라는 강 회장의 능력을 또 한 번 알린 셈이다.
강 회장이 상고 졸업의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으로 그룹 회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란 점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부분이다.
동대문상고를 졸업한 강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쌍용에서 부장을 지낸 후 쌍용중공업에서 이사, 상무, 전무를 지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해 1980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2003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을 수료했다.
강 회장에게 찾아온 첫 번째 기회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쌍용중공업의 부실이 쌓인 것이었다. 2000년 11월 쌍용그룹은 쌍용중공업 지분 34.45%를 한누리증권이 주축이 된 한누리컨소시엄에 매각했다. 당시 한누리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깊숙이 관여했던 강 회장은 회사 매각 후 대표이사로 선임되었다.
당시 쌍용그룹은 방산업체에다 꾸준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쌍용중공업을 매각하기 싫어했지만 쌍용그룹의 부채를 떠안은 것 때문에 부실이 쌓여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당시 CFO(재무담당이사)로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강 회장은 적극적으로 나서 한누리컨소시엄이 쌍용중공업을 인수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한누리컨소시엄은 한누리증권이 주간사이긴 했지만 텔슨 등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이 강 회장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기업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재무관리 전문가였던 강 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 재직하던 2001년 2월 상여금으로 스톡옵션 1천 주를 받은 것과 사재를 털어 STX 주식을 매입한 것을 합쳐 오너가 되었다. 당시 STX의 주가가 6백30원에 불과해 강 회장이 대주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01년 10월의 대동조선(현 STX조선) 인수는 강 회장에게 또하나의 기회였다. 대동조선 인수전에서 실무진들이 다른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의 가격을 써 냈을 때 강 회장은 대동조선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감안한 수준으로 가격을 써내라며 경쟁자들의 두 배에 달하는 1천억원의 매입가를 제시한 바 있다.
돈이 되는 물건은 확실히 구분해 과감한 공격으로 반드시 차지하고야 마는 것이 강 회장의 성향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서도 경쟁업체들이 범양상선의 주가를 1만7천원 이하로 봤을 때 강 회장은 2만2천원대의 가격을 제시했다. 범양상선을 인수하는 데 4천1백51억원이라는 거액을 거뜬히 지불한 것이다.
이처럼 강 회장은 선박 및 전차 엔진(쌍용중공업)→에너지(2002년 구미·반월공단 열병합발전소 인수)→조선업(대동조선)→해운업(범양상선)으로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매출액 2천7백억원대의 기업을 4년 만에 계열사 14개, 매출액 4조9천억원의 재계 28위 그룹(공기업 포함 35위)으로 성장시켰다. 강 회장을 M&A의 귀재로 부르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STX팬오션(범양상선)을 인수한 후 강 회장은 올해 초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했다. ‘왜 해외시장에 서둘러 상장하느냐’라는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강 회장에게는 또하나의 M&A를 준비하는 수순이었다. 국내에서는 대주주가 바뀐 뒤 1년 이내에는 추가상장이 금지되어 있지만 해외에서는 가능하다는 데에 착안, 강 회장은 해외 상장이라는 히든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이런 승부사적 기질 때문에 강 회장이 대한통운 인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대형 기계설비, 플랜트 장비 등 중량품 수송에서 설치, 연안해송, 항만하역 등의 업종을 가진 대한통운을 인수할 경우 시너지효과가 커지는 것은 물론 물류업체로서는 상위권에 들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한통운 지분 매입과정에서도 강 회장 특유의 과감함을 엿볼 수 있다. 오버넷이라는 회사가 ‘5%룰’(지분 5% 이상 매입시 공시해야 하는 의무조항)을 피해 주식을 분산매입한 뒤 STX에 매각해 M&A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도록 한 점 때문에 사전교감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한통운 주식 매각 과정에서 제3자가 중개인으로 나섰기 때문에 STX조차 매각 주체가 누구인지 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강 회장이 자신에게 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오버넷은 외국계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회사다.
하지만 STX가 대한통운을 인수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당장 대한통운측이 STX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데다 향후 인수전에서 경합할 금호아시아나와 CJ 등의 견제도 변수다.
또 이제껏 강 회장의 승부수가 모두 다 통했던 것만은 아니다. 최근 있었던 인천정유와 한국종합에너지(옛 한화종합에너지)의 인수전에서 SK와 포스코에 선수를 뺏기기도 했다. 또 STX조선의 부채가 인수당시 4천5백억여원에서 올 상반기에 1조2천5백억여원으로 늘어나고 있어 ‘경영 능력’에 대한 검증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