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설치하면 ‘강력 조치’ 정치인이 설치하면 ‘수수방관’
현수막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 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에 의해 관리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칙도 가볍지가 않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건당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다. 이에 각 지자체는 지정게시판까지 설치해 도시미관을 해치는 무분별한 현수막 설치를 차단하려고 노력 중이다.
옥외광고물법이 존재하고 지자체가 노력을 벌이는데도 현수막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등극했다. 전국 지자체가 보상금제를 운영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투입되는 지자체의 혈세 낭비도 만만치가 않다.
문제는 불법으로 부착된 현수막을 두고 행해지는 이중 잣대다. 바로 거제시에서 이와 관련해 잡음이 일고 있다. 현수막 설치로 행정처분을 받은 이들이 버젓이 내걸린 정치인들의 개인 홍보 현수막을 보고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불법 현수막 설치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A 씨는 “현수막을 설치하러 다니면서 정치인 관련 현수막이 수도 없이 게시된 것을 본다”며 “시는 정치인 현수막은 철거하지 않는 것을 보며 서글픔을 느낀다. 먹고 살기 위해 과태료 낼 것을 각오하고 붙이는 입장이라 강하게 따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옥외광고물법 제8조 적용 배제를 살펴보면 정치인이 설치한 현수막에 대한 특례 조항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해당 조항 4호에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정치활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해 표시·설치하는 경우에는 불법 현수막으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인의 개인적인 홍보 현수막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의 현수막을 제거하는 것은 공무원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보인다. 자칫 정치적인 목적으로 몰아가면 난감한 경우에 처할 수 있어, 현수막 철거를 기피하고 있다. 특히 인사권자인 시장과 같은 정당 소속 정치인이라면 더욱 난감한 경우에 처할 수도 있다.
정치인 스스로의 자정 노력에 기대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국민이 정치인에게 실망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초질서를 어기는 모습인데도 정치인의 생리상 자신을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엄정한 행정집행만이 이 같은 논란을 피할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거제시 현수막 업무 담당자는 “작년에는 총 6건에 대해 695만 8000원을 과태료 처분했으며, 올해에는 2건에 대해 320만 원을 부과했다”며 “정치인이 설치한 현수막에 대해서는 한 건도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없다. 하지만 매일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기 위해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민규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