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도중 철조망 펜스에 부딪혀…‘류현진 수술’ 닐 엘라트라체 박사 수술 권유
18일 현지 취재진과 만난 샌프란시스코의 파한 자이디 사장은 이정후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기간을 6개월로 예상했다. 즉 남은 시즌은 뛸 수 없지만 내년 시즌에 정상 복귀가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정후는 지난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파울 타구에 맞아 발등 부상을 당한 후 4일 만의 선발 출장 경기였다.
그런데 이정후는 1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제이머 칸델라리오가 친 타구를 처리하려고 중앙 담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껑충 뛰어 올랐지만 공을 잡지 못하고 펜스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이정후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트레이너와 통역이 이정후한테 달려갔고, 밥 멜빈 감독까지 이정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외야로 향했다.
즉시 경기에서 빠진 이정후는 처음에는 왼쪽 어깨 염좌(Strain) 진단을 받았다. 염좌라면 뼈나 인대 손상이 크지 않은 경미한 부상이다. 그러나 그날 경기 종료 후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이정후가 어깨 탈구 진단을 받았고, 하루 뒤 MRI 검진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후는 14일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정후는 구단 주치의인 켄 아키주키 박사를 만나 MRI 검사 결과에 대한 진단을 받았는데 그때 어깨에 구조적 손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건 어깨 탈구는 아니지만 관절이나 인대에 손상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후 이정후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보다 정확한 소견과 치료 방법을 정하기 위해 LA에 있는 닐 엘라트라체 박사한테 이정후를 보내기로 한다. 이에 샌프란시스코 구단도 동의했다. 닐 엘라트라체 박사는 수많은 운동 선수들의 수술을 담당했던 권위자로 류현진, 클레이튼 커쇼, 오타니 쇼헤이도 이 박사한테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이정후의 어깨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 닐 엘라트라체 박사는 최종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전했고, 선수와 구단도 이를 받아들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약 1547억 원)에 계약한 이정후는 스프링캠프부터 정규시즌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멜빈 감독도 이정후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와 마인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허슬플레이가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이정후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콜로라도 원정 경기에서 파울 타구에 왼 발등을 맞고 통증과 부기로 3경기에 결장했다. 그리고 4일 만인 13일 신시내티 레즈전 선발 출전을 앞두고 클럽하우스에서 취재진을 만나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발등 통증이 아직 남아 있지만 경기에 뛸 수 있을 정도의 통증과 부기라고 말했던 이정후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3일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는 주축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선수들을 대거 콜업시킨 상태다. 개막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을 몇 명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선수단이 부상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정후로선 타박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처지가 내심 미안했을 것이다.
이정후가 올 시즌 처음으로 오라클파크에서 경기를 치를 때 그는 팀 훈련 시간 외야에서 수비 연습을 하는 동안 중견수 쪽 담장의 상태를 직접 만져보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체크를 했다. 오라클파크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에 가서도 모두 처음 방문하는 야구장의 외야 담장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외야수들한테 야구장 담장은 중요한 시설물이다. 딱딱한지, 부드러운지, 탄력이 있는지 등을 미리 파악해야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정후가 13일 신시내티전에서 부상당한 담장은 철제구조물이었다. 원정팀 불펜장이 있는 곳이라 그곳에는 스폰지가 있는 담장이 아니라 철조망이었고, 이런 상황이 이정후의 부상을 더 악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의 어깨 부상은 이미 KBO리그 시절 다친 부위다. 프로 2년차였던 2018년 6월 19일 잠실 두산전에서 왼쪽 어깨 관절 와순 파열 진단을 받았던 것. 당시 주루 플레이를 하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과정에서의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2018년 11월 초 포스트시즌 기간에 외야 수비 중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왼쪽 어깨를 다쳤다. 그 해 시즌을 마치고 이정후는 왼쪽 어깨 전하방 관절 와순 봉합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다 예상보다 빠른 회복을 통해 2019시즌 3월 정규시즌 개막에 맞춰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했다.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친 데 또 다치는 것이다. 이정후도 담장에 어깨를 부딪치고 쓰러졌을 때 순간 그 두려움이 엄습했을지 모른다. 거액의 몸값을 받고 새로운 리그에서 적응하고 활약하며 절치부심했던 그로선 지금의 상황이 너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상은 선수가 조정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지난 일을 돌이켜보기보단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한 몸으로 팬들 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정후는 부상으로 쓰러지기 직전 올 시즌 37경기 타율 0.262 출루율 0.310 장타율 0.331 2홈런 8타점을 기록 중이었다. 이정후는 18일 현지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지난 한 달 반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면서 “이 시간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앞으로 이정후는 수술 후 재활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다시 들어서는 이정후를 볼 수 있길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