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화·사회적 거리두기가 언어 발달 저해 요인…어른들의 ‘일상의 대화’ 들려줘야 다양한 상황 언어 습득
언어는 문화입니다. 모국어는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가족과 이웃의 일상의 대화를 듣고 저절로 배웁니다. 예전에 대가족이고 이웃과 어울려 살 때는 일상의 대화를 하루 종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이웃과의 왕래가 줄어들면서 예전보다 일상의 대화를 듣고 자라는 아이가 적어졌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더 줄어들었습니다. 이 바람에 언어 발달이 늦어지는 아이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언어는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넘어서 논리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의 바탕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공부 잘하는 머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언어 발달에 신경써야 합니다.
아이는 언제부터 언어를 배우는 걸까요? 놀랍게 출생하면서부터 바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언어를 습득해 두세 돌 이전에 언어 발달의 기본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언어는 언제라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배우는 모국어는 단순하게 말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언어중추를 발달시킵니다. 언어중추가 제대로 발달된 아이들이 나중에 외국어도 더 잘 배우기 때문에 모국어를 어릴 때 제대로 익혀야 합니다. 언어중추는 논리적인 사고력·창의력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두뇌가 발달하면서 언어 중추가 함께 발달하는 두세 돌 이전이 언어 발달에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모국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언어는 듣는 만큼 배웁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듣지 않은 말을 배울 수는 없는 법이고 자주 듣는 만큼 더 잘 배우기 마련이라, 다양한 말을 다양한 상황에서 많이 듣는 것이 언어 발달에 중요합니다. 엄마나 아빠가 혼자서 아이에게 말을 걸고 반응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적 상호작용은 어른들의 일상 대화보다는 단순합니다. 아이가 복잡한 말과 다양한 상황에 따른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이웃의 일상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들어야 합니다.
그럼 말이 늦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 다른 병이 있는지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게 우선입니다. 언어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심하지 않고 다른 이상이 없다면 일상에서 '언어노출'을 늘려 가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에서 부부와 가족이 대화를 많이 하고 이웃들과 어울리고 친구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들려주세요. 다다익선입니다. 마스크를 쓴 채로 말하면 언어노출의 효과가 적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고 대화할 수 있는 사적인 모임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아이가 일상의 대화를 많이 듣고 스스로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느리지만 제일 효과적이고 제대로 된 언어를 배우는 방법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여건상 이렇게 하기가 생각보다 힘든 부모가 많을 겁니다. 언어 발달에 제일 좋은 방법이란 걸 알아두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이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이 늦다고 보육시설에 일찍 보내면 어른들 간의 일상의 대화를 듣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고요, 책을 많이 읽어주는 방식은 어린 아이들의 경우 일상의 대화로 말을 배우는 데 비해 효과가 크게 떨어집니다. 영어책 10년을 읽어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TV나 라디오를 들려주는 것은 말이 늦은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위해서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언어 발달이 심하게 늦은 아이들에게는 언어치료가 도움이 됩니다. 다른 이상이 없이 언어노출이 부족해서 언어 발달이 늦은 경우는 일상의 대화 노출을 병행해야 합니다. 말이 늦은 경우 영어 조기 교육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거리두기 때문에 말이 늦다면 아이와 함께 가족과 이웃이 어울리고 대화하면서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 방향으로 노력하세요. 이게 살아있는 언어를 배우고, 공부 잘하는 두뇌를 만드는 제일 우선적인 방법입니다.
하정훈은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교육이사,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모유수유위원회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하정훈소아과의원 원장이다. 베스트셀러 육아지침서이자 육아교과서라 불리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이기도 하다.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