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묶인 총수 대신 심복이 나섰다?
▲ 비자금 조성혐의를 받고 있는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두산을 향해 검찰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동안 두산 내에선 총수 일가를 둘러싼 몇 가지 ‘범상치 않은’ 지분 변동이 일어나 궁금증을 사고 있다. 분식회계 논란에 이어 비자금 중 일부가 총수 일가 생활비로 흘러간 점이 검찰조사 결과 드러난 터라 두산 내 작은 지분 변화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질 만한 시점인 탓이다.
최근 두산그룹 내 일어난 지분 변동 사항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두산산업개발의 자사주 대량 매각이다. 두산산업개발은 지난 9월27일 자사주 3백만주를 매각했다. 당시 주가는 5천6백60원이었다. 환산하면 두산산업개발은 이번 주식 처분으로 약 1백7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셈이 된다.
금감원 공시자료에 나온 매각 사유는 ‘자본확충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다. 그러나 이 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두산측이 공시한 자사주 매각 사유에도 업계 일각에선 이번 주식 매각 대금이 다른 용도로 흘러갔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그동안 조성된 두산산업개발 등 두산 계열사 비자금 일부가 두산 총수 일가 생활비로 쓰인 것이 드러난 점과 관련지어 바라보는 시선이 늘고 있는 것이다.
두산산업개발 채권단은 10월 초에 모임을 갖고 회사채 조기상환 청구 여부에 대한 논의를 가졌으나 결국 상환청구를 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두산산업개발의 자사주 매각 등의 자구노력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덕분에 두산산업개발 주가도 상승세를 이어가게 됐다.
그러나 ‘비자금의 생활비 사용’이란 검찰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부터 두산측의 자사주 매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냉담해지고 있다. 지분 매각 대금 중 일부가 ‘총수 일가를 위한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산업개발은 전체 지분 중 70%가량이 두산 총수 일가와 계열사 소유로 돼 있다. 총수 일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회사인 셈이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두산측은 ‘소설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다.
두산산업개발의 자사주 매각 대금에는 견줄 바가 아니지만 총수 일가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의 최근 지분 매각도 눈길을 끈다. 박용곤 명예회장 차남인 박지원 부사장은 지난 9월12일 (주)두산 주식 3천9백70주를 처분했다. 당시 (주)두산 주가는 1만7천6백50원이었다. 박 부회장은 이 주식 처분으로 7천만여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이에 대해 두산측은 “(박지원 부사장) 개인적 필요에 의한 매각이라고만 알고 있다”며 구체적 이유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박 부사장이 주식을 처분할 시점에 (주)두산 주가는 지속적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주)두산 주가는 이후에 계속 올라 10월 첫 주엔 2만원대에 근접했으며 10월20일 현재 1만8천5백원을 기록중이다. 20여 일만 더 기다렸다가 팔았으면 훨씬 더 큰 돈을 손에 쥐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 부사장은 서둘러 지분 매각을 했을 정도로 급전이 필요했던 셈이다.
두산 계열사의 자사주 매각과 총수 일가의 지분 매각과는 대조적으로 두산 임원 중 최근 들어 대주주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린 인사가 있다. 두산 계열사 주요 임원인 최승철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 사장은 두산인프라코어 주식을 지난 9월 초에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9월1일에 1만주를, 9월6일엔 5천주를 매입했으며 9월9일엔 1만5천주를 매입해 지분율 0.02%에 달하는 3만주를 보유하게 됐다. 그가 주식매입에 들인 돈은 3억원가량이다. 9월1일 이전까지 최 사장은 두산인프라코어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두산측은 “최 사장이 고위 임원이고 고액연봉자인 만큼 투자 개념으로 매입했을 것”이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두산 안팎에선 그의 주식 확보를 단순히 ‘고액연봉자의 재테크’ 차원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사장은 그룹경영을 장악해온 박용만 부회장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 검찰의 집중 포화를 맞는 총수 일가가 당장 지분 확대에 부담을 느껴 최 사장 같은 측근이 지분매입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 주가는 최 사장이 사들일 당시엔 9천3백~9천5백원선을 유지하다가 이후 갑자기 치솟아 10월18일엔 1만2천5백원을 기록했으며 당분간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산측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지분을 제3자가 관리하는 것은 두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