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X파일’ 총선 전 개봉 준비
▲ 신년 정국 한파주의보 야권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 관련 자료를 확보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년정국의 중대 변수로 떠오를 듯하다. 지난 2007년 11월 29일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선후보가 여의도역에서 거리유세를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이러한 움직임에 여권 핵심부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디도스 사건,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연이은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자금까지 거론될 경우 ‘그로기’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대선자금의 ‘봉인’이 과연 풀릴 것인지 <일요신문>이 따라가 봤다.
“대선이 끝난 직후 여권 실세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금융권 고위 인사에게 ‘선거에서 쓰고 남은 돈’이라면서 거액의 돈을 맡겼다.”
지난 12월 초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실이 제보 받은 내용이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신뢰할 만한 취재원으로부터 들은 것이다. 워낙 폭발력 있는 사안이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여권 인사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난 뒤 수십억 원 규모의 돈을 넣어둘 계좌 개설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돈을 관리하던 금융권 관계자의 친척이 그 중 20억 원가량을 최근 부동산 투자 명목으로 사용하면서 말이 새 나온 것 같다. 그 돈의 출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언급되는 금융권 인사는 ‘친MB 인맥’으로 꼽히는데 여권 핵심부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 돈이 대기업으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모든 채널을 가동해 진위 규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통령 대선자금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여권 인사 두 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의 민주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여권 고위 관료 A 씨와 실세 의원 B 씨가 재계와 금융권을 상대로 선거자금을 끌어들였다는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이 만났다는 업체들 리스트까지 작성할 수 있을 정도다. 이 두 명이 이끌었던 라인을 밝혀내는 게 대선자금 건의 키 포인트”라고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팩트’가 나오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대선자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여권에서도 A·B 씨가 이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특히 자금문제는 이들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그 내용을 아는 ‘민감한’ 사안으로 분류됐었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에 따라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으로서도 대선자금 파일을 꺼내드는 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한국 정치 현실상 대선자금에서 떳떳할 정당이 어디 있겠느냐.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긁어 부스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에서 이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실보단 득이 더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물론 뒤져보면 우리도 불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 대선자금은 차원이 다르다. 온 국민의 시선이 모아질 것이다. 또 2007년 대선에서 당선이 거의 확실시됐던 이 대통령 캠프에 돈이 쏠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대선자금을 놓고 한나라당과 ‘맞장’을 떠도 승산이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2월 19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대통령측근비리 진상조사위원회’ 회의에서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신건 의원, 박영선 의원(왼쪽부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올해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에서 이러한 의혹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 역시 “총선 전인 2월을 전후로 뭔가 하나는 터지지 않겠느냐. 민주통합당이 더욱 고삐를 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이 1~2월경 대선자금 폭로를 할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이러한 민주통합당 움직임에 대해 여권은 곤혹스러워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차치하고서라도 총선과 대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뭐 별게 있겠느냐. 선거를 앞두고 대선자금을 공론화한다는 것은 정치적 흠집잡기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면서도 “이국철 SLS 회장 폭로, 디도스 사건 등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하나씩 ‘툭’ 튀어나오고 있어 우리 역시 긴장하고 있는 것은 맞다.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이라는 ‘일급기밀’ 파일이 정권 말에 접어들면서 야권과 언론 등에 새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를 꾸리고 당 쇄신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자금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도마에 오르면 또 다시 비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컨설턴트들은 “차떼기 악몽이 다시 살아나면 한나라당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권에선 대선자금이 불거지면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과 빠른 속도로 결별을 시도할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야권이 의혹을 제기하면 일차적으로 한나라당이 ‘방어막’을 쳐줘야 되는데 총선을 앞두고 그렇게 하겠느냐. 이 대통령이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여권 파워게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여권 주류에서 밀려났거나 혹은 사정기관 수사 리스트에 올라 있는 세력들이 대선자금을 거론하며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한 여권 전직 고위 관료는 사석에서 “궁지에 몰리면 폭탄을 안고 같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사태가 와서야 되겠느냐”며 울분을 토해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그 전직 관료가 대선자금을 염두에 두고 말했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