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감독상 박찬욱과 에미상 수상 유력 이정재 투 트랙 ‘오스카 레이스’ 펼칠 듯
8월 11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제95회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영화 출품작으로 ‘헤어질 결심’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에는 국가마다 단 한 편만 출품이 가능하다. 그동안 국제장편영화 부문(옛 외국어영화상) 후보작 선정이 사실상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1963년 제35회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작으로 출품한 이후 무려 30여 편의 작품이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부문 한국 영화 출품작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었는데 10편의 숏리스트(Shortlist·예비후보)까지 오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5편의 최종 후보가 되진 못했다. 당시만 해도 ‘버닝’이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55년 만에 이뤄낸 커다란 성과로 여겨질 정도였다.
바로 다음해인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에서 이름이 바뀐 국제장편영화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고, 결국 국제장편영화상뿐 아니라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동반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제93회와 제94회 시상식에는 ‘남산의 부장들’과 ‘모가디슈’가 출품됐지만 모두 최종 후보로 선정되지 못했다. ‘기생충’이 매우 이례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여전히 한국 영화는 아카데미영화상 장편영화상 부문 최종 후보 선정조차 쉽지 않은 관문이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숏리스트는 물론이고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미 미국 매체들은 본상 수상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꾸준히 아카데미 예측 기사를 내놓고 있는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8월 18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헤어질 결심’을 주요 4개 부문 유력 후보로 언급했다. 감독상과 남녀 주연상, 그리고 국제영화상 등이다. ‘헤어질 결심’은 이미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이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기생충’의 아카데미 도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 출품할 수 있는 방법은 영진위를 통해 1년에 한 작품만 출품 가능한 국제영화상 부분 후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6개 대도시권인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마이애미, 애틀랜타 등에서 개봉한 영화에게 아카데미영화상 출품 자격이 주어진다. ‘기생충’은 국제영화상 부분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미국 현지 개봉으로 출품 자격을 갖춰 국제영화상 이외의 여러 부문 본상 수상이 가능했다. ‘헤어질 결심’ 역시 10월에 미국 전역에서 개봉할 예정이라 국제영화상 부문 이외의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의 부문 수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편이 더 있다. 영진위를 통해 국제영화상 출품작으로 선정되진 못했지만 ‘헌트’ 역시 아카데미를 정조준하고 있다. ‘헌트’는 12월에 미국 전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헌트’가 이정재의 영화라는 점이다.
이정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월드스타에 등극한 터라 그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은 영화인 ‘헌트’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특히 9월 12일로 예정된 제74회 에미상이 중요한 변수다. 이미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배우조합상(SAG),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크리틱스 초이스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는 에미상 TV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고 현재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다. 버라이어티,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등 현지 유력 매체들이 연이어 이정재의 수상을 예측하고 나섰을 정도다.
이정재가 에미상에서 TV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경우 월드스타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현지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뜨거워질 수 있다. 이런 분위기가 12월 ‘헌트’ 미국 개봉으로 더욱 타올라 2023년 3월까지 이어진다면 충분히 아카데미 수상 소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카데미영화상 수상은 영화만 좋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영화상은 전세계 8000여 명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이 결정돼 마치 선거전 같은 양상을 띤다. 수상을 노리는 영화들은 작품을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간담회와 파티 등을 이어가는데 이를 ‘오스카 레이스’라고 한다. 정확한 비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수백억 원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기생충’ 역시 뜨거운 ‘오스카 레이스’가 이어졌는데 여기서 투자배급사인 CJ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헤어질 결심’은 ‘기생충’처럼 CJ가 투자배급을 맡았다. ‘기생충’ 당시의 경험과 자본력을 갖춘 CJ가 이번에도 확실한 지원을 이어갈 전망이다. ‘헌트’는 미국 배급사 매그놀리아 픽처스를 통해 북미 극장가에 진출한다. 영화계에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더 스퀘어’와 ‘어느 가족’ 등을 배급했던 매그놀리아 픽처스와의 협업을 통해 오스카 레이스를 준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제95회 아카데미영화상을 향한 오스카 레이스에선 이례적으로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선의의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기생충’에 이어 한국 영화가 또 한 번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