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 대중화 계기 반면 기존 스포츠 예능들과 판박이 구성 ‘차별점’ 숙제
케이블채널 tvN STORY는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크게 성장한 ENA와 공동제작사로 나서 신규 예능 ‘씨름의 여왕’을 선보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여성들의 씨름 대결을 그린다. 이 프로그램에는 개그우먼 홍윤화와 래퍼 자이언트핑크, 방송인 김새롬을 비롯해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인 김보름, 걸그룹 네이처의 소희 등이 참여한다. 여기에 씨름의 전성기를 누린 이만기, 이태현과 젊은 씨름을 이끄는 허선행, 노범수 등이 감독과 코치로 합류한다.
그런데 이 구도, 낯설지 않다. 스포츠 예능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 SBS ‘골 때리는 그녀들’과 구성이 판박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연예인들이 리그를 구성하고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이 감독으로 나선 것을 모방한 셈이다.
씨름은 2019년 KBS에서 편성한 ‘태백에서 금강까지-씨름의 희열’로 한 차례 재미를 봤다. 당시에는 연예인이 아니라 최근 씨름판을 이끄는 젊은 씨름 선수들의 대결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는 그 주인공을 여성으로 치환해 색다른 재미를 추구한다.
연출을 맡은 전성호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씨름은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여성들이 씨름에 도전하는 게 색다른 느낌과 감동을 줄 것”이라면서 “씨름은 상대 이해가 필요하고 주고받음이 있는 스포츠다. 덩치와 힘으로 제압하기보다 기술을 습득하고 사용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했다.
JTBC는 씨름이 아닌 ‘팔씨름’을 내세운다. 대한민국 팔씨름 최강자를 가리는 국내 최초 팔씨름 예능을 올해 하반기 론칭한다. ‘오버 더 톱-맨즈 챔피언십’이라 이름 붙인 이 프로그램의 우승 상금은 무려 1억 원. 연예인들이 대상이 아니라 전국 팔씨름 고수들을 모은다는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예능의 옷을 입은 당구도 안방극장을 노크한다. 스포티비2와 스타티비(STATV)는 최근 당구 예능 ‘노매너 스포츠 동네당구’를 선보였다. JTBC ‘뭉쳐야 찬다’와 ‘냉장고를 부탁해’ 등을 통해 호흡을 맞췄던 김용만, 김성주, 안정환, 정형돈이 다시 뭉쳤다. 여기에 프로당구협회 PB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프로 당구 선수들이 참여해 전문성을 곁들였다.
JTBC ‘뭉쳐야 찬다’는 2019년 론칭된 뒤 어느덧 시즌2에 접어들었다. 시청률 역시 5∼7% 정도로 안정적이다. ‘뭉쳐야 찬다’가 남성 레전드 스포츠 스타들의 전유물이라면 여성 축구 예능의 대표주자는 단연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현재 시청률은 6∼7%로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한때 10%에 육박하기도 했다.
축구 예능이 사랑받는 이유는 이 종목이 갖는 보편성 때문이다. 축구는 공 하나와 넓은 공터만 있으면 수십 명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다. 장비의 제약이 적고 규율도 적은 편이다. 반면 다른 종목을 보자. 야구는 글러브와 배트가 필수 준비물이다. 골프 역시 골프 장비를 구비하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들고 골프장에 대한 접근성 또한 떨어진다. 게다가 4명 이상이 동시에 참여할 수 없고,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익혀야 할 규칙도 축구에 비해 복잡한 편이다.
발을 써야 한다는 제약 역시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발은 손보다 쓰기 어렵다. 그래서 선수급 참가자들을 제외하면 실력 편차가 크지 않다. 농구의 경우 100점대 점수도 나오고, 야구 역시 수십 점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완연한 실력 격차가 없다면 골이 적게 터진다. 그만큼 발로 공을 다루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다. 각자의 주종목에서는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던 이들이 ‘뭉쳐야 찬다’에서는 소위 ‘개발’ 수준으로 몸 개그를 보이는 것은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묘미다.
비인기 종목을 소재로 한 스포츠 예능이 이 같은 제약을 넘어 축구 예능과 같은 인기를 얻으려면 제작진의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스포츠에 도전한다’는 기획 의도만으로 변덕이 심한 시청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뭉쳐야 찬다’ ‘골 때리는 그녀들’의 위력이 여전하지만, 시청률만 놓고 본다면 전성기 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느끼는 신선한 재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면서 “새로운 종목을 선택하는 것은 이런 식상함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