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휴가 간 새 사주 바뀌더니 결국…
▲ 어느날 갑자기 12월 28일 서울 충정로 풍산그룹 사옥 앞에서 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지회 노조원이 부당한 정리해고를 당했다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기자는 지난해 12월 28일, PSMC의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서울 충정로의 풍산 신사옥 집회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는 PSMC 노조원들이 교대로 1인 시위를 벌이면서 한겨울 맹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7일 회사 측이 생산직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8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회사가 있는 부산과 매각 전 모기업이었던 풍산의 사옥 앞에서 쌍방향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PSMC는 반도체 핵심부품인 리드프레임을 생산하는 업체다. 풍산그룹 자회사 시절, 몇 차례 위기 속에서도 필리핀 등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등 특유의 기술력으로 성과를 내왔다. 하지만 2008년 리먼 사태를 기점으로 다시 위기가 찾아왔고, 2010년께 당시 모기업 풍산은 급기야 ‘매각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적극적으로 저지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수십 년 풍산을 위해 살아온 직원들로서는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서울에서 시위를 이끌고 있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이재경 부지회장에게 직접 당시 얘기를 들어봤다. 이 부지회장은 “2010년 연말께 노조 측 반발이 있자 풍산 측은 ‘매각은 절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회사 사정을 감안해 연차 소진을 위해 직원들에게 휴가를 권고했다. 류목기 부회장이 직접 회사에 방문해 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회사를 믿고 직원들이 휴가를 간 사이, 풍산은 2010년 12월 29일께 휴대폰 부품업체인 H 사에 PSMC 매각을 감행했다. 이 부지회장은 이에 대해 “다음날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깜짝 놀랐다. 직원들을 휴가 보내놓고서 기습적으로 회사를 매각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행됐다.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의 주장대로라면 풍산 측은 이미 협상 대상자를 정해 놓고 직원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휴가기간 동안 기습매각을 감행한 것이다.
물론 풍산 측은 이에 대해 자연스러운 M&A 매각이었다고 반발한다. 기자와 통화한 풍산 측 관계자는 “노조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휴가를 보낸 것은 연말 조업량이 많지 않아 보낸 것뿐이다. ‘기습매각’이란 말은 맞지 않다. 오랫동안 M&A를 추진했고 우연히 휴가기간 동안 H 사와 조건이 맞아떨어져 매각이 타결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매각조건에는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승계’조건이 포함됐다. H 사와는 이에 대해 합의한 상황 이었다”라고 덧붙였다.
풍산 측의 말대로라면 PSMC를 사들인 H 사가 ‘고용승계’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H 사는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PSMC를 사들인 H 사는 곧바로 매각 이후 두 달도 채 안된 시점에서 타사인 F 사에 다시 회사 지분과 경영권을 넘겼다. 현재의 경영진은 H 사로부터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받은 F 사 인사들이다. 석연치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부지회장은 이에 대해 “F 사는 정체조차 잘 모르는 페이퍼컴퍼니다. 애초 회사를 매입한 H 사가 휴대폰 부품을 생산했던 것과 달리 F 사는 회사를 사고 팔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사냥꾼에 불과하다. 7% 정도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연간 1000억 원 매출을 기록한 대기업 산하 우량기업이 하루아침에 투기자본에 넘어간 셈이다.
▲ 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지회 노조원들이 부당한 정리해고에 대한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
하지만 현 경영진과의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현 경영진은 지난해 4월부터 유상증자를 위해 30%가량의 임금 및 상여·퇴직금 삭감을 요구했다. 또한 경영진은 원자재 확보를 위해 카메룬 금광산을 개발하겠다며 해외 자원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경영진들과 노조를 대표해 카메룬 현지를 다녀온 윤광섭 노조 교육선전부장은 “실제 가보니 사금광이었다. 강모래를 한 바가지 퍼봤자 금은 얼마 나오지도 않았다. 수익성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유상증자를 목적으로 한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닌가 싶다. 실제 개발사업은 진행되지도 않았다. 경영진의 목적은 오로지 유상증자였던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5월께 5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허가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경영진 측은 이를 거부했다. 연간 300억 원 규모의 더 큰 몫을 원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조와 회사 측 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양측의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7월 29일, 회사 측은 1차적으로 생산직 직원 3분의 1에 대해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여론의 악화 속에 회사 측은 정리해고 통보를 다시 철회하며 8월 23일부터 노조 측과 협상테이블을 꾸렸지만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결국 회사 측은 9월께 노동청에 정리해고를 신고했고 11월 4일 재차 우편물을 통해 개인적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 부지회장은 “11월 초부터 지금까지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측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현재 경영진도 큰 문제지만 애초 직원들 몰래 회사를 매각한 풍산이 더 문제다. 회사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풍산이 반드시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 경영진들과 풍산을 상대로 계속 시위를 벌일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PSMC 측은 “6년간 누적 적자액이 400억 원이 넘는다. 현재로서는 이익 내기가 어려운 구조다. 동종업계에 비해 인건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카메룬 금광 개발 추진 건의 경우도 원자재 절감을 위한 거다. 노조 측은 일방적 정리해고 통보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아니다. 노조 측과 성실하게 협상에 임했다. 그것이 결렬됐고 법적 과정을 준수하면서 정리해고를 실시한 것뿐이다. 회사가 파국으로 가는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회사를 팔아넘긴 전 모기업 풍산 측 역시 “이미 회사는 넘어간 상태다. 우리로서는 더 이상 개입할 여지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조치 사항도 없다”라며 PSMC 사태에 관해 일정한 선을 그었다.
회사 측과 전 모기업인 풍산 측을 상대로 쌍방향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PSMC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가 한진 사태처럼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평행선을 긋고 있는 양측이 과연 한진 사태처럼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PSMC 인수기업 F 사 실체
대표 강 씨, ‘정현준 게이트’ 주연급
H 사로부터 지분을 확보해 현재 PSMC의 실제 경영권을 쥐고 있는 F 사의 실체가 주목받고 있다. 기자는 직접 F 사의 등기를 확인해 봤다. F 사는 지난해 2월에 서울 역삼동에 사무실을 두고 세워진 신생 유한회사였다. 주종목은 기업 간 인수합병 중개 및 기업경영 컨설팅이었다.
F 사의 대표이사는 현재 PSMC의 회장직을 맞고 있는 강 아무개 씨다. 그런데 취재도중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포착됐다. 강 씨가 지난 2000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정현준 게이트’는 지난 2000년 정현준 전 한국디지탈라인 대표가 동방금고로부터 500억 원대 불법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정치인, 금감원 인사, 검찰간부 등을 상대로 대가성 금품을 뿌린 사건이다. 당시 주요 혐의자였던 장래찬 금감원 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외 상당수 혐의자들이 해외로 도피해 지금까지 미해결의 게이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강 씨는 성공적인 벤처기업가이자 M&A의 귀재로 불리던 정현준 전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인물로 그 당시 핵심 비선조직원으로 꼽혔다. 정 전 대표와는 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대학시절 하숙까지 같이 한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강 씨는 정 전 대표의 벤처사냥 행보에 실질적인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정현준 게이트’에 깊게 연루된 것이 드러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기자와 통화한 PSMC 측은 정 전 대표와 강 씨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잘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현준 게이트 핵심 비선조직원 출신 강 씨가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다시 M&A 시장에 돌아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번 PSMC 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F 사와 강 씨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한]
대표 강 씨, ‘정현준 게이트’ 주연급
H 사로부터 지분을 확보해 현재 PSMC의 실제 경영권을 쥐고 있는 F 사의 실체가 주목받고 있다. 기자는 직접 F 사의 등기를 확인해 봤다. F 사는 지난해 2월에 서울 역삼동에 사무실을 두고 세워진 신생 유한회사였다. 주종목은 기업 간 인수합병 중개 및 기업경영 컨설팅이었다.
F 사의 대표이사는 현재 PSMC의 회장직을 맞고 있는 강 아무개 씨다. 그런데 취재도중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포착됐다. 강 씨가 지난 2000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정현준 게이트’는 지난 2000년 정현준 전 한국디지탈라인 대표가 동방금고로부터 500억 원대 불법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정치인, 금감원 인사, 검찰간부 등을 상대로 대가성 금품을 뿌린 사건이다. 당시 주요 혐의자였던 장래찬 금감원 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외 상당수 혐의자들이 해외로 도피해 지금까지 미해결의 게이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강 씨는 성공적인 벤처기업가이자 M&A의 귀재로 불리던 정현준 전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인물로 그 당시 핵심 비선조직원으로 꼽혔다. 정 전 대표와는 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대학시절 하숙까지 같이 한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강 씨는 정 전 대표의 벤처사냥 행보에 실질적인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정현준 게이트’에 깊게 연루된 것이 드러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기자와 통화한 PSMC 측은 정 전 대표와 강 씨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잘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현준 게이트 핵심 비선조직원 출신 강 씨가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다시 M&A 시장에 돌아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번 PSMC 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F 사와 강 씨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