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6일 방송되는 KBS '자연의 철학자들' 23회는 '자연에 스며들다' 편으로 욕심부리지 않는 자연을 닮고자하는 정주하, 이선애 부부의 철학을 만나본다.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에는 귀촌 로망을 이룬 부부가 있다. 정주하 씨(65)와 아내 이선애 씨(61)는 "진짜 시골인"이 되기 위해 자연으로 들어갔다. 한창 블루베리를 수확할 시기 무턱대고 시작했던 정주하, 이선애 부부의 블루베리밭에는 아직 익지 않은 열매도 많다. 속상함보다는 각기 다른 속도로 자라는 자연을 보며 신비로움을 느낀다.
귀촌 11년 차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그들은 이웃 주민에게서 모종을 얻어와 밭에 심는다. 부부는 맨발로 흙과 가까워지며 그 촉감과 향으로 행복을 느낀다.
정주하 씨는 농부이자 사진학과 교수다. '파라다이스(Para-Dies)', '서쪽바다(The West Sea)' 등 작물을 중심으로 찍었던 그는 점점 농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땅의 소리' 작업을 시작했다.
땅의 기운을 사람에게 전달해 생명을 살리는 농부의 역할이 경이롭다는 정주하 씨. 자연에 가하는 인공적인 힘을 줄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연의 삶을 살고만 싶다.
이들 부부의 또 다른 가족은 길고양이 세 마리와 강아지 두 마리다.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한 식구가 되었다고. 새끼고양이 '별이'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부부의 밭에는 토마토, 오이, 더덕 등 여러 가지 작물들이 넘쳐난다. 시중에 파는 것들에 비해 색도 모양도 볼품없어 보이지만 맛은 비교할 수 없이 진하고 싱그럽다고. 그날그날 자연이 주는 대로 다채로운 자연 밥상을 완성한다. 자연이 오감을 충족시켜주는 특별한 경험을 매일 하는 중이다.
농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열심히 키워보려고 했던 표고버섯은 부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소박한 결과만을 안겨 주었다. 그래도 정주하 씨는 농약을 치지 않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선애 씨는 마을 어르신의 토종 씨앗을 받아 정성스레 밭에 심는다. 우리 땅에 가장 알맞은 씨앗은 토종 씨앗. 고되고 피곤한 농사 일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진심으로 지금처럼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했던 하루의 끝에 정주하, 이선애 부부는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며 고요의 순간을 만끽한다. 비록 몸은 지쳤을지라도 마지막에 맞이하는 휴식은 자연이 주는 진정한 평온을 깨닫게 한다.
비가 오면 부부의 공간은 조금 더 여유로워진다. 시골만큼 분주한 곳은 없지만 급하게 살아갈 필요는 없어 편안하게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정주하 씨는 마을 사람들의 사진도 찍는다. 이번에는 마을의 상징적인 곳 마진바위에서 그 바위와 같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토박이 어르신의 인물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마을 사람들은 경이로운 존재. 그들은 비가 마구 내리쳐도 애써 막으려 하지 않고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젖은 땅도 반갑게 맞이한다.
그저 땅속 씨앗들이 소중한 싹을 틔우기만을 바라는 사람들. 그렇게 부부는 하나씩 더 배워간다.
완주군 원정산에서 시작되는 약 80km의 만경강. 정주하, 이선애 부부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무언가를 열심히 찍는 정주하 씨. 화려한 모양새를 자랑하며 날아가는 '꼬리명주나비'다. 귀촌한 후부터 점점 사라지고 있는 나비에 대해 애절함이 생겼다는 부부. 나비의 먹이인 쥐방울덩굴을 부부의 밭에 심으며 기도한다.
완주에서 생을 마칠 거라는 부부는 그날까지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품고 싶은 마음이다. 자연 생태가 거의 그대로 보존된 이곳에서 더 많이 자연에 대해 배우며 스스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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