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타이어’ 펑크 나니 ‘날개’도 삐걱
지난 10월28일 오후 5시20분 승객 64명(만석)을 태우고 제주공항에 착륙한 청주발 한성항공 303편(ATR72-200 기종) 여객기의 뒤편 왼쪽 타이어 2개가 한꺼번에 펑크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승객이 모두 내린 뒤 승각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뒤이은 31일 한성항공의 대주주들로 이루어진 ‘한성항공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타이어 사고는 경영파행으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며 한우봉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항공기 도입 때 이미 예견된 것으로 관계자들이 타이어의 노후와 브레이크 결함을 지적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임시방편을 쓴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성항공의 김재준 부사장은 같은날 기자회견에서 “한 사장의 목적은 부정, 비리, 불법이 있어도 회사 조기 매각을 통해 한몫 챙기고 호주로 가는 것이라 여겨진다”며 한 사장의 부도덕성을 조목조목 폭로하는 양심선언문을 발표했다. 김 부사장은 한성항공의 재무담당(CFO)으로 모든 회계 실무를 책임졌으며 한 사장의 심복으로 밀착 보필을 했기 때문에 그간 외부에서는한성항공 내부와 한 사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여겨져 왔다.
김 부사장은 최근 심경의 변화에 대해 “그간 내가 CFO로 회계부정에 한몫을 해 왔기 때문에 한 사장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상황은 한 사장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 사장은 그동안 전임 대표이사이자 대주주였던 이덕형씨와 분쟁을 벌여왔고 이사회에서는 한 사장 해임안을 가결하는 등 한성항공의 내분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씨는 아직 자신이 한 사장에게 넘긴 주식양도대금 48억원을 받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있는 주주들은 그동안 첫 취항을 앞두고 있어 일단 경영진에게 모든 것을 맡긴 상태였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비대위가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한성항공의 경영이 불투명하다는 것. 지금까지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한 번도 연 적이 없다고 한다. 김 부사장에 따르면 그동안 수차례 회계감사, 세무조정, 외부기장을 건의했으나 한 사장은 새로운 대주주가 들어오면 다 해결될 것이라며 미루었다고 전하고 있다.
비대위는 9월2일 이사회를 열고 한 사장의 해임결의안을 통과시켰다. 8월16일에도 이사회가 열려 해임결의안을 통과시키려했지만 참석자가 과반수가 되지 않아 불발에 그쳤다. 당시 한성항공의 이사 4명 중 두 명은 한 사장과 아시아나항공 시절 동료였고 나머지 두 명이 이에 맞서는 형국이었다. 당시 이사회는 한 사장이 해임결의안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정족수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고 믿고 강행을 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비대위는 한 사장쪽의 이사를 설득해 이사회에 참석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이 해임결의안을 등기하러 갔을 때 이미 8월31일에 주주총회 가결 안건이 먼저 등록되어 있었다. 주총에서는 지분 88%를 가진 한 사장과 1%를 가진 주주 두 명이 참석해 기존 이사들을 해임하고 새로운 이사를 선임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대위와 김 부사장에 따르면 한성항공은 8월31일에는 주총을 한 적이 없고 주총시간으로 기재된 오전 9시에 한 사장은 취항식 참가를 위해 제주도에서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다. 주총 등기시 주총의사록도 누락되는 등 주총은 명백한 거짓이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9월2일의 이사회 또한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한 사장이 회사 정관을 들어 이사회의 무효를 제기했기 때문. 회사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표이사만이 소집할 수 있으며 대표이사가 이를 거부했을 경우에만 이사들이 자체적으로 이사회를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비대위는 “한 사장이 회사 정관을 보여주지 않으니 이를 알 수가 없었고, 우리는 상법에 나와있는 일반적인 주식회사의 경우를 들어 이사회를 연 것”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위는 한 사장을 허위주총을 등기한 것에 대해 사문서위조로, 주주들을 속인 것에 대해서는 사기로 검찰에 고발했다.
비대위측은 한 사장의 투명하지 못한 경영때문에 항공운항에 정상적으로 돈을 쓰지 못해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부품 확보에 쓰여야 할 돈을 한 사장이 딴 데 썼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처음부터 타이어 마모를 지적받은 데다 이번 펑크사고 때 브레이크의 퓨즈가 터진 것도 브레이크 결함을 순정부품으로 해결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돈이 없기때문에 임시방편을 취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비행기 착륙시 브레이크 사용에 부담을 느낀 조종사들이 착륙거리를 짧게 하기 위해 랜딩기어와 타이어에 압력이 많이 가해지는 ‘하드랜딩’을 시도할 만큼 문제점이 누적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예비타이어를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 하루간 운항을 못한 것도 문제였다. 비행기 회사인 ATR사는 예비부품비율을 15% 이상 갖추라고 권고했으나, 한성항공은 비용 문제로 4∼5%대로 낮추었다고 한다. 게다가 6월 도입한 항공기의 리스료를 아직까지 한푼도 지급하지 못해 언제 압류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라고 김 부사장은 밝혔다. 이 말대로라면 파행경영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항공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한편 한성항공 관계자는 이번 타이어펑크 사고에 대해서는 “타이어 마모를 문제삼고 있는데 이번 사고의 원인은 타이어 마모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제동장치가 사용중 과부하로 열이 발생해 퓨즈가 녹으면서 일어난 사고다. 이는 대형 항공사에도 발생하는 일로 알고 있다. 항공기는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정비사들이 항상 정기적 점검을 계속하기 때문에 비대위의 문제제기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비대위가 주장하는 부품비율 15%도 항공기 3대를 들여왔을 때의 수치로 실제와는 맞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경영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대위가 제기한 소송 대부분이 법원에서 기각된 만큼 비대위의 주장은 신빙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법적 절차를 통해 가려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건교부에서는 한성항공의 타이어 펑크 사고 원인에 대해 정밀조사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