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눈으로 보지마, 우린 두산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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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27일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장례식에 참석한 유족들. 왼쪽부터 장남 재영씨, 부인 마거릿 클라크 박씨, 딸 미영씨, 재영씨 부인 구문정씨, 박삼구 현 회장 아들 세창씨, 고 박정구 회장 아들 철완씨. | ||
별 문제 없어 보였던 두산 형제들 관계가 갑작스레 풍비박산난 것에 빗대어 지금껏 별 탈 없던 금호아시아나 일가의 형제경영 역시 흔들릴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재계 호사가들의 치기 섞인 시각일 뿐일까.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 내 일어난 작은 변화들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씨가 지난 1일자로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기획조정팀 부장으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지난 6일 MIT에서 MBA과정을 마치는 등 경영인 수업을 받아온 세창씨가 이제 그룹 경영일선으로 뛰어든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가 해온 형제경영대로라면 현 박삼구 회장이 물러날 경우 넷째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이 총수직을 물려받게 된다. 박찬구 부회장 다음 차례는 다섯째인 박종구 국무총리실 경제조정관이 돼야겠지만 박종구씨는 그룹 경영과 무관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룹 3세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장손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씨가 총수직을 승계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식의 승계구도는 지난 5월 박성용 명예회장 타계 당시에 여러 호사가들에 의해 여러 갈래 가능성으로 거론된 바 있다. 총수 일가 장손인 재영씨는 현재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있다. 고 박정구 회장 장남 철완씨나 박삼구 회장 아들 세창씨가 모두 경영 관련 공부를 해온 것과 대비된다.
이를 두고 재계 인사들은 재영씨가 경영 참여에 별 관심을 갖지 않고 있을 가능성을 거론해왔다. 선친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지난 96년 65세 나이에 아무런 건강상 문제가 없었음에도 동생에게 경영권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문화사업에 매진한 것과 비슷한 길을 걷지 않겠냐는 것이다. 장손인 재영씨보다 다섯 살 아래인 세창씨가 경영일선에 벌써 뛰어든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부추긴다.
그렇다면 박삼구 회장이 장손 재영씨를 염두에 두지 않고 후계구도를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아들 세창씨를 다른 손위 조카들보다 빨리 경영일선에 투입시킨 것일까?
다수 재계 인사들은 형들이 세상을 떠난 상태지만 박 회장이 장조카를 꾸준히 챙겨줄 것으로 본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으로부터 대권을 물려받은 고 박정구 회장은 그룹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별다른 실익이 없는 박성용 명예회장의 문화사업을 적극 후원했다. 고 박정구 회장의 지지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금호문화재단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 2002년 고 박정구 회장의 타계로 총수직을 물려받은 박삼구 회장 역시 이 같은 전례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그룹경영과 무관한 문화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재영씨에게 경영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보상이 돌아갈 것이란 관전평도 나온다. 지난 8월 금호문화재단은 금호석유화학 주식 5만5천 주를 확보했다. 금호석유화학으로부터 증여받은 것. 당시 주가 1만7천원선으로 환산하면 10억원에 가까운 금액이 된다. 현재 금호문화재단 이사는 박삼구 회장으로 등재돼 있지만 박성용 명예회장이 생전에 이사장직을 맡아 일궈놓은 재단이 재영씨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증여가 ‘장손 챙기기’ 일환으로 비치는 것이다.
박성용 명예회장의 미망인 마거릿 클라크 박씨는 박 명예회장 사후 미국 친정에 건너가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캐나다에 있는 딸 미영씨와 미국에 있는 아들 재영씨를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한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 가족이 그룹 경영에 미칠 영향은 현재로선 거의 없어 보인다.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철완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언젠가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78년생인 철완씨는 우리 나이 28세로 작은아버지인 박삼구 회장의 아들 세창씨보다 세살 아래다. 형뻘이며 그룹 경영에도 먼저 참여한 세창씨가 훗날 철완씨에 비해 현 박삼구 회장 체제하에서 높은 입지를 다질 수도 있는 셈이다. 이는 ‘한참 이른’ 추측이긴 해도 경영권 분쟁의 씨앗이 될 소지는 있다.
재계 인사들은 지분 배분 관계를 철저하게 지켜온 금호아시아나가 두산과 같은 총수 일가 내부의 권력 다툼을 일으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그룹측도 3세 체제의 향후 전망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시종일관 ‘시기상조’란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두산 역시 최근 ‘형제의 난’ 사태 직전까진 분란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금호아시아나 총수 일가가 언제까지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