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병이 아닌 마음의 병이 문제
▲ 지난해 6월 삼성과의 경기에서 우전 2루타를 치고 진루한 후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그라운드에 주저앉고 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어, (최)희섭이 형이 안 보이네.”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 이용규의 결혼식에 참석한 KIA A 선수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KIA 선수들 대부분이 결혼식에 참석한 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한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최희섭이었다.
“웬일로 희섭이 형이 보이지 않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 끝내 희섭이 형은 오지 않았고, 그날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최희섭의 결혼식 불참은 큰 뉴스가 아니었다. KIA 선수들은 ‘무슨 급한 일이 생겼겠거니’하며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A는 달랐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최희섭에게 ‘급한 일’ 이상의 사건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1월이었을 거다. 다른 1군 선수들은 일본으로 마무리 캠프를 떠났지만, 희섭이 형은 잔류조라, 광주에 남았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잔류조, 2군, 재활군 선수들은 함께 모여 단체훈련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나중에 2군 선수한테 들으니 ‘희섭이 형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 1월 8일. KIA 선수단은 스프링캠프 출발에 앞서 첫 단체훈련에 돌입했다. 모든 선수가 광주구장에 모였다. 그러나 단 한 선수. 최희섭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KIA 선동열 감독은 “최희섭이 ‘감기몸살이 심해 훈련 참석이 어렵다’고 양해를 구해와 ‘병원에서 푹 쉬라’고 했다”며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는 어느 선수에게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KIA 관계자도 “모 병원에 입원해 감기몸살을 치료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희섭은 스프링캠프 출발 하루 전까지 팀 훈련에 동참하지 않았다. 최희섭이 입원했다는 병원에선 “이미 퇴원했다”고 했다. 취재 결과 최희섭은 광주가 아닌 서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최희섭이 팀 훈련에 참가하지 않으며 난데없는 트레이드 소문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몇몇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구단과 최희섭의 관계가 좋지 않다” “신임 코칭스태프와 최희섭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실제로 야구계에서도 “KIA가 최희섭을 트레이드하려고 서울 연고지 팀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과연 소문은 사실일까. 대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먼저 최희섭과 구단은 별문제가 없다. 최희섭이 KIA 유니폼을 입은 이래 구단은 최희섭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다.
KIA 모 코치는 “선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최희섭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선 감독은 최희섭과의 면담 때마다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넌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데 치중했다”고 말했다. 최희섭도 이런 감독의 배려에 상당히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이 코치는 “최희섭과 관련한 각종 루머가 퍼졌을 때 코치 가운데 한 분이 구단 관계자에게 ‘자칫 팬들이 오해하기 쉬우니 코칭스태프와 최희섭 간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선수 의사와 상관없이 구단이나 코칭스태프가 먼저 트레이드를 시도했다는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동료 선수들과의 갈등설은 어떨까. 이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최희섭은 주장을 맡았다. 의욕이 넘치다 보니 동료들과 다소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원체 천성이 착한 최희섭인지라, 주장을 반납하면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다시 좋아졌다. KIA 선수들도 한결같이 “최희섭과 선수들 사이에 갈등이나 대립은 전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희섭과 절친한 모 선수는 “이번 문제의 발단을 소상히 알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최희섭 혼자밖에 없다”고 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먼저 트레이드를 입 밖에 꺼낸 이는 최희섭이었다. 지난해 11월 최희섭은 “새로운 분위기에서 야구하고 싶다”며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구단이 최희섭의 마음을 돌리려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KIA는 거포가 필요했던 모 구단과 접촉했다. 하지만, 모 구단은 “우리 팀엔 최희섭에 걸맞은 마땅한 카드가 없고, 선수 관리도 어려울 것 같다”며 트레이드에 난색을 보였다. 두 팀의 트레이드 논의는 바로 결렬됐다.
최희섭이 트레이드를 요청한 배경도 구단과 코칭스태프에 대한 불만 혹은 동료들과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희섭과 절친한 모 선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 최희섭은 광주, 가족은 서울에 살았다. 아내와 떨어져 살다 보니 최희섭이 이 문제로 무척 힘들어했다. ‘가족이 광주에 내려올 수 없다면 자신이 올라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KIA와 서울 연고지 팀 사이에 트레이드 이야기가 오가는 것도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최희섭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안다.”
KIA 관계자도 “최희섭이 부득이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일반인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몇 가지 가정문제로 고민한 것으로 안다”며 “야구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KIA 선수단은 최희섭 문제로 오해를 받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다. 최희섭이 자신의 가능성을 다시 발휘할 수 있는 무대에 서길 바랄 뿐이다. 모 코치는 “최희섭을 둘러싸고 갖가지 억측과 소문이 난무한 가장 큰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선수단이 끝까지 최희섭을 지켜주려 했기 때문”이라며 “어쨌거나 잘 문제가 마무리돼 그라운드에서 다시 최희섭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