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거리? 노, 날씨는? 굿…야구만 파기 딱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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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2월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전지훈련을 갖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넥센 히어로즈. 연합뉴스 | ||
# 일본은 꼭 한국 같아
“항공사 마일리지가 팍 늘게 생겼어요.” 어떻게 전훈을 준비 중이냐는 질문에 SK 조인성의 첫마디는 그랬다. 그도 그럴 게 SK의 전훈지는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다. 지난해까지 LG에서 뛰었던 조인성은 미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겨울을 보냈다. 주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했다.
“일본은 정서나 사회 시스템이 우리와 비슷해요. 이국땅이지만, 외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지 않아요. 왠지 마음이 편안하다고나 할까요.”
조인성은 일본 전훈의 장점을 그렇게 평가했다.
일본 전훈에 잔뼈가 굵은 모 베테랑 선수는 구체적으로 ‘미국보다 일본이 좋은 7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가 음식이다. 일본 호텔 뷔페 음식은 한국 호텔과 거의 비슷하다. 김치, 잡채가 올라올 때도 있다. 야외 훈련 시 간단하게 먹는 우동, 라면, 카레, 초밥, 김밥도 입맛에 딱 맞는다. 두 번째는 시차다. 한국과 시차가 거의 없어 항공기로 이동할 때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시차 때문에 며칠을 고생해야 한다. 세 번째는 안전이다. 일본은 훈련 없는 날 어디를 가도 한국처럼 안전하다. 과거 미국에 갔다가 총소리가 나는 바람에 기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네 번째는 날씨다. 일본 전훈지는 기온이 항상 20℃로 일정하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다. 한국의 4월 날씨와 비슷해 시즌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하기 용이하다. 다섯 번째는 구장 시설이다. 일본 전지훈련장은 야외구장과 실내연습장이 완비돼 있다. 삼성이 쓰는 오키나와 온나손 구장은 야외구장과 내야훈련장, 투수훈련장, 실내연습장이 두루 갖춰져 있다. 여섯 번째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는 점이다. 일본어를 몰라도 한자문화권이기에 대충 한자를 쓰거나 몸짓을 하면 알아듣는다. 구장에서도 일본식 야구용어로 대충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베테랑들은 아예 우리말과 문장이 비슷한 일본어를 배워 요긴하게 쓰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은 아니다. 영어가 배우기 어렵고, 우리가 흔히 쓰는 야구용어와 정통 미국야구 용어에 큰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론 파친코다. 휴일이나 훈련이 끝나면 파친코로 달려가는 선수들이 많다. 파친코장에 가려고 1년 내내 일본 전지훈련을 기다리는 선수가 있을 정도다.
따지고 보면 그만이 아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일본을 선호한다. 구단 프런트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일본은 국내 프로야구단이 최초로 전훈을 떠난 곳이다. 1983년 1월 OB(두산의 전신)는 타이완과 일본 미야자키로 전훈을 떠났다. 삼성 역시 일본 히로시마에 캠프를 차렸다. ‘짠돌이 구단’으로 소문났던 해태(KIA의 전신)도 일본 오사카로 떠났다. 프로 첫 시즌을 치르며 체력보강과 동계훈련의 중요성에 눈을 뜬 까닭이었다.
하지만, 1985년 삼성이 미국으로 전훈을 떠나며 ‘일본=전훈지’란 공식이 깨졌다. 당시 삼성은 LA 다저스의 전훈지인 베로비치에 캠프를 차리고 훈련뿐만 아니라 다저스 코칭스태프로부터 고급야구를 전수받았다. 전훈효과는 컸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삼성 선수들은 미국야구를 접하며 프로의 기본기가 무엇인지 알았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구단들도 괌, 사이판, 하와이, 애리조나, 플로리다 등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미국 선호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중단됐다. 달러화가 폭등하며 전훈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대신 일본은 엔화 약세로 한국보다 물가가 쌌다.
구단들은 다시 일본으로 발길을 돌렸다. 2009년 8개 구단이 모두 일본에 스프링캠프를 차리며 일본 선호도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을 기점으로 엔화가 폭등하며 전훈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구단들이 2012년부터 다시 미국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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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초 오키나와에서 담금질을 했던 한화 이글스. 사진제공=한화이글스 | ||
전훈지를 미국으로 결정한 모 구단 운영팀장은 “엔화와 달러화를 비교할 때 달러 환율이 훨씬 낮아 경제적으로 미국 전훈지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사실이다. 최근 3개월간 100엔은 우리 돈으로 1504원이다. 1달러는 1158원이다. 달러가 엔화보다 450원이나 싸다.
여기에 미국 지자체의 지원이 일본보다 낫다는 것도 고려대상이다. 지난해 넥센은 8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 본토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야구계는 “넥센이 무슨 돈이 있어 미국까지 가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실상은 비슷한 비용에 더 많은 효과를 거두려고 미국에 간 것이었다.
넥센 조태룡 단장은 “65명의 인원과 왕복 수화물까지 포함해 항공료로만 2억 원 가까이 들었다”고 털어놨지만, “항공료를 제외하면 다른 경비는 일본보다 훨씬 저렴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숙박비와 운동장 사용료였다. 넥센은 전훈 기간 내내 중급 호텔에 묵었다. 말이 중급이지 시설은 일본 오키나와의 호텔과 비교해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53일치 호텔비는 오키나와 호텔비의 절반에 불과했다.
운동장 일일 사용료도 73만 원에 불과했고, 여기다 버스 렌트와 세탁은 무료였다. 지자체에서 파격적인 지원을 한 것이었다.
당시 넥센은 53일간의 스프링캠프 기간에 6억 원가량을 썼다. 각종 장비와 의약품 구매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었다. 일본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던 팀들이 쓴 돈은 8억 원 이상이었다. 비용만 봐도 넥센이 경제적이었다.
비용 절감만이 아니었다. 넥센이 훈련 구장으로 사용한 ‘월터 퓨즈 콤플렉스’는 천연구장 4면으로 이뤄진 야구전용 연습장이었다. 2년 전까지 메이저리그팀 탬파베이가 쓸 정도로 구장 상태와 주변 환경이 최상이었다. 넥센 선수들은 4면의 야구장에서 투구, 수비, 공격, 주루 등의 다채로운 훈련을 동시에 소화했다. 4면이 벅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면 일본 캠프지의 국내 구단들은 구장 한 곳에서 모든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넥센보다 시간대비 훈련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넥센은 전지훈련 기간 내내 온화한 날씨에서 예정된 훈련 스케줄을 모두 소화했다. 비와 강풍으로 번번이 실내훈련을 해야 했던 일본 스프링캠프 팀들과 크게 비교됐다.
조 단장은 “일본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했다”며 미국 전훈을 평가했다.
# 미국 전훈 효과는
미국으로 전훈을 떠나는 구단은 6개 팀이다. KIA·두산·한화·넥센·NC 등 5개 팀이 1월 15일부터 애리조나에 머물며 메이저리그팀들이 스프링캠프에 입소하기 전인 2월 중순까지 구슬땀을 흘릴 예정이다. SK만 유일하게 플로리다 베로비치 캠프에 둥지를 틀 계획이다.
애리조나에 머무는 팀들은 연습경기를 통해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KIA 선동열 감독은 “감독들 간 연습경기와 관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며 “일본 오키나와 캠프에 버금가는 활발한 연습경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SK는 플로리다 지역 대학과 마이너리그팀들과 연습경기를 가질 계획이다.
새로운 전훈지로 떠오른 미국은 그러나 시즌 성적과 관련해선 천차만별이었다. 삼성은 1985년부터 미국 전훈지에서 몸을 만들었지만, 2001년까지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훈을 벌였던 넥센도 그해 창단 이래 첫 꼴찌를 경험했다.
해태와 삼성에서 각각 감독을 역임했던 김응용 씨는 “미국으로 전훈을 떠나려면 시차가 큰 본토보다는 하와이, 사이판, 괌 같은 태평양 섬이 유리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해태에 있을 때 하와이로 전훈을 떠나곤 했다. 그럴 때면 항상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삼성 감독일 때도 괌에서 훈련하며 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본토는 거의 가본 역사가 없다. 왠지 미국 본토에서 훈련하면 고아가 된 것처럼 우울하고 향수병이 생길 것 같았다. 내가 그런데 선수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렇다고 미국 전훈 효과가 모두 실패로 끝난 건 아니었다. 지금은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는 미국 전훈 효과를 톡톡히 본 팀이었다.
현대에서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했던 이숭용은 “현대가 단기간에 강팀이 된 데엔 미국 전훈효과가 매우 컸다”고 평가했다.
“플로리다 브렌든턴 캠프는 조용하고 오직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외딴 섬처럼 고립된 지역에 있는 만큼 선수단의 단결력이 강해졌다. 호텔 밖이 바로 운동장이라, 언제든 개인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당시 일부에서 ‘현대 혼자서 연습경기라도 제대로 치르겠느냐’라고 반문했지만, 자체 연습경기로 충분했다. 더군다나 당시 현대엔 좋은 투수가 많아 항상 A급 투수를 상대로 실전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웬만한 팀의 1.5군 투수와 백날 상대한들 실력이 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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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괌에서 전훈을 가졌던 삼성 라이온즈. 사진제공=삼성라이온즈 | ||
미국 전지훈련이 결정되며 아무개 감독은 수심에 잠겼다는 후문이다. 좋아하는 파친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일본에서 훈련 시 휴일이면 파친코장 개장 시간에 맞춰 자전거를 몰고 나가 온종일 즐기는 마니아로 유명하다. 어느 자리에 앉아야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지 꿰뚫을 정도로 전문가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전훈지가 결정되며 이 감독의 유일한 낙은 중단되게 생겼다.
사실 미국 전훈지는 휴일에 별로 갈 만한 곳이 없다. 대형 아울렛 매장이 고작이다. 그래서일까. 훈련기간 동안 선수들이 사들인 선물로 구단들은 입국할 때마다 막대한 화물비를 부담해야 한다.
미국 애리조나 지역 대형 아울렛은 한국 구단을 맞아들이기 위해 한국어 안내문을 만드는 등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는 후문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