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갈아입듯 직원들도 갈아치워
▲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명동의 유니클로 매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유니클로’를 이끄는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柳井正·63)의 화려한 이력이다. 그런 그가 현해탄 건너 한국에서 책 한 권 발간을 막기 위해 소송도 불사했다. 지난 12월 국내 발매 직전 출판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며 적극적인 방어에 나선 것. 야나이 회장의 타깃은 이미 일본에선 베스트셀러가 된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서울문화사). 과연 야나이 회장이 숨기고 싶어 했던 ‘유니클로 제국의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
▲ 야나이 회장 |
야나이 회장은 1984년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5세에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라는 매장을 오픈했다. 당시 고가의 브랜드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야나이 회장은 저렴한 캐주얼웨어를 선보이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한 것이었다.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후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일명 ‘ABC 개혁’을 통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화를 시도했다. 오랫동안 거래해온 제조업체나 도매상들과의 거래를 대폭 축소하거나 전면적으로 끊으면서 중간 거래를 없앤 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아르바이트생의 옷차림과 말투까지도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시켰다.
이후 야나이 회장은 중개업자 없이 유니클로가 제조에서부터 최종소비까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기획 단계부터 생산, 물류, 판매에 이르기까지 자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고 지금의 ‘싸고 질 좋은 옷’이 탄생했다. 현재 유니클로는 11개국에서 1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여기까지가 지금껏 세상에 알려진 ‘유니클로 제국’의 역사다. 여기에 메스를 들이댄 사람이 있었으니 일본 저널리스트 요코타 마스오 씨(橫田增生)다.
그는 직접 유니클로 관련 인물들을 만나고 중국 현지 공장을 방문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월간 <문예춘추>에 2010년 1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정직원이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 점, 4년도 지나지 않아 11명의 임원 중 10명이 그만둔 사실 등을 거론하며 이 같은 결과가 있기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폭로했다.
이후 1년간의 연재물을 묶어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는데 30만 부 이상이 팔리는 등 폭발적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동안은 야나이 회장의 성공과 유니클로의 성장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 있었는데 그 이면을 공개적으로 들춰낸 것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패션에 관심 없던 내게 유니클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낮은 연봉을 받으며 혹사당하는 점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실상, 중국 공장 노동자의 현실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야나이 회장의 독단적인 모습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독자들의 반향이 커지자 유니클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 6월 유니클로는 책을 출판한 문예춘추를 상대로 책 발행 금지 요청과 함께 이미 발행된 책을 회수해 폐기함과 동시에 명예훼손을 이유로 2억 2000만 엔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이 소송은 1심이 진행 중에 있으나 문예춘추 측은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도 증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는 머리말과 총 8장의 섹션,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다. 유니클로 측이 문제 삼는 부분은 ‘제5장 유니클로에서 일한다는 것: 일본 편’과 ‘제6장 유니클로에서 일한다는 것: 중국 편’이다. 유니클로는 제5장과 제6장에 실린 일부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며 자사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에서 유니클로가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제품의 제조·판매과정에서 일본 매장 및 중국 생산 공장 근로자들에게 저임금, 장시간 근로를 강요한 것처럼 비친다는 이유에서다.
유니클로 측은 특히 △유니클로의 점장이었을 때는 매일 15~16시간은 일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녹초가 되어 그만두기 직전에는 ‘제발 누가 날 좀 죽여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장시간 근로에 대한 불평을 말할 수 없었다. △매년 2300명의 대졸사원이 들어오지만 매년 비슷한 수의 대졸사원이 그만둔다. △점장의 권한은 인건비 삭감뿐 등의 내용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유니클로는 납기일을 중시한다. ‘납기일 일정을 맞추지 못하겠으면 잔업을 하시오. 그래도 안 된다면 철야를 하시오’라는 식이다. △밤 12시는 보통이고 심할 때는 새벽 3시까지 잔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8시부터 또 일을 시작해야 하니까 잠잘 시간도 거의 없다. △검품 후 불량률이 0.3%를 초과하면 모두 중국 공장에 돌려보내 다시 검수한다. 그 비용은 모두 공장 측이 부담한다는 내용도 중국 생산 공장 근로환경에 대한 허위사실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지난 13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유니클로가 신청한 출판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저자가 직접 듣거나 본 내용과 그에 대한 저자의 의견, 평가, 비판 등을 기술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책 내용 중 사실을 적시한 부분은 일부 과장되거나 모호한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객관적 사실에 부합되는 것이라 판단된다’는 의견이다. 이제 ‘유니클로 제국의 그림자’는 독자의 판단이 남아있는 셈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