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현대차 ‘가문의 영광’ 싣는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근 현대건설과 만도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옛 주인이었던 현대 정씨 일가가 이를 되사들이려는 물밑 행보가 활발해지고 있다.
자동차 부품사인 만도는 현대자동차와 옛 주인인 한라건설이 강력한 인수의지를 밝히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라건설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인영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원 회장이 대주주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한편 현대건설도 최근 현대그룹, 현대산업개발, 현대자동차가 인수주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모태로 성장한 만큼 현대건설 인수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현대산업개발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현대건설 인수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는 현대건설을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만도 인수전은 이미 현대자동차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 지멘스, 테베스, TRW 등 외국계 자동차 부품회사가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현대자동차 때문에 모두 인수를 포기했다. 만도가 생산하는 자동차의 제동장치, 조향장치, 현가장치 등의 부품 70%는 현대자동차에 납품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인수의향을 밝힌 이상 현대자동차를 따돌리고 인수에 성공할 경우 현대자동차가 납품물량을 줄여버릴 우려가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지난 7월 동종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인 카스코를 인수해놓고 있어 만도를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대안이 마련되어 있다.
만도의 지분 73.11%를 가지고 있는 선세이지의 계열사인 JP모건이 만도의 적정가를 1조5천억∼2조원이라고 밝히기도 했으나 현대차가 1조원 이하를 밝히면서 가격이 7천억원대로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만도에 대한 기업실사에 들어간 현대자동차가 선세이지와 내부 합의를 끝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편 한라건설은 외국계 인수 후보들이 물러선 이후 만도의 인수전 참여를 선언하고 나서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정인영 명예회장이 만도를 손수 일군 장본인인 데다 아직도 애착이 커서 쉽게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997년 한라그룹이 부도가 나자 정 명예회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졌었다.
현재 한라건설이 만도 지분의 9.27%, 정몽원 회장이 9.27%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주식우선매수권을 가지고 있어 선세이지가 만도 지분을 매각할 때 같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한라건설은 내부잉여금 1천5백억원 등을 합한 매입자금을 모두 마련한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만도의 주 납품처가 현대자동차인 만큼 의견 조율을 위해 정인영 명예회장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을 만나 양해를 구할 예정이다.
비록 예전에는 정몽구 회장과 정몽원 회장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한라건설측은 구체적인 인수의사를 밝힌 이상 정몽구 회장이 작은아버지인 정인영 명예회장의 의중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데 기대를 걸고 있다.
현대건설의 경우 지난 4월20일 김윤규 전 부회장이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이 인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전 부회장의 발언은 현대아산 브랜드로 아파트 사업 진출도 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현대건설도 인수해야 한다는 개인적 의견이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현대그룹 내부정서는 현대건설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의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건설은 외환위기를 통해 2001년 정씨 일가의 지분이 감자되면서 주인이 채권단으로 바뀐 바 있다.
김 전 부회장은 대북사업 중 일부를 매각할 경우 생기는 1조5천억원을 매입자금으로 사용하면 된다며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당시 현대건설의 주가가 2만원 안팎으로 시가총액 2조원대였다. 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가진 지분은 54.25%로 충분히 가능한 수치였다. 그러나 현재 주가는 4만원에 가까워져 시가총액은 3조5천억∼4조원으로 자금마련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규 회장의 현대산업개발도 현대건설 인수 후보에 올라 있다. 아이파크라는 브랜드로 내수시장에 전념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은 국내 건축시장의 위축으로 해외시장 진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해외진출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자금동원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측은 “현재로서는 현대건설을 인수할 의향도, 해외진출 계획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작 현대건설 인수를 계속 저울질해왔던 곳은 현대자동차라고 전해진다. 올해 들어 급속히 수직적, 수평적 사업확장을 계속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자금 여력도 충분해 인수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다만 최근 현대건설의 가격이 급등하자 인수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측은 건설사인 엠코가 있는 데다 현대건설 인수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주변에서는 ‘현대건설은 현대가가 인수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고 그 중 능력이 되는 곳은 현대자동차가 아니겠냐고 관측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채권단에 넘어간 이후 그간 부실을 털어내고 국내 시공능력평가 3위로 뛰어올랐다. 향후 4∼5년 내 수주 물량이 10조원에 달하고 올해 순이익이 3천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서산 간척지의 토지 1천80만 평 중 4백73만 평이 기업도시 개발예정지로 선정되는 등 호재를 맞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주가가 급등하며 정몽구 회장의 재산이 국내 재산순위 1위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비슷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정주영 회장 사망 이후 부침이 심했던 정씨 일가가 재계의 정상 자리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현대건설을 되찾은 정씨 일가가 정주영 명예회장 때의 영광의 시절로 부활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