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가처분 ‘법원 인용’ 최악 경우 대비 방어망 구축…조기 전당대회 통한 새 출발 목소리도 솔솔
실무적 요인으로 인해 미뤄진 것으로 보이는 법원 판단과 달리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위 결정이 10월로 넘어간 점은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를 추가 징계 대상으로 삼는 등 이 전 대표 추가 징계에 대한 명분 쌓기 시도가 감지된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운명의 날, 왜 미뤄졌을까
‘디데이’는 9월 28일로 여겨졌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이준석 전 대표가 낸 여러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이 일괄적으로 진행되면서 이날 재판부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같은 날 국민의힘 중앙당 윤리위원회도 오후 7시 국회 본관에서 전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이 전 대표가 이날 제명이라는 초강력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예측이 우세하게 나오면서 9월 28일의 의미를 키웠고, ‘운명의 날’이라는 호칭까지 따라붙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9월 28일 오전 11시부터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과 정진석 비대위원장 및 비대위원 6명을 상대로 낸 3∼5차 가처분 신청 사건을 심문했다. 이 전 대표가 이날 법정에 직접 나왔고 국민의힘 비대위원들도 얼굴을 나타냄으로써 운명의 날답게 서울남부지법은 언론의 큰 주목을 이끌어냈다.
법정에 직접 출석한 이 전 대표는 “1차 가처분에서 인용 결과가 나왔고 재판부에서 명쾌한 결정문을 썼음에도 (국민의힘이) 못 알아들은 척하는 지속된 상황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재판부께서 지엄한 명령으로 ‘제발 좀 알아들어라’라고 주문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친정 국민의힘을 몰아세웠다.
국민의힘 측에선 전주혜 김종혁 비대위원이 출석, “당이 진퇴양난에 처해있고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며 재판부에 기각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전주혜 비대위원은 “가처분이 인용된다는 건 결국 당헌 개정이 이준석 전 대표를 쫓아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논리가 인정돼야 하는데 그것은 천동설과 같은 이야기”라며 “인용은 당으로서는 재앙”이라고 말했다. 김종혁 비대위원도 “당 대표가 군사정권의 외부적인 탄압이 아니라 자기 임기를 보장해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간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양측이 상대를 향해 날선 주장을 내놓는 장면이 잇따라 포착되면서 서울남부지법을 향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져갔다. 법원이 앞서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결정을 하면서 ‘국민의힘이 비상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이미 내린 바 있어 이번에도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왔다.
그런데 오후 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출입기자단 앞으로 ‘국민의힘 관련 가처분 사건 결정은 10월 4일 이후에 이뤄질 예정’이라는 공지가 나왔다.
법원 판단이 이날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겉으로는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법원의 고심이 깊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류다.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 정지 이후 ‘사법 소극주의라는 세계적 조류를 넘어선 사법부의 권한 남용’이라는 법조계 내부의 지적이 있었던 데다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를 하는 정기국회가 개회돼 있는 터라 집권여당의 행동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법부 판단이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비상상황이 아니다’라고 이미 법원이 판단했는데 이 방향성만 본다면 추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도 뻔하다. 그런데 법원이 좀 더 신중을 기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더 많은 고심을 하는 걸로 보인다. 어쨌든 법원이 이 전 대표의 가처분신청을 또 받아들이는 최악의 경우로 가도 주호영 원톱체제 비상 카드가 있으니 충격은 적을 것이다.” 국민의힘 한 법조인 출신 의원은 사법 리스크 방탄복은 충분히 마련됐다고 했다.
#징계 명분 축적시간 필요했을까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은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개시를 발표했던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9월 28일 징계위원회를 열고도 이 전 대표 사안을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심층 해석이 따라붙는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9월 28일 오후 7시부터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국회에서 전체 회의를 진행했지만 이 전 대표 추가 징계안은 심의하지 않고 10월 6일에 하기로 했다.
당초 윤리위 전체 회의 안건에는 이 전 대표 추가 징계가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전격적으로 상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결국 이 전 대표 징계 결정은 다음 회의로 미뤄졌다. 윤리위는 지난 9월 18일 긴급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 등에 대해 ‘양두구육’ ‘신군부’ 등 비난을 한 이 전 대표에 대해 추가 징계 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전체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이준석 당원에 대한 징계 절차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다른 징계 절차 개시 건들도 몇 개 있었다”며 “차기 회의를 10월 6일로 잡았다. 10월 6일 심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 징계 사안에 대한 심의는 미뤄졌지만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 수위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윤리위의 고강도 징계 결정이 9월 28일 여러 건 나왔다. 수해 복구 현장에서의 실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성원 의원에게는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또 ‘연찬회 술자리’로 물의를 빚은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징계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김 의원 징계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권 전 원내대표 징계 절차 개시는 새로운 뉴스로 받아들여졌다. 이 위원장은 권 전 원내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 개시에 대해 “지난 8월 25일 국회의원 연찬회 당시 당내 비상상황 등에 따른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음주 및 노래 모습이 외부에 공개돼 윤리규칙 4조 위반 여부를 심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전 원내대표에 대한 징계 요구는 외부에서 접수된 것으로, 징계 절차 개시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윤리위는 ‘후원금 쪼개기’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김희국 의원에 대해서는 당헌당규에 따라 피선거권 및 공모에 대한 응모자격 정지, 당직 직무 정지 처분을 내렸고 경찰국 반대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을 주장한 권은희 의원에 대해서는 징계 없이 엄중한 주의를 촉구하는 선에서 징계를 마무리했다.
윤리위가 이 전 대표와 권 전 원내대표에 대해 10월 6일 전체 회의 출석을 요청, 심각한 갈등 관계를 이어온 이 전 대표와 권 전 원내대표가 동시에 징계 심판대에 오르는 장면이 나오게 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윤리위 개최 과정이야 어찌됐든 간에 국민의힘 내홍의 원인을 둘러싸고 이 전 대표와 윤핵관에 대한 양비론도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이러한 여론대응에 있어서 상당 부분 효과를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리위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당 내홍에 큰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 전 대표와 권 전 원내대표가 동시에 회초리를 맞는 모습을 통해 당 혼란 국면에 종지부를 찍고 새 출발을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다.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중징계 카드를 꺼내들었던 9월 28일 징계위의 엄한 모습은 10월 징계위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이 전 대표에 대해서는 이미 받은 징계보다 더 센, 결국 제명에 준하는 정도의 징계가 예상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양희 윤리위원장 임기가 10월에 만료되는 터라 이 위원장이 여러 눈치를 보지 않고 강경한 결정을 내리기 쉬운 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기 전대로 새 출발
최근 국민의힘 내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법원 결정이나 징계 수위와 관계없이 이 전 대표에 대한 당 차원 방어 국면은 사실상 끝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잃어버린 내 권리를 되찾겠다”면서 이 전 대표의 대응 행동이 전방위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 전 대표의 여론전에 대한 피로감으로 인해 언론의 반응이 상당 부분 식어버린 모습도 방어 국면 종료를 앞당겨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전당대회 국면으로의 조기 전환을 통해 국민의힘 상황을 새롭게 변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임시 지도부 체제가 아닌 총선 승리용 새 지도부를 이른 시일 안에 세우는 방법으로 당의 면모를 일신해야 지긋지긋한 내홍이 끝난다는 논리가 이 주장의 배경이다.
당권주자들도 이런 시류에 발맞춰 본격적으로 몸을 푸는 모양새다.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당권주자만 정우택 정진석 권성동 김기현 윤상현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유승민 나경원 전 의원 등 8명에 달한다.
이 중 김기현 안철수 의원은 일찌감치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다른 주자들도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부터 파고드는 방식으로 이미 움직임을 시작했다. 김기현 의원이 9월 30일 대구를 찾아 당원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했고 유승민 전 의원은 이보다 하루 앞선 9월 29일 경북대학교에서 강연 정치 시동을 걸었다.
유 전 의원은 경북대 강연에서 당 대표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최근 자신의 지지율이 자신의 고향인 대구·경북(TK)에서 높게 나온 데 대해 잔뜩 고무된 반응을 보이면서 사실상 출마 의사를 굳힌 듯 보였다. 그는 TK에서 국민의힘 대표 적합도 1위를 했다는 소식에 대해 “그게 제일 반갑다”고 했다.
앞서 9월 28일 조경태 윤상현 의원도 국민의힘 당원이 가장 많은 대구를 찾아갔다. 안철수 의원 역시 이보다 앞선 9월 21일 대구에 왔고 정치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면서 ‘인플루언서’ 역할을 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TK의원은 “이 전 대표와 관련된 악재가 모두 드러나 더 이상의 악재 효과가 없다”며 “모든 악재에 대한 예측과 대비도 이뤄진 만큼 전당대회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한다면 위기 정당에서 정상 정당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