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잡음·권력 다툼 이어지자 윤석열 대통령도 이들과 ‘손절’ 움직임…추후 대통령 우군 역할 요구 가능성 높아
이준석 전 대표를 둘러싼 내홍에 가려져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지만 정가에선 한 인물의 거취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김무성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부의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김무성 고문은 그동안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여권의 ‘막후 실력자’로 불렸는데, 드디어 공식 직함이 달릴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그런데 김 고문의 민주평통 부의장 내정 이후 대통령실 내부에선 민감한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 고문에 대한 비토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고, 민주평통 부의장 내정이 철회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결국 김 고문 임명은 없던 일이 됐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김 고문의 과거 부적절한 일, TK(대구·경북) 인사 발탁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핵심은 김 고문이 임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고문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이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윤 대통령 주변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김 고문 내정은 확정 단계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권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이 변수로 작용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가에선 정권 초반 인사의 공식으로 여겨졌던 ‘윤핵관 천거’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데에 주목했다. 김 고문의 경우 윤핵관으로 불리는 여권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핵관 뒤에 김 고문이 있다는 말도 심심찮게 돌았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이른바 ‘윤핵관’으로 불리는 정치권 최측근 인사들과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기자에게 △반복되는 인사실패 △대통령실 보안사고 △윤핵관 내부 권력 다툼 △이준석 전 대표 징계잡음 등 네 가지를 그 이유로 들었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지지율이 추락했고, 반등을 위해선 윤핵관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판단을 윤 대통령이 내렸다는 것이다.
이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대선 경선 때부터 윤핵관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개국 공신인 윤핵관은 정권 초부터 인사, 정책 등에서 윤 대통령 신임 아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서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구설은 계속됐는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이들이 없었다. 오롯이 윤 대통령 부담이 됐다. 윤핵관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을 ‘손절’할 것이란 얘기까지 돌았다. 이에 윤 대통령이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과 관련된 연이은 보도를 심각하게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적채용 논란, 김건희 여사 의혹 등의 진원지가 대통령실 내부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특정인 근무 여부를 외부, 또는 야권 성향 언론에 전달해주는 의도가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 편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라면서 “보안 단속이 심해졌고, 기자들과의 연락 자체를 피하는 직원이 늘어났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 근무하고 있다가 최근 그만둔 직원들의 상당수가 보안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윤 대통령은 윤핵관 인사들 간의 권력다툼 현상에 대해서도 큰 실망감을 표출했다고 한다. 앞서의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를 하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누군가를 음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안에서 해결되는 게 아니고, 언론에 생생하게 중계됐다”면서 “정부에 지분을 갖고 있는 실세들이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는 것을 본 윤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했겠느냐. 이는 대통령실 직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윤핵관을 보는 시선은 차갑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시기에 대대적인 인적교체를 단행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전체 400여 명 직원 중 최대 80명을 바꿀 것으로 전해졌다. 정가에선 윤 대통령이 ‘윤핵관’으로 대표되는 여의도 ‘어공’ 대신 관료 출신 ‘늘공’ 중용 기조를 보일 것으로 점친다. 얼마 전부터 경제통 김대기 비서실장 그립력이 세지고,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들의 목소리가 부쩍 늘어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찰 고위직 출신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로 데려간 검찰 출신들의 공통점은 ‘입이 무겁다’는 것이다. 복두규 인사기획관이 대표적이다. 검찰의 수직적인 상명하복 시스템에서 직원들 간 알력 싸움은 벌어지기 어렵다. 설령 있더라도 윗선 말 한마디면 교통정리가 된다. 하지만 지금의 여권은 그렇지가 않다. 민감한 내용들이 외부로 유출되고, 대통령 질책에도 내부총질이 계속됐다. 서초동 시절을 생각하면 윤 대통령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정권 출범 때야 선택지가 없이 윤핵관만 믿고 갔겠지만, 이제부턴 능력이 검증된 사람들에게 업무를 맡길 것으로 보인다.”
윤핵관으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은 청와대의 이런 기류 변화에 곤혹스러워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준석 전 대표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 이후 윤핵관에 대한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사라질 경우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감지된다. 물론, 윤 대통령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한다. 윤 대통령이 ‘검핵관(검찰 출신 핵심 관계자)’ 등을 지나치게 중용하고, 대선 때부터 함께했던 자신들을 ‘팽’ 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인사 라인 요직에 배치된 검핵관은 지지율 하락에 책임이 없느냐는 말도 뒤를 잇는다.
하지만 일단은 바싹 엎드리는 모습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새로운 비대위가 출범하면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장제원 의원은 9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최근 당의 혼란에 무한 책임을 느낀다. 이제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책무와 상임위 활동에 전념하겠다”면서 “계파활동으로 비칠 수 있는 활동을 일절 하지 않겠다. 앞으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2선 후퇴를 천명한 것으로 읽힌다.
정가에선 윤핵관이 당분간 숨을 고를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차기 전당대회 일정이 확정되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이준석 사태’를 경험한 윤 대통령으로선 확실한 ‘우군’이 차기 당 대표로 선출되는 시나리오를 원한다. 2024년 총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윤핵관 역할이 다시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동시에 윤핵관 입장에선 대통령 재신임을 받을 기회이기도 하다.
윤핵관을 비롯한 친윤 그룹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의 일전을 깔끔히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는 데에도 공감대가 모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8월 27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선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를 촉구하기로 결정했다. 9월 1일 당 윤리위원회는 “의원총회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이 전 대표 징계를 시사했다. 윤리위는 9월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전 대표의 ‘개고기’ ‘양두구육’ ‘신군부’ 발언 등이 해당행위에 속하는지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 윤핵관 의원실 관계자는 “결국 모든 일은 이준석으로부터 비롯됐다. 이준석과의 싸움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결정타였다. 또 이로 인해 대통령과 윤핵관 간 관계도 삐걱거렸다. 어느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준석도 이준석이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윤핵관 역시 책임이 크다. 윤 대통령이 이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 것 같다. 이준석을 정리하는 게 모든 일의 출발이 될 것”이라면서 “윤리위가 6개월 당원권 정지보다 훨씬 더 센 징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