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명 변경 ‘쇼’ 감동도 재미도 없고~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결국 ‘박근혜 비대위’는 여론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설을 거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연휴 뒤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비대위(한나라당) 지지율은 홍준표 전 대표 시절보다도 낮다. 여기에다 쇄신파의 재창당 요구를 당명변경으로 대충 눈가림하려다 여론의 철저한 외면을 받는 등 비대위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낙제 수준이다.
이런 비대위의 실패는 결국 ‘박근혜 신드롬은 끝났다’는 쪽으로 시각이 이동되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이 있었다면 쇄신활동이 국민들의 평가를 받고 지지율도 더 올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대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면서 박근혜 위원장의 대권 도전도 심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박 위원장이 이대로 비대위와 함께 침몰할지, 아니면 새로운 당명을 내걸고 부활할지 진단해봤다.
‘어차피그당’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새로운 당명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 SNS 등에서 한때 화제를 모았던 우스꽝스런 이름이다. 이를 전해들은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만을 믿고 쇄신활동을 도왔지만 설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자 힘이 빠진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라 중간에 내릴 수도 없다. 곁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한 관계자는 “한마디로 죽을 노릇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 비대위 관계자들은 활동 한 달을 맞는 설 이후 민심을 상당히 예의주시해왔다. 그것이 향후 공천 흐름과 ‘새로운 당명을 내건 한나라당’의 성패를 좌우할 결정적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싸늘했고 평가도 부정적이다. 일단 친박계 내부에서도 비대위 활동에 대해 말들이 많다. 박 위원장의 최측근이었던 유승민 전 최고위원마저 불만족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그는 지난 1월 26일 MBN 미디어센터에서 실시된 정치아카데미 강연회에서 기자에게 “박근혜 비대위는 나도 솔직히 걱정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불만족스럽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 1월 17일 한나라당 의총에서 인사말을 하는 박 위원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박 위원장의 텃밭도 흔들리고 있다. 충청은 지난해 9월 중순만 해도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박 위원장이 49.8%의 지지율로 안 원장(39.4%)을 여유 있게 리드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대전·충남북 지역에서 박 위원장(42.1%)이 안 원장(46.7%)에 뒤졌고,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24일 조사에서도 안 원장(43.8%)이 박 위원장(43.2%)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경남에서도 박 위원장이 안 원장의 추월을 허용한 것은 더 충격적이다. 지난해 9월 조사에선 이 지역에서 박 위원장(49.6%)이 안 원장(36.1%)에 앞섰고, 12월 조사에서도 박 위원장(50.4%)이 안 원장(38.4%)을 앞섰다. 그러나 이번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는 오차 범위이긴 하지만 부산경남에서 안 원장(44%)이 박 위원장(40.9%)에 앞섰다. 대구경북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박 위원장의 텃밭이 없어진 셈이다.
비대위 활동에 대한 민심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그동안 박 위원장의 ‘도전’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던 당직자들이나 의원들의 얼굴에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비대위원인 주광덕 의원은 이에 대해 “설에 만난 젊은 보수들은 현재 비대위에서 하는 쇄신에 별다른 감동이 없더라. 내용과 속도 면에서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비대위의 참담한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게 한 친이계 재선의원의 진단이다. 그는 이에 대해 “재창당 없이 비대위가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들만의 착각이었다. 비대위에 동참했던 쇄신파도 착각했는데 박 위원장 주변 사람들은 오죽 했겠느냐. 어차피 처음부터 안 되는 것이었다”라고 전제하면서 “정치는 충격요법이 두 번 이상 먹히지 않는다. 지난 2004년 천막당사가 먹혔지만 이제는 안 통한다. 그때와는 정치지형도 많이 달라졌다. 토대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데 옷 좀 갈아 입고 화장 좀 고치고 해서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 2004년 3월 한나라당 현판을 떼서 천막당사로 이동하는 박근혜 당시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또한 소장파의 한 의원은 박 위원장이 재창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최대의 실수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에 대해 “우리가 얘기한 재창당이라는 것은 근본 틀을 바꿀 수 있는 정강정책도 손 보고, 근본 틀을 바꿀 수 있는 인물들을 다시 영입해서 다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입작업은 박 위원장 주변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위주로 돼 간다. 파출소 피하려다가 대검찰청 만난 꼴이다”라고 쏘아붙였다.
이렇듯 박 위원장의 비대위 활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면서 그의 대선 가도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소장파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의 비대위 실패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차피 없는 박근혜 대세론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신드롬’은 끝났다. 대세론이 존재했다면 당이 이 모양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살아 있었다면 비대위 쇄신 활동 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했고 여론조사 지표에도 반영이 돼야 하지만 충청과 부산경남마저도 내주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박 위원장이 전면에 나섰지만 여론은 여전히 차갑다. 이것은 박 위원장의 대권 가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의 또 다른 한 전략 관계자는 “우리나라 정치는 보수정당이 110~120석은 기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박 위원장 없이 소장파만 내세웠어도 지금 정도의 당 지지율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대세론이 살아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5~10%포인트 정도의 지지율 상승효과는 가져왔어야 한다. 현재의 여론조사는 ‘박 위원장의 대세론은 없다’는 것을 인식한 냉정한 민심의 반영이라고 본다. 앞으로 공천 심사 결과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지난 2006년 추석 때의 지지율 역전 뒤 회복 못한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이제 재창당은 늦었다. 설 전에라도 시작했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비대위는 그대로 계속 갈 것이다. 그냥 끌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니겠는가. 나올 용기나 재창당을 할 용기 있는 인사들은 없을 것이다. 전부 불쌍하게 되었다. 죽는 줄 알면서 그냥 따라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한 달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기대이하’라는 게 중론이다. 이미 ‘낙제’ 성적을 예상했던 인사들은 “박근혜 신드롬은 원래 없었던 것이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소장쇄신파들은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된 것이 비대위 활동의 결말이 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되뇌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박근혜, MB와 선긋기 그후
빠드득! 청와대 이 가는 소리
“문전박대까지 당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인사차 한 친박 의원을 방문하려 했던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비서진으로부터 “(의원님) 업무가 많아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권 초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비록 친박 의원이긴 하지만 그때는 먼저 전화해서 만나달라고 요청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통 보기가 어렵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하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스탠스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이러한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현재 여권의 권력 축은 박 위원장에게로 쏠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관측이다. 임기 말에 접어든 이 대통령은 연이은 친·인척 비리, 디도스 사태, 다이아 게이트 등으로 사실상 국정 운영에 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청와대로서는 박 위원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과 ‘선 긋기’를 하려는 친박 측을 향해 끊임없이 ‘구애’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비대위 출범 이후 당·청 간의 ‘핫라인’이 많이 끊겼다. 어떨 때는 우리도 언론을 보고 비대위 입장을 접한다”면서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과 퇴임 후를 생각하면 ‘차기 권력’인 박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기류가 조금 달라졌다. “비대위가 MB를 계속 흔들면 우리도 가만있어선 안 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계기는 몇몇 비대위원들의 이 대통령 탈당 요구였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지난 1월 19일 한 라디오에 출연, 이 대통령 탈당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를 접한 청와대는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면서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 위원장이 “(탈당 요구는) 논의된 적이 없으며,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를 할 생각은 없다”며 해명을 했지만 격앙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인사는 사석에서 “박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면 김종인 비대위원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 박 위원장의 암묵적 묵인 하에 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우리가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단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청와대는 친박의 ‘MB 털기’에 대해 ‘투트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박 위원장 행보에 원칙적으로 협조는 하겠지만 이 대통령을 정조준할 경우 그대로 묵과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친박 역시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작업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서도 그 수위는 조절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영남권의 한 친박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현 정권과 선을 긋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전략이다. 다만 지나치게 이 대통령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42명 공천살생부’ 누구 짓
친이의 흔들기? 야권의 이간질?
한나라당이 이른바 ‘공천 살생부’ 파문으로 뒤숭숭하다. 4·11 총선을 앞두고 공천 부적격자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국회 의원회관 주변에서 나돌고 있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가 ‘현역의원 25% 교체’를 밝힌 상황인지라 의원들은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설 연휴가 끝난 직후에도 “25% 공천 탈락자 선정을 위한 현역 의원 여론조사가 곧 시작됐다”는 소문이 돌아 몇몇 의원들이 급히 지역구로 돌아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선거 전엔 이런 식의 리스트가 어김없이 돌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이다. 지역별로 나뉘어 실명까지 거론되고 있어 의원들로선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26일 난데없이 튀어나온 ‘살생부’엔 총 42명의 한나라당 현역의원이 포함돼 있다. 이 중 38명은 ‘총선 부적격자’, 나머지 4명은 ‘예비 부적격자’로 분류돼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 12명, 경기 12명, 대구·경북(TK) 7명, 부산·경남(PK) 6명, 인천 5명 등이다. 친이와 친박 골고루 포함돼 있으며 전직 당 대표들도 이름을 올렸다.
초선부터 4선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는 수도권과 달리 영남권에선 ‘용퇴론’에 휩싸였던 친박 핵심을 비롯한 중진 의원들이 대거 명단에 적혀 있다. 살생부에 올라 있는 이한구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공천심사위원회 구성도 안 됐는데 어떻게 그런 게 나올 수 있나. 누가 공작하는 거니까 신경 안 쓴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살생부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이 있는가 하면 부정비리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의원은 빠져 있는 등 명단 자체가 허술해 “엉터리”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살생부에 포함된 H 의원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소설에 불과하다. 기준이 모호하고 수도권과 영남에 집중돼 있다. 왜 충청권은 빠졌느냐. 선거 때 으레 나오는 흑색선전”이라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당 지도부도 자칫 쇄신작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살생부 논란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진화에 나섰다. 이상돈 비대위원은 “비상대책위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문제를 언급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살생부를 평가절하하면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금 이 시점에 공개된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앞서의 H 의원은 “공천에 탈락할 위기에 놓여있는 누군가가 ‘판’을 깨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심정으로 퍼뜨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선 비주류로 전락한 일부 친이계 라인이 비대위를 흔들기 위해 작성해 흘렸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일각에선 야권이 친박과 친이계를 ‘이간질’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동]
빠드득! 청와대 이 가는 소리
“문전박대까지 당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인사차 한 친박 의원을 방문하려 했던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비서진으로부터 “(의원님) 업무가 많아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권 초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비록 친박 의원이긴 하지만 그때는 먼저 전화해서 만나달라고 요청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통 보기가 어렵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하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스탠스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이러한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현재 여권의 권력 축은 박 위원장에게로 쏠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관측이다. 임기 말에 접어든 이 대통령은 연이은 친·인척 비리, 디도스 사태, 다이아 게이트 등으로 사실상 국정 운영에 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청와대로서는 박 위원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과 ‘선 긋기’를 하려는 친박 측을 향해 끊임없이 ‘구애’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비대위 출범 이후 당·청 간의 ‘핫라인’이 많이 끊겼다. 어떨 때는 우리도 언론을 보고 비대위 입장을 접한다”면서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과 퇴임 후를 생각하면 ‘차기 권력’인 박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기류가 조금 달라졌다. “비대위가 MB를 계속 흔들면 우리도 가만있어선 안 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계기는 몇몇 비대위원들의 이 대통령 탈당 요구였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지난 1월 19일 한 라디오에 출연, 이 대통령 탈당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를 접한 청와대는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면서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 위원장이 “(탈당 요구는) 논의된 적이 없으며,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를 할 생각은 없다”며 해명을 했지만 격앙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인사는 사석에서 “박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면 김종인 비대위원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 박 위원장의 암묵적 묵인 하에 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우리가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단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청와대는 친박의 ‘MB 털기’에 대해 ‘투트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박 위원장 행보에 원칙적으로 협조는 하겠지만 이 대통령을 정조준할 경우 그대로 묵과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친박 역시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작업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서도 그 수위는 조절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영남권의 한 친박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현 정권과 선을 긋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전략이다. 다만 지나치게 이 대통령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42명 공천살생부’ 누구 짓
친이의 흔들기? 야권의 이간질?
지난 1월 26일 난데없이 튀어나온 ‘살생부’엔 총 42명의 한나라당 현역의원이 포함돼 있다. 이 중 38명은 ‘총선 부적격자’, 나머지 4명은 ‘예비 부적격자’로 분류돼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 12명, 경기 12명, 대구·경북(TK) 7명, 부산·경남(PK) 6명, 인천 5명 등이다. 친이와 친박 골고루 포함돼 있으며 전직 당 대표들도 이름을 올렸다.
초선부터 4선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는 수도권과 달리 영남권에선 ‘용퇴론’에 휩싸였던 친박 핵심을 비롯한 중진 의원들이 대거 명단에 적혀 있다. 살생부에 올라 있는 이한구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공천심사위원회 구성도 안 됐는데 어떻게 그런 게 나올 수 있나. 누가 공작하는 거니까 신경 안 쓴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살생부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이 있는가 하면 부정비리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의원은 빠져 있는 등 명단 자체가 허술해 “엉터리”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살생부에 포함된 H 의원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소설에 불과하다. 기준이 모호하고 수도권과 영남에 집중돼 있다. 왜 충청권은 빠졌느냐. 선거 때 으레 나오는 흑색선전”이라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당 지도부도 자칫 쇄신작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살생부 논란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진화에 나섰다. 이상돈 비대위원은 “비상대책위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문제를 언급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살생부를 평가절하하면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금 이 시점에 공개된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앞서의 H 의원은 “공천에 탈락할 위기에 놓여있는 누군가가 ‘판’을 깨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심정으로 퍼뜨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선 비주류로 전락한 일부 친이계 라인이 비대위를 흔들기 위해 작성해 흘렸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일각에선 야권이 친박과 친이계를 ‘이간질’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