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로스쿨생들 땡 잡았다는데…
▲ 지난 1월 3일 연세대학교 백양관에서 제1회 변호사시험을 치른 1기 로스쿨 수험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1기 로스쿨 출신을 대상으로 3~7일 시행된 변호사시험에 1698명이 지원해 1.1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
특히 변시 관련 일부 채점진이 이번 응시자들을 겨냥해 ‘답안이 법과대학 3~4학년 수준’이라고 평가를 했다는 말이 법조계 주변에서 나돌면서 더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낮은 경쟁률로 인해 자질 없는 변호사들이 대거 발탁될 것을 우려해 최근 현직 변호사 110명은 ‘제1회 변호사시험 평가보고서’를 법무부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변시 검토위원, 채점진 등을 만나 제1회 변시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는 자세한 내막을 들어봤다.
평가보고서를 주도한 나승철 변호사는 “제1회 변호사시험의 난이도와 경쟁률이 너무 낮아 이를 통과하더라도 변호사 자격을 평가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현직 법조인이 이번 변시 문제를 분석한 결과 법학을 전공한 학생들 수준 정도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다수 출제됐다”며 “심지어 사례형과 기록형 부문에서는 사실상 쟁점 및 목차를 문제에 대놓고 제시해 답안을 쉽게 쓸 수 있게 유도하는 문제들도 꽤 있었다”고 지적했다.
나 변호사는 이어 “법무부가 돈 있는 사람에게는 쉽게 변호사 자격을 주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사법시험(사시)과 같은 혹독한 수험생활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명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면서 “물론 변시가 사시처럼 최고 난이도로 출제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법학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출제돼야 한다. 당분간 사시와 변시가 병존하는 이상 지금처럼 두 시험 간의 난이도가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쉽게 출제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일각에서는 법무부 측이 채점진들에게 ‘로스쿨생들을 예비 변호사가 아니라 법대 4학년이라 생각하고 그 기준에 맞춰 채점하라’고 은밀히 주문했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아울러 ‘외부에 이번 변시 답안 수준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고 각별히 주의를 줬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물론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번 변시에 대한 법조계의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변시 출제과정에 투입된 한 검토위원은 기자에게 여러 차례 익명을 요구하며 “검토 과정에서 나를 비롯한 다수의 검토위원들이 ‘문제의 질이 낮진 않지만 사시에 비해 너무 쉬운 게 아니냐’며 주최 측에 여러 차례 건의를 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최종 문제를 보니 아마도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며 “때문에 이번에 변시가 쉽게 나온 건 법무부 측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귀띔했다. <일요신문>도 지난해 11월 ‘변시 모의고사에서 응시자 60~70%가 과락을 맞았다’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따라서 이 검토위원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변시를 둘러싼 잡음과 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 채점진은 ‘변호사를 뽑는 변시가 무슨 법대 졸업시험이냐’며 이번 변시와 관련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채점위원은 실무진과 로스쿨 교수가 1 대 1 비율로 구성된다. 동일 답안을 두고 가채점을 했는데 실무진과 교수진이 매긴 점수 차가 크게는 40~50점까지 차이가 난 경우도 있었다”며 “실무진들이 준 점수가 짜다고 느꼈는지 로스쿨 교수들이 응시자들의 과락방지를 위해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가채점 시 점수 차가 크게 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오욱환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아무래도 실무진 입장에선 눈높이가 사법연수원생 수준에 맞춰져 있는데 3년 공부한 로스쿨생들의 답안을 보면 낮은 점수를 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로스쿨 교수 입장에서는 로스쿨생 한 명이라도 더 합격시켜야 하기 때문에 후한 점수를 충분히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변시 가채점 점수 차가 그렇게 크게 난 경우는 사시에선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에 솔직히 믿기 어렵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변시 채점 과정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고 말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법무부 박순철 법조인력과장은 “실무진이라서 (점수를) 박하게 주고, 교수진이라 후하게 준 게 아니라 단순히 개인성향의 차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로스쿨 교수들이 과락 방지를 최대한 막고자 몇몇 응시자 답안에 후한 점수를 줬다’는 의혹을 강하게 반박했다. 이어 박 과장은 “법무부는 변시를 대학졸업시험 수준으로 출제하라고 지시한 바가 전혀 없다”면서 “또한 최근 알려진 소문처럼 ‘충격’과 ‘경악’에 빠질 만큼 로스쿨생들의 실력이 저조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양쪽 주장이 대치되는 가운데 최소한 채점 결과가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이번 의혹의 진실 여부가 드러날 것이란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번 논란을 두고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기존의 사시는 선발시험이지만 변시는 자격시험”이라고 강조하면서 “시스템 상 사시를 준비한 이들보다는 로스쿨 졸업생이 법학 지식은 다소 떨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로스쿨생들이 변호사자격증을 확보한 후 1~2년 정도 실무 능력을 쌓으면 변호사로서 최소한의 능력은 확보될 것이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