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S 고객 수요만큼 잘라 파는 방식으로 피벗…자율주행차·배송로봇 넘어 디지털 트윈과 메타버스까지
#삼성 입사도 포기하고 창업 감행
1988년생인 김재승 모빌테크 대표는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재학 시절부터 개발을 통해 돈을 벌었다. 아이폰 출시 무렵 개발한 주유소 위치 조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수입이었다. 김재승 대표는 “돈을 벌어 보니 대기업에서 비슷한 서비스로 치고 들어오기 너무 쉬워보였다”며 “대학원에 가서 기술을 고도화해 나만의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재승 대표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김 대표는 “당시 드론 항법을 연구했는데 건물 사이로 드론을 움직이는 경로를 만들려면 3차원 지도가 필요했다”며 “드론의 상용화에는 시간이 걸릴 듯해 자율주행차를 위한 3차원 정밀지도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라고 전했다.
김재승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었고, 졸업과 동시에 삼성전자 입사도 내정돼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대기업의 일부가 되기보다는 그가 지닌 기술력과 창의력을 온전히 살릴 수 있는 스타트업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김 대표는 2017년 4월 고민 끝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장학금도 전부 되갚았다. 김 대표가 당시 개발한 MMS가 웬만한 대기업 제품들보다 경쟁력 있다는 평가를 들은 점이 자신감을 돋웠다.
김재승 대표는 “자율주행 분야 연구자들에게 제가 만든 MMS를 판매할 계획으로 호기롭게 창업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통상 억대 가격으로 팔리는 MMS의 가격을 4000만 원대로 책정했다. 가격경쟁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너무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은 인정받았지만 첫 판매까지 1년 반이나 걸렸다.
김재승 대표는 피벗(방향전환)을 모색했다. 김 대표는 “정밀지도를 만들려면 우리 장비를 사는 게 낫지만 일반적인 자율주행 연구자들은 일부 구간의 지도만 필요로 한다”며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지도를 직접 제작해 파는 게 수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데이터 판매로 사업 방향을 선회하면 가격이 현저히 낮아져 고객 부담도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보였다. 김 대표는 선제적으로 특정 지역의 정밀 지도를 구축해놓은 후 고객이 원하는 영역만큼 데이터를 잘라서 주는 방식을 택했다.
#규제 넘어서며 사업화 박차 가해
자율주행차나 무인로봇이 지나다니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밀한 지도가 구축돼야 한다. 김재승 대표가 개발한 MMS로는 3cm 이내의 정밀한 3차원 점군 지도를 구축할 수 있다. 문제는 보안과 관련한 규제였다. 2019년 당시 국토교통부(국토부)의 국가공간정보 보안관리규정에 따르면 3차원 좌표가 포함된 공간정보는 공개가 제한된다. 배포나 판매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김재승 대표는 “예컨대 북한이 저희 지도 데이터를 입수한 후 좌표를 설정해 미사일을 쏘면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며 “기존 규정에 따르면 90m 간격으로 좌표를 찍은 지도만 허용됐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이나 로봇 산업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조건이었다.
다행히 타이밍이 좋았다. 김재승 대표가 규제를 알게 된 때는 이미 법안이 개정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개정된 규정에 따라 특정 영역의 공간정보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보안 처리할 경우 정밀지도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개정된 시행령이 적용되려면 2022년 4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김재승 대표는 “방법을 찾던 중에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알게 됐다”며 “규제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선제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샌드박스 심의위원회 측도 김재승 대표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했고, 지난해 5월 특례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김재승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점찍은 장소는 강남이었다. 강남은 자율주행차와 배달로봇 업체들의 수요가 많고, 고층빌딩으로 인해 GPS 수신이 어려워 좌표 취득이 기술적으로 까다롭다. 강남에서 3차원 지도 제작에 성공하면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재승 대표는 “데이터 구축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라며 “정확도를 기하고 사소한 변화까지 추적해 업데이트하기 위해 매일 차를 운행 중이다”라고 전했다.
모빌테크의 주기적인 업데이트는 3차원 정밀 지도 제작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공사를 진행하는 등 도로 위 상황에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데이터에 반영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빌테크는 최근 택시 광고판 회사들과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택시 천장 위에 있는 디지털 광고판에 모빌테크의 MMS를 설치하면 곳곳에서 수월하게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김재승 대표는 “그렇게 수집한 데이터는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분석해서 변화된 부분을 자동으로 반영한다”며 “나중에 서울 전 지역까지 확장해 커버하려면 상당수의 택시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AI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모빌테크는 최근 소프트웨어팀을 신설해 ‘디지털 트윈(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으로의 사업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김재승 대표는 “저희 센서를 활용하면 현장을 똑같이 모델링해 가상공간에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3차원 정밀지도를 활용해 특정 부지에 대한 안내 및 관광기능, 메타버스 환경에서의 시뮬레이션 기능까지 갖출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승 대표는 “옛날 자동차에는 지도책이 있었고, 20년 전에는 전자지도(내비게이션)가 생겼다”며 “이제는 3D지도까지 넘어갈 수 있는 시점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앞으로는 서울 전체를 3차원 정밀지도로 구축하고 동남아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발하는 스마트시티에 진출하려고 한다”며 “도시 계획과 교통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자율주행과 배달로봇을 넣은 스마트시티를 구축하려면 3차원 정밀지도가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