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회계ㆍ회전문 인사…자살골 작렬!
대한축구협회의 도덕적인 해이가 도를 넘었다. 축구협회는 국내 체육 유관 단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한 해 100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집행하는 매머드급 기관이자 비영리 법인이지만 요즘 행태를 보면 해도 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다. 가장 투명하고 깨끗해야 할 기구가 스포츠팬들에게는 ‘가장 더럽고 추악한’ 곳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예산집행부터 인사처리, 행정 파트 등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다. 심지어 깔끔하지도 못해 항상 질타의 대상이 된다. 모든 부분들이 의뭉스럽고 불투명하다. 아예 이번 기회에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말로만 ‘세계화’를 운운하면서도 정작 행태는 ‘거꾸로 가는’ 축구협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돈을 어디에 쓰는 거야?
정작 필요할 곳에는 쓰지 않는다.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축구협회 회계에 대한 부분이다. 얼마 전 축구협회는 핵폭탄을 맞았다. 비리 혐의와 절도 미수 책임이 있는 직원에게는 퇴직금도 모자라 억대의 위로금까지 주고 명예롭게(?) 퇴직을 시킨 사태가 외부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카드 회사 출신으로 2006년부터 협회 회계파트 담당자로 근무했던 이 직원은 협회 법인카드를 전담 관리해왔고, 법인카드 사용에 따른 포인트 관리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서 누적돼온 포인트를 기프트카드로 바꿔 개인적으로 사용하다 적발됐다.
이 직원의 문제는 비단 이것만이 끝은 아니었다. 사실 협회 차원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 계기는 협회 심판국의 축구용품(운동화)을 훔치려다 다른 직원에게 걸리면서부터였다. 절도 미수 문제가 인사위원회로 넘어가고, 조사위원회의 조사와 함께 퇴직 압력을 받게 되자 오히려 이 직원은 한술 더 떠서 “내가 당신들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모두 알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몇몇 조사위원들에게 퀵서비스로 배달하는 등 위협을 했다고 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도덕적으로 갈 곳까지 간 셈이고, 그렇지 않다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해당 직원을 형사고발을 하는 등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전혀 액션이 없었다.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협회의 처리는 매우 미숙했다. 이 직원을 사퇴시키면서 ‘협회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주고받은 뒤 위로금(일명 합의금)까지 주며 조용히 무마시키려 했다. 이를 보고 참다못한 협회 노동조합(위원장 손성삼)이 사실 관계를 외부에 알리면서 문제는 커졌고 대한체육회 차원의 특정감사를 받는 사태까지 빚었다. 몇몇 고위 관계자들은 “왜 (노조가) 이렇게 공개해서 사태를 크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고 볼멘 목소리를 낸다. 이게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의 감사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협회는 이 직원을 사퇴시킨 이유로 ‘절도 미수’ 행위만 혐의로 적용했다고 밝혔다. 억대 위로금까지 쥐어주며 ‘절도 미수’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 부정한 일로 퇴사하는 직원에게 퇴직금과 함께 위로금까지 쥐어주는 곳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협회가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술자리 안줏감으로 전락하게 된 까닭이다.
이 직원에게 많은 돈을 준 이유로 김진국 전 협회 전무이사는 “젊은 직원의 앞날을 위해,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시 의문이 많다. 이미 협회는 정작 돈을 써야 할 곳에 쓰지 않았던 탓이다.
조광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전격 해임하면서 코치들과 잔여 연봉 문제로 대립각을 보이는 촌극을 빚었던 협회였다. 여전히 협회는 이들 코치들에게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박태하 수석코치와 서정원 코치가 각각 K리그 FC서울과 수원 삼성에 새 둥지를 틀자 “새 직장을 잡았기 때문에 이들 코치들에게 더 이상 잔여 연봉을 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도 모자라 협회는 브라질 국적인 가마 코치에게도 돈을 주지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차원의 분쟁 조짐도 보이고 있다. 브라질 대사관에서도 이 문제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요하네스 조 본프레레 전 감독을 경질하면서 돈을 주지 않으려고 꼼수를 쓰다 한바탕 소란을 빚은 바 있다. 한 번 겪은 국제적인 망신을 또 한 번 겪는 행태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축구인들이 많다.
박 코치와 서 코치에게 협회는 작년 12월까지 봉급을 지급했지만 올해 1월부터는 급여를 주지 않고 있다. 이들이 앞서 거론된 비리 직원처럼 축구용품을 몰래 훔치려고 했거나 공금을 횡령했다는 정황도 없다. 협회가 생각하는 ‘공적’이란 단어의 기준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뜻과는 크게 다른 모양이다. 잔여연봉 지급 문제는 법적 문제로 넘어갈 전망이다.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은 정황은 과거 사례에도 있다. 국가대표 사령탑이 유럽파 점검을 위해 해외 출장을 요청하면 협회는 여러 차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심지어 엔트리 숫자를 1~2명가량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체류비와 항공료 등이 만만치 않아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알려진다. 기가 막힌 일이다.
▲ 대한축구회관 건물 전경. 축구협회가 불투명한 행정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협회의 엉성함은 인사 처리에서도 드러난다. 협회는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김진국 전무이사를 상근 부회장에 앉히려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자 협회 내 타 고위층이 반대하고 나섰다고 한다. 협회는 비리 직원 문제로 김 전무가 사퇴하면서 동시에 김주성 국제국장을 2009년 이후 3년 넘도록 공석 중인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나름 발 빠른 인사 조치를 단행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이미 김 전무의 부회장 승진 건과 연계해 이뤄질 수도 있었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작년 11월부터 비리 직원 문제가 조금씩 불거지면서 회장단과 원로 모임인 OB회 등 협회 수뇌부에서는 김 전무의 승진 건을 반대하고 나섰고 최근 들어 김 전무를 사퇴시키는 쪽으로 중지를 모았다. 그간 부회장단의 사퇴 요청에 고사의 뜻을 전해왔던 김 전무는 노조 측의 규탄 시위가 열린 다음 날인 1월 27일 조중연 협회장과 오전 최종 면담을 갖고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매번 빈자리가 날 때마다 그때 그때 땜질 식으로 메워지는 인사들이 죄다 비슷비슷한 코드인사라는 비난의 시선이 많다. 비교적 젊은 축구인인 김주성 총장이 협회 행정을 총괄하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공석 중인 전무이사 자리를 놓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크게 개선되는 것 없이 비슷비슷한 인물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소위 ‘회전문 인사’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철밥통을 차고 앉아 기회를 엿보다가 줄만 잘 서면 명예로운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할 수 있는 고위 자리와는 달리 정작 실무자들에게는 불편한 직장이 협회다.
놀랍게도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스포츠단체 중 하나가 축구협회였다면?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그러했다. 각급 국가대표팀 지원 스태프들과 일부 내부 직원들 중 몇몇은 수 년 동안 ‘비정규직’ 꼬리표를 달고 협회 업무를 봤다. 특히 일부는 ‘인턴’ 꼬리표를 몇 년 간 달고 있었으니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노조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올해 초에야 처우가 정규직 신분으로 바뀌었다.
협회는 비리 직원에게 지급된 1억 5000만 원대 위로금의 기준을 당사자의 2년치 연봉이라고 밝혔다. 결국 연봉 추정치가 7000만 원이 넘는다고 볼 수 있다. 행동에 문제가 있었던 직원이 많은 돈을 받고도 오히려 떳떳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협회 실무 직원들이 이번 사태 결말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향후에 동일한 사태가 일어날 때 과연 협회가 어떤 기준을 둘지도 궁금해진다.
#상식도 비판도, 조언도 모두 귀를 닫았다?
최근 협회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와 8년간 후원계약을 연장했다. 총 규모는 1200억 원으로 현금 600억 원과 현물 600억 원 규모다.
일단 1000억 원대가 넘는 규모로 스폰서 계약을 연장했다는 건 인정받을 만하다. 그러나 현금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08년부터 작년까지 4년 동안 협회는 현금이 250억 원, 현물 240억 원어치를 제공받았다.
물론 계약에서 정석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현금 비중이 높아야 한다고 보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축구계에서는 현금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2007년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협회는 현금 250억 원, 현물 240억 원 등으로 현금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50 대 50으로 비슷한 규모로 이뤄지면서 결국 이번 계약에서 승리한 쪽은 용품사였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더욱이 스폰서가 경쟁 입찰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8년 계약은 여지없는 실패작이다. 당장 2014브라질월드컵 등 국제 대회에서 국가대표팀이 성적을 올릴 경우, 훨씬 좋은 조건에 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도 장기계약을 한 것에 대해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기도 조중연 협회장이 임기 만료를 1년여 앞둔 상황이란 점은 의문의 폭을 더욱 넓힌다.
사실 현물 지원 규모는 큰 의미가 없다. 스포츠 마케팅 관련 담당자들은 “현금에는 A매치 평가전 추진 등 축구 마케팅 비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입을 모았다. 실질적인 협회의 수입이라고 보기에는 2% 아쉬움이 있다. 협회 용품 스폰서와 오랜 경쟁자인 타 용품사도 4년 전 계약이 이뤄질 때 협회 측에 현금으로만 29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 현금 규모만 놓고 보면 협회가 오히려 득을 볼 수도 있었다.
더욱이 협회가 계약 과정을 오픈하지 않고 발표만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정당한 경쟁이라면 모든 걸 공개하진 않더라도 과정 정도는 외부에 알렸어야 옳다.
명쾌하지 않은 스폰서 계약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시중 금융업체와의 계약이다. 현재 협회 공식 스폰서는 하나은행이지만 협회 내부에서는 하나은행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했던 은행이 나타났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약 9억 원이 차이가 났다고 한다. 역시 상식을 뛰어 넘는 결과였다.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또 다른 대안은 없었던 것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명쾌한 해명이 없다면 항상 뒷말은 무성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협회는 모르는 것 같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