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단 총동원하자”… 포항제철소 정상 가동 이끈 이색 아이디어
- 위기 속 더욱 빛 발하는 직원들 기지…복구 작업 효율 더해
[일요신문] "낮에는 배수펌프를 가동하고, 밤에는 사무실 불을 밝히는 데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했다."
수해로 49년 만에 공장 조업이 전면 중단됐던 포항제철소 복구에 전기차 배터리도 한몫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강 공정은 제품이 쉽게 깨지거나 부스러지지 않도록 쇳물 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응고시켜 반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이다. 하나의 철강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제선·제강·압연 공정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제강공정이 멈추게 되면 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해도, 이송할 곳이 없어 제품 생산이 마비될 정도로 철강 생산 공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로 가동 일정에 맞춰 제강 공정도 함께 가동해 쇳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 고로에 비해 제강공장 침수 상황이 심각해 복구에 수일이 걸리는 상황이었고, 2제강공장 직원들은 며칠 동안 쪽잠을 자며 밤낮없이 복구 작업에 몰두했지만, 공장 전기가 끊겨 조명조차 없었고, 공장 전체에 물이 1m 높이까지 차오르는 등 배수 작업에 엄두조차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직원들이 떠올린 묘수는 바로 '전기차 배터리' 였던 것.
정전으로 배수용 수중 펌프를 가동할 수 없게 되자 전기차 배터리를 전원으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이에 2제강공장 김태우 부공장장은 제철소가 정전 되자 본인 소유 전기차 배터리를 연결해 임시방편으로 공장에 전기를 공급했고, 이로써 어두운 작업환경에 불을 밝힐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를 소유한 직원들의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해 수중 펌프를 가동하고, 소형 펌프에 전원을 연결해 전기가 끊긴 상황 속에서도 배수 작업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김태우 부공장장은 "낮에는 배수펌프를 가동하고 밤에는 사무실 불을 밝히는 데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인근 충전소에서 차를 다시 충전해와 시급한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
고추 건조기를 활용해 기판 건조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협력사 직원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이번 수해로 전기, 전자 제어장치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전기, 전자 설비의 핵심 부품인 제어 기판은 물에 닿은 채로 방치되면 부식이 돼 복구가 영구적으로 불가능해져 신속히 세척한 후 건조해야 한다.
직원들은 침수된 장치를 하나하나 분해해 물로 청소한 후 헤어드라이어와 온풍기를 활용해 건조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수많은 제어 장치를 수작업으로 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작업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구석구석 남은 물기를 싹 제거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에어컨 정비 전문 협력사인 '아이랙스'의 김태복 과장이 고추 건조기를 활용해 에어컨 안의 제어용 기판을 건조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고추 건조기를 활용하면 직원들이 직접 건조 작업을 하지 않아도 한 번에 대량으로 제어용 기판 건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태복 과장은 고향 집에서 사용하던 농기계인 고추 건조기를 직접 싣고와 전기 수리공장 한쪽에 설치하고, 바로 대량으로 제어용 기판 건조를 시작했다. 직원들은 그동안 기판의 세정과 건조를 한 개씩 수작업으로 하던 비효율적인 방식을 벗어나, 낮에는 기판의 세정 작업에 집중한 후 퇴근 무렵 고추 건조기에 기판을 넣었다.
다음날 아침 물기가 바싹 마른 건조된 기판을 꺼낸 뒤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어, 설비 건조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
전기, 전자 제어장치를 담당하는 EIC 기술부의 한 직원은 "건조가 시급한 기판들을 말리려 개인 소유의 농기계를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빠르게 실행에 옮긴 아이랙스 김태복 과장께 감사하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활약을 이어가는 헌신적인 협력사 직원들 덕분에 제철소 완전 복구가 멀지 만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
한편 직원들의 헌신과 기지에 힘입어 포항제철소 복구는 순항 중이다. 포항제철소는 1냉연, 2·3 전기강판 공장을 재가동하고 지난 7일엔 1열연공장을 복구해 재가동에 들어가 제선, 제강, 압연의 순서로 이어지는 제철소 제품 생산 프로세스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이달중 3후판 및 1선재공정 복구를 완료할 계획이며, 다른 압연공정들도 제철소 복구 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복구할 예정이다.
최창현 대구/경북 기자 cch@ilyo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