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신과 함께’를 제작하던 2017년 한 끼당 약정된 식대가 7000원이었다. 2020년 ‘자백’을 제작하던 시기엔 식대가 8000원으로 인상됐다. 2022년 영화 현장에서 제공되는 식대 평균가격은 8000원 혹은 9000원으로 인상됐다고 한다.
영화 현장에서의 유대감은 소위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개런티를 많이 받는 톱스타도, 이제 처음 영화를 시작하는 막내 스태프도 다 같이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한다. 촬영 기간만큼은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연대의식을 가진다.
영화는 제작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손익분기점이 올라간다. 제작자는 적절한 식대를 책정한다. 투자자들과 상의해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제공할 식사비를 결정한다. 한 끼에 8000원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매 끼니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닭고기나 돼지고기, 가끔은 소고기도 반찬으로 제공할 수도 있는 가격이다. 반찬과 함께 과일도 제공할 수 있는 금액이라 생각해 왔다. 스태프와 배우들도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는 일이 적어도 내 경험 상으론 없었다.
물론 5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중식을 해결하는 분들도 많고 여전히 저렴한 음식으로 절약하며 사는 분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노동 강도가 높은 영화 현장은 식사를 저렴하게만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장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날마다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올해 들어 사무실 근처 식대가 무서운 속도로 인상되고 있다. 냉면 맛집의 냉면 값이 어느새 1만 5000원이 됐다. 소고기국밥, 만둣국도 시나브로 1만 5000원 가격표를 마주해야 한다. 김치와 깍두기 맛이 일품인 데다, 국물도 시원한 단골 설렁탕집 설렁탕 가격은 어느새 1만 3000원이 돼버렸다.
영화사는 대부분 직원들에게 중식을 제공하고 있기에 다행이다. 만약 투자사가 존재하는 영화 현장이었다면, 제작비를 아껴야 하는 프로듀서 입장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냉면과 국밥, 설렁탕조차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회사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동료들은 점심에만 문을 여는 대형 저가형 뷔페를 찾아내서 점심을 해결한다. 어떤 동료들은 내가 ‘설렁탕 먹으러 갑시다’라고 하면 “대표님 그 집 너무 가격이 세요”라면서 좀 더 저렴한 식당으로 가길 유도한다.
그런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30여 년간 영화 현장에서의 유대감, 연대감이 몸에 익어있는 나는 “야 우리가 돈이 없지 마음이 없냐”고 말한다. 적어도 점심식사만큼은 동료들이 먹고 싶은 것을 먹게 하려 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도 장바구니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아내도 “10만 원 들고 나가면 정말 아무것도 살게 없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다. 배춧값이 너무 올라 식당에서 김치를 더 달라는 소리가 입안으로 들어간다. 설렁탕 먹으면서 깍두기를 잘라서 아껴 먹는 게 일상이 됐다.
인플레이션을 잡는다고 정책당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니 대출받은 사람들의 가처분소득은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 금리를 올려도 국민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너무나 높은 수준이다. 금리도 오르고 물가도 오른다.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닫고 있는 듯해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실무를 담당하는 프로듀서가 “대표님 이제 식대 8000원으로 책정해서는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반찬 두어 개만 제공해도 빠듯해 오히려 식사를 제공하고 욕을 먹을 것 같습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후배 프로듀서를 이렇게 다독였다.
“그래 어렵지만 투자자들과 잘 상의해서 적정 식대를 합의하도록 할게.”
날마다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들은 너무나 암울하다. 금리인상, 부동산폭락,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수출부진, 외환위기, 주식시장침체 등 도무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운영을 책임지는 정부당국자나 정치인들은 분명 우리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노력할 거라 믿는다. 지금 뭐가 중요한지 분명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영화 ‘웰컴투 동막골’ 대사 한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북한군 장교가 동막골 촌장에게 “촌장님의 위대한 영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라고 묻자 촌장이 한 대답이다.
“뭘 많이 멕여야 돼!”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