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경매권 ‘공룡들’이 야금야금
▲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청과물 시장에서 경매가 끝난 과일들의 하역 처리가 바쁘게 진행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기자는 지난 2월 8일 가락시장 중도매인연합회를 찾았다. 사무실에서 만난 연합회 관계자들은 지난해 12월 재지정 된 6개 도매시장법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가락시장의 도매시장법인 문제는 사실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제기되어 온 해묵은 문제 중 하나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선 가락시장 내부의 유통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 유통과정을 지켜보면 꽤나 복잡하다. 가락시장에는 산지 출하자가 직접 농산물을 상장하거나 산지 유통인을 한 차례 더 거쳐 상장한다. 이렇게 상장된 농산물의 품목 중 90%는 도매시장법인의 수탁과 경매과정을 무조건 거쳐야 한다. 이 도매시장법인의 수탁 및 경매과정에는 ‘상품 하역 및 진열’ ‘경매’ ‘중도매인 점포이송’ 등 복잡한 과정이 끼어있다. 그렇게 거친 농산물을 중도매인이 받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상장품목의 수탁 및 경매권을 지난 26년간 6개의 도매시장법인이 완전히 독점해왔다는 점이다. 물론 5년 단위로 ‘서울시농수산물공사’가 검토하고 서울시가 최종 승인하는 형태로 지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존의 6개 법인이 재지정되면서 독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가락시장에서 수탁 및 경매권을 쥐고 있는 도매시장법인은 ‘농협공판장’ ‘중앙청과’ ‘서울청과’ ‘한국청과’ ‘동부팜청과’ ‘대아청과’ 등 총 6개사다. 이 가운데 ‘농협 공판장’을 제외한 5개사는 순수 사기업체다.
이들 6개사는 사실상 지난 26년간 별 다른 경쟁 없이 꾸준히 수익을 올리고 있다. 가락시장의 연간 청과품목 거래량은 3조 원대에 육박한다. 예전만큼의 명성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전국 농산물유통량의 45%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이들 6개사는 연간 거래량(3조 원)의 4%에 해당하는 막대한 경매수수료를 챙겨간다. 법적으로 가락시장 내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도매시장법인을 무조건 거쳐야 한다. 소위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6개사가 파이를 나눠먹고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2년에 이들 6개사에 대해 ‘부당공동행위’ ‘경쟁제한성’ 등의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그 이후 여러 가지 대체방안과 법 개정 등이 논의됐지만 그때마다 유야무야됐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끌어온 고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 이들 6개 법인의 영업이익률은 11.4%~24.5%로 매우 높다. 일본의 도매시장법인 영업이익률이 1%가 채 안 되는 것과 비교하면 막대한 수치다. 또한 모든 수수료 수익은 현금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현금유동성도 높다. 이만한 장사가 또 없는 셈이다.
이러한 매력적인 사업에 대기업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는 형국이다. 동부팜청과의 경우 지난 2010년 동부그룹의 계열사인 동부한농에 매각된 상태다. 종자 및 비료사업을 주로 하는 동부한농이 전혀 다른 분야인 도매시장법인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태평양그룹의 계열사인 태평양개발은 중앙청과의 지분 40%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철강선재 가공분야 국내 1위에 빛나는 고려제강그룹은 개장 초부터 서울청과를 설립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합회 관계자는 “이들 대기업들 모두 농산물 유통과는 전혀 무관한 기업들이다. 도매시장법인을 인수하기만 하면 현금유동성이 보장되는 손해 없는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입장에서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도매인들은 수탁 및 경매권을 독식하고 있는 이들 도매시장법인의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기자와 만난 한 연합회 관계자는 “위에서는 농산물의 적정한 가격형성과 농민들의 안정적 거래를 위해 도매시장법인의 경매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불필요한 유통과정이 늘어 되레 상품의 질이 떨어져 상품성이 하락할 수도 있고, 굳이 경매과정을 안 거쳐도 되는 경우도 많다. 또 사전에 값이 떼겨져 있는 정가수입 매매의 경우 서류상으로만 경매과정을 거치는데도 수수료를 때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비자 입장에서도 그렇다. 경매과정에서 상품하역과 진열, 경매, 점포이송 등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수탁 및 경매과정을 줄여 유통과정을 압축시켜야 물가를 내릴 수 있다. 일부 기업들만 배불리는 도매시장법인의 독점 수탁 및 경매제도 원칙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지난 26년간 유지해온 도매시장법인 체제에 변화를 줘야 한다. 일부 법인들은 정리가 필요하다. 시장 내에서 꼭 필요한 경매는 공익적 성격이 강한 농협공판장이 전담해 구조를 획일화해야 한다. 또 경매제의 대안으로 ‘시장도매인제’를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 시장도매인제도란 쉽게 말해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들의 역할을 합쳐놓은 것이다. 농산물을 직접 수탁받고 소매상에 넘겨 유통과정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최소한 20% 이상 유통비용 절감효과가 있을 것이다. 시장도매인제가 지난해 추진된 바 있지만 결국 자본력을 앞세운 도매시장법인의 기득권 때문에 백지화됐다. 꼭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가락시장을 포함한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에서 시장도매인제도를 도입한 곳은 강서도매시장 단 한 곳뿐이다. 강서도매시장은 도매시장법인 3개사의 경매제시장과 시장도매인에 의해 운영되는 시장이 7:3의 비율로 운영되고 있다. 산지 출하자는 경매제 혹은 직접 도매인에게 수탁하는 시장도매인제 중 하나를 선택해 상품을 상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지난 26년간 기득권을 유지해온 도매시장법인의 재조정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지난해 12월 이미 5년 단위의 재지정이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도매시장법인 문제는 결국 장기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