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당 3락(5억 쓰면 당선 3억 쓰면 낙선)’ 그래도 남는 장사
▲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경북지역의 한 조합장과 수행원들은 선관위의 현장 조사에서 금권선거 증거가 포착되자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전남지역의 한 조합장은 불법선거 조사 도중 자살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올 초 조합장 선출을 앞둔 전국 곳곳의 조합에서 각종 선거비리가 적발되고 있다.
왜 매년 농협 조합장 선거비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그 내막을 파헤쳐봤다.
지난 2월 9일 오후 5시 24분경. 전남 장흥의 한 저수지에서 60대 남성의 싸늘한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시신은 승용차 안에서 발견됐으며 사인은 자살이었다. 신분 확인 결과 시신은 전남 장흥농협 이 아무개 조합장(62)으로 밝혀졌다. 그의 곁에 유서 한 장이 발견됐지만 물에 젖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이 조합장은 왜 자살을 선택했던 것일까. 조합장 임기를 불과 하루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조합장 선거 재선에 도전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선거운동 도중 조합원 13명에게 5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살포한 게 문제가 됐다. 금권선거 의혹의 중심에 선 것이다. 경찰은 곧바로 이 조합장을 불러 조사에 나섰다. 결국 그는 불법선거가 발각되자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 조합장 불법선거가 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 셈이다.
경북 경주 안강에서는 현 조합장이 금권선거에 나서다 적발돼 선관위 직원들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월 7일 경주경찰서는 선거를 앞두고 금품살포와 호별 방문을 한 혐의로 현직인 최 아무개 조합장(59)과 수행원 최 아무개 씨(52)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 조합장은 지난 2월 4일 한 조합원 집에 찾아가 금품을 살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몇몇 조합원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당시 잠복근무 중이던 도 선관위 직원들은 최 조합장 일당이 현금 220만 원과 조합원 명부를 감추려던 것을 적발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심한 몸싸움까지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취재 결과 이번에 구속된 최 조합장은 현 농협중앙회 최원병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역시 지난 1986년부터 2008년까지 22년간 안강농협 조합장을 지냈다. 최 조합장은 결국 사촌형으로부터 물려받은 조합장직을 불법적으로 사수하려다 된서리를 맞은 셈이 됐다.
이외에도 올 초 조합장 선거를 앞둔 전국 각 지역 농협에서는 각종 불법선거 의혹으로 시름을 앓고 있다. 지난 1월 31일에는 선거를 앞둔 전남 여천조합의 한 조합장 후보가 측근을 이용해 금품을 살포하다 적발되는가 하면 올 5월 조합장 선거를 치르는 충남 논산에서는 벌써부터 후보들 간의 불법선거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이 그야말로 조합장 불법선거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농협 조합장 불법선거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매년 농협중앙회와 선관위는 고질적인 조합장 불법선거의 뿌리를 뽑고자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문제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특히 농협중앙회는 매년 ‘불법선거 관련자의 피선거권 박탈’ ‘부정금액의 10~50배 해당하는 과태료 부과’ ‘문제 조합의 농협상표사용권 박탈’ 등 강력한 제재안을 내놓고 있지만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조합장 불법선거의 단면을 살펴보면 매우 조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합장 후보 스스로 나서기보다는 선거운동 총책을 필두로 주변 참모진과 자본책을 조직적으로 가동해 금권선거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을 이용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계모임을 조직해 식사대접과 금품을 살포하는가 하면 선거 당일에는 조합원들을 위해 셔틀차량을 운영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인정주의가 팽배한 촌락의 특성상 조합원들은 금권선거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매년 조합장 선거비리는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지극히 단순하고 획일적인 선거운동 문화가 하나의 이유로 꼽히고 있지만 제일 먼저 지역 조합장의 막강한 권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조합장 임기는 4년이다. 조합장 연봉은 지역마다 각각 다르게 책정돼 있다. 연 평균 8000만 원 정도를 받으며 많은 곳은 1억 6000만 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 여기에 성과급도 지급된다. 기본적으로 4년간 억대 연봉이 보장된 셈이다. 물론 조합장의 개인 관용차와 별도의 법인카드는 기본으로 제공된다.
또한 조합장은 토착경제 특성상 지역경제를 주무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특히 지역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대부업무에 있어서 큰 힘을 발휘한다. 물론 기준금리에 관한 별도의 기준이 있으나 금리 책정에 조합장이 개입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고 한다.
인사권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은 힘을 발휘한다. 조합장 밑에는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이사와 감사가 있다. 조합원들을 종용해 이들의 선출을 유도할 수 있고, 그것을 대가로 조합직원 채용에 혜택을 주기도 한다. 실제 일부 지역농협 직원들 면면을 살펴보면 조합장 및 이사와 감사의 친인척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지역농협을 상대로 하는 한 농업유통 관련 종사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역에서 농협 조합장의 힘은 매우 막강하다. 각 지역의 권력자인 지역구 의원들과 직접 만나 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도시의 은행 지점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귀뜸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번 자리에 오르면 좀처럼 내려오지 않은 조합장들도 수두룩하다. 대구의 한 조합장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을 받고도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농협중앙회 최 회장의 경우도 앞서 밝혔듯 한곳에서 22년 장기 집권한 조합장 출신이다.
이렇듯 고액연봉과 지역경제를 주무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보장되는 조합장 자리이기에 매년 불법선거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위험부담을 안고 금품을 살포해서라도 한 번쯤 탐낼 만한 자리인 것이다.
조합 관계자들은 매년 반복되고 있는 조합장 불법선거의 고질적인 악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재안과 더불어 투표권자인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근본적인 공명선거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포상제 등 다양한 당근책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