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떡고물, 엉뚱한 공룡이 ‘낼름’
![]() | ||
▲ 삼성 계열인 아티제 베이커리(왼쪽)와 롯데 계열인 포숑.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제는 ‘스타벅스’만큼 유명해진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재벌가 2, 3세들이 운영해온 베이커리다. 또한 이들은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침투해 서민들의 밥그릇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비난에 최근 세 브랜드 모두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그러나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고, 이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웃음을 지을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해 6월 무소속 정태근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대 재벌 그룹의 계열사 수는 2006년 1월 500개에서 2011년 1087개로 늘어났고, 자산총액도 무려 63.7%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종에 있어서도 대형마트, 소모성자재(MRO) 유통은 물론 피자체인점, 빵집, 커피전문점, 떡볶이·꼬치구이 체인점, 와인 수입·유통, 골프교실운영 등 중소기업 분야는 물론 영세 자영업자들의 영역까지 뛰어들어 무차별적으로 시장을 빼앗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몇몇 재벌가 2, 3세들이 일부 사업을 철수한다고 해서 당장 영세 자영업자들이 큰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한제과협회의 한 지회장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베이커리업계에서 이미 동네상권은 무너진 지 오래”라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시장에서 1000원에 몇 개나 살 수 있는 저가 빵 사이에 놓인 독립제과점은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았고, 이미 상당수 점포들이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전환하거나 문을 닫았다. 이제 와서 재벌 브랜드가 철수해도 자영업자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영향도 없는 일”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재벌빵집’ 논란에 미소 짓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일각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이 빠진 사이 비슷한 형태의 해외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실 골목상권에 이보다 더한 위협은 전국에 수천 개가 넘는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대기업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가맹사업 관련 정보공개서에 가맹점의 영업권을 보호하지 않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독립제과점은 물론 자사 가맹점 인근에도 버젓이 점포를 개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상당수 독립제과점 운영자들이 이들의 공격적인 진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폐점에 이르거나 소규모 카페로 업종을 전환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최근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 또는 카페’라는 표현의 원인 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생존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카페 업종에서는 대기업의 공격적인 진출은 물론, 중소형 업체까지 경쟁이 더욱 치열하기 때문이다.
최근 창업시장과 네티즌을 들썩이게 만든 사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1983년부터 30년간 서울 홍대 앞을 지켜온 리치몬드과자점의 폐점 소식이다. 리치몬드과자점의 쓸쓸한 퇴장 뒤에는 롯데그룹이 버티고 있었다. 1월 31일부로 문을 닫은 자리에는 생활용품 다이소와 롯데그룹 계열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가 입점할 예정이라고 한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각 매장마다 커피까지 취급하면서 논란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이렇듯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면서 프랜차이즈 가맹점 운영자는 자영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어렵사리 속내를 털어놓은 한 프랜차이즈 제과점주는 “대기업들이 빵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하는데, 철수하는 빵집이 대부분 백화점, 호텔, 유동인구 많은 곳에 있어 동네 상권 속 점포인 우리와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면서 “대기업 브랜드보다는 오히려 우리 같은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더 신경 쓰인다. 주변에 이미 많은 제과 체인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에 또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매장 리뉴얼공사와 메뉴 변경과 같은 본사의 요구사항, 동네빵집 다 죽인다는 소비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 등이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상가뉴스레이다 선종필 대표는 “대형 브랜드 점포가 핵심 상권에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규모를 줄여 광역상권, 동네상권으로 침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대기업들의 사업 철회 선언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서 “앞으로 프랜차이즈 브랜드에도 점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미래는 밝지 않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대기업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그에 못지않은 자금과 경쟁력을 갖춘 또 다른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할 것이므로 결국 자영업자들은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