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선거비 보전 대상 아냐, 증빙 의무 없다”…전문가 “선관위 검증 사각지대, 법 개정해야”
전문가들은 정치자금 지출에 따른 증빙자료 제출 의무를 강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치자금을 감시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계좌이체 내역 외의 증빙자료는 제출 의무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이 이재명 대표가 선관위에 제출한 정치자금 회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 대표는 약 1년간 정치자금 2억 6918만 원을 이미지컨설팅 등 명목으로 S 업체에 지급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8660만 원, 대선에서 1억 3338만 원, 올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2420만 원,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 2500만 원이다.
이와 별도로 이 대표는 대선 때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프리미엄 미용실 M 업체에도 이미지컨설팅 비용으로 519만 원을 지출했다. 이처럼 이 대표가 이미지컨설팅 등 명목으로 S 업체와 M 업체에 지급한 액수는 모두 2억 7437만 원이다. 이 가운데 이 대표와 S 업체 간 거래 내역이 구체적이지 않다.
앞서 일요신문은 S 업체 대표인 스타일리스트 A 씨가 메이크업아티스트 B 씨, 헤어디자이너 C 씨와 함께 스타일링 전담팀처럼 네 번의 선거에서 이 대표 일정에 동행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단독] 이재명, 선거 때마다 스타일링에 정치자금 수천만 원 지출). 당시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통상적인 수준이라면 정치자금으로 (스타일링 비용) 지출이 가능하다"며 "(통상적인 수준은) 해당 금액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는 2014년 배포한 '정치자금 회계실무' 문서에서 "메이크업 등 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하기 위해서는 정치활동과의 인과관계, 명확한 시간적 선후관계가 필요하다"며 "정치활동을 위한 지출이 가능한 경우라도 지나치게 고액이거나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지출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대표 측이 선관위에 제출한 자료로는 해당 금액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일요신문은 이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 선관위에 방문해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이 대표의 스타일링 비용 증빙자료를 열람했다. S 업체 사업자등록증과 통장사본, 2420만 원을 한 번에 계좌이체한 내역서 외에 증빙자료는 S 업체가 썼다는 견적서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견적서'라는 이름이 무색한 문서였다. 견적서 내용은 '이미지컨설팅 및 비주얼디렉팅 2200만 원, 부가가치세 220만 원' 단 한 줄이었다.
이 대표 측이 대선 이후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증빙자료엔 S 업체와 맺은 계약서가 추가됐다. 하지만 세부 지출내역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 범위는 "헤어 및 메이크업, 스타일링 등 전반적인 관리, 행사용 의류·소품 구매, 지방출장 시 동행"이었다. 비용에 관해선 "월 계약 시 3300만 원(부가가치세 포함)"이라고 명시됐다. 하지만 3300만 원을 어떻게 산정했는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M 업체에도 이미지컨설팅 명목으로 519만 원을 지출했다. S 업체보다 상대적으로 소액인 M 업체 지출 증빙자료는 오히려 더 세부적이었다. M 업체 견적서엔 지출 일자와 일자별 지출 내용(헤어 및 메이크업, 헤어손질, 출장 등) 및 가격이 적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일링 비용 증빙자료와도 대비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후보자 의상 대여 및 스타일링' 비용으로 D 업체에 1382만 원을 지출했다. 이 대표가 대선 당시 지출한 스타일링 비용 1억 3338만 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도 증빙자료는 윤 대통령 측이 훨씬 세부적이었다. 윤 대통령 측 회계보고서에 첨부된 스타일링 비용 견적서엔 스타일리스트 2인의 인건비라는 설명과 함께 어느 지역으로 출장을 갔는지 내역도 적혀 있다. 의상대여 비용 견적서에선 캐주얼코트 2벌, 재킷 2벌, 캐주얼셔츠 5벌, 니트 7벌, 바지 2벌, 머플러 2벌 등 어떤 의상을 대여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확인이 가능했다.
이 대표가 올해 민주당 대표 경선 이후 선관위에 제출한 회계보고서에서도 S 업체와 관련해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됐다. 이 대표 측은 S 업체에 8월 16일 비주얼디렉팅비로 16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8월 29일엔 S 업체에 후보자 차량렌트비로 900만 원을 지급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차량렌트비가 아니라 스타일링 비용"이라며 "회계장부에 오기가 있었는지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일요신문 취재가 시작되자 인천 계양구 선관위는 정치자금 수입·지출내역 실사 기간이었던 지난 9월 S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새로 받았다. 견적서에 따르면 의상, 헤어, 메이크업 하루 인건비가 1인당 25만 원씩 총 75만 원이었다. 스타일링 기간은 후보자 등록일인 5월 12일부터 25일간으로 해당 비용은 총 1875만 원이었다. 이외의 비용은 출장비용이 35만 원씩 네 차례, 차량유지비가 8만 원씩 열세 차례, 메이크업·스타일링 소모품이 11만 원이었다.
앞서 이 대표 측은 고액의 스타일링 비용에 대해 "출장 지역이 전국 단위였다"며 지방 출장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보궐선거에서 지출한 2200만 원 중 85%(1875만 원)는 출장과 무관한 비용이었다. "스타일링 인건비를 매일 75만 원을 쓴 것이 통상적인 수준이냐"는 질의에 계양구 선관위 관계자는 "무형의 기술에 대한 부분이라 통상적인 거래가격을 산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통상적인 거래가격은 (선관위가 비용을) 보전을 해줄 때 해당한다"며 "스타일링 비용은 선거비용 보전 대상이 아니어서 통상적인 거래가격을 적용할 여지가 없다. 정치자금법에 금액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 기준대로라면 더 많은 비용을 스타일링에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선관위 검증에 사각지대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재명 대표의 스타일링 비용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 눈높이에선 이해할 수 없다"며 "법을 고쳐서 이젠 지출 내역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비용이면 내역서를 왜 못 내느냐"고 반문했다.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는 "그것(스타일링 비용)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경우에도 몇억 원짜리 지출 증빙자료를 보면 입금 내역만 있고 견적서 같은 게 없다. 고질적인 문제"라며 "국민들은 증빙자료에 견적서, 계약서 등이 다 있어서 누가 보든 검증이 가능한 수준을 기대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관위는 더 구체적인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검증을) 안 하려고 한다. 권한이 없다면 선관위는 법 개정을 건의해서라도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