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8일 방송되는 KBS '시사 직격' 139회는 '3000달러의 삶, 해외입양 잔혹사' 편으로 꾸며진다.
지난달 13일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된 한인 입양인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모여들었다. 덴마크를 주축으로 미국, 벨기에 등 여러 국가에서 모인 이들은 자신의 해외입양 과정에서 강압, 뇌물, 문서 위조 등의 불법 입양 양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인권침해와 국가개입 여부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했다.
평생을 타국민의 신분으로 살아온 이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고국 땅으로 돌아와 이토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일까. 지난 60년간 약 25만 명의 아동을 전 세계로 입양시켜온 한국 해외입양의 잔혹사를 파헤쳐본다.
1984년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 씨. 그녀는 올해 초 입양서류를 확인하던 중 자신이 호적상 '고아'로 기재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생활고로 보육원에 맡겨져 프랑스로 입양 보내졌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그녀. 친부모의 이름과 한국에서의 삶을 모두 기억하기 충분한 나이였다. 그러나 유리 씨가 받은 입양서류 속 친부모의 이름은 모두 '무명'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1974년에 덴마크로 입양된 루이스 광 씨는 2017년부터 한국을 방문하며 친어머니를 찾아다니고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고아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는 루이스 씨. 자신을 꼭 닮은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스스로 뿌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어느 날 입양기관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편지에는 평생 없는 줄로만 알았던 친부모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명백히 기억하고 있는 또 평생 없는 줄로만 알았던 친부모의 존재를 덮어버린 입양서류.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1950년대 전쟁고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해외입양은 1970년대까지 미혼모나 아동복지시설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여겨졌다. 특히 해외입양률이 정점을 찍은 1980년대에는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었고 이는 일종의 민간외교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한국 아동 한 명의 해외입양 수수료는 약 3000 달러. 한국 돈으로 200만 원이 넘는 금액은 직장인 한 명의 연봉과도 맞먹는 수준이었다.
한국 아동은 온순하고, 어리고, 머리가 좋다는 이유로 입양을 원하는 외국 양부모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특히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전까지 시행되었던 '대리입양제도'는 한국의 해외입양을 선호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양부모는 서류와 사진만으로 아이를 골라 한 번도 한국에 방문하지 않고 입양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고 아이는 양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비행기에 태워 먼 타국으로 보내졌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우편배송아기'라 불리는 이 대리입양 시스템이 한국의 해외입양률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양부모의 입양적격성 심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입양아동을 폭력, 학대 등의 위험에 노출 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낯선 땅에서 마을의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새로운 삶에 적응이 쉽지 않았을 유리 씨. 그녀는 17살에 다시 프랑스의 청소년 보호시설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을 양부모와 집을 그녀 스스로 떠났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프랑스 한인 입양인 김유리 씨는 "저는 이건 아동 인신매매라고 봅니다. 그 사람이 입양 수수료를 낸 목적은 아이를 물건처럼 사서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푸는 아이가 그런 물건이 되는 것을 바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입양될 당시 그녀의 양부는 '10살짜리 여자아이'를 원한다는 다소 구체적인 조건을 입양기관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녀가 매일 밤 양부의 학대와 성폭행으로 고통받을 동안 양모와 주변인은 방관했고 그녀의 입양승낙서에 법정대리인으로서 서명한 입양기관과 정부 또한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유리 씨가 입양 절차에서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단지 정체성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싸움인 것이다.
1970년대 덴마크로 입양된 니아 씨는 아들의 건강 문제로 걱정이 많다. 폐의 기능이 약하고 천식이 있는 아들이 어려서부터 몸이 불편했던 자신의 유전적 결함을 물려받은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한다. 자신의 생물학적 배경을 확인하고 싶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어 답답하기만 한 심정이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과 함께 입양인의 개인정보공개 청구가 가능해졌으나 입양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고통을 겪고 있다. 절차상의 편리함을 우선으로 작성된 서류들을 통해 출신 배경이나 친생부모와 관련된 정보를 얻어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친생부모의 개인정보 또한 보호받아야 한다는 법적 권리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전 세계로 보내진 입양인들은 이제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뿌리를 찾아 돌아오고 있다. 이제는 이들의 물음에 책임지고 응답해야 할 때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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