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지우개’ 가족력을 주의해
▲ 젊은층 치매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20~40대 환자가 5년 전보다 67.3%나 증가했다. 사진은 수애가 치매환자로 분한 드라마 <천일의 약속>. 사진제공=SBS |
이제 치매는 노인층만의 질환이 아니다. 50대 이하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이하 치매 환자는 7393명으로 2006년보다 93%나 늘었다. 20~40대 치매환자는 지난해 1305명으로, 5년 사이에 67.3%가 늘었다.
#조기치매 주범은 무엇?
‘조기발병 치매’는 65세 미만에서 생기는 치매로 ‘초로기 치매’라고도 한다. ‘노인성 치매’ 또는 ‘후기발병 치매’는 65세 이후에 발병하는 것이고, 조기 치매는 노인성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더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또한 노인성 치매에 비해서 늦게 치매로 진단되고, 빨리 찾아오는 만큼 경제적인 부담이 늘어난다.
대한치매학회에서 조기발병 치매를 조사(2006년)했더니, 전국 종합병원 14개 센터에 등록된 알츠하이머성 치매환자 중 65세 미만 치매 환자의 비율이 13.2%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가족력이 있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20대에 찾아오는 경우도 보고됐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는 수애(서연 역)가 30대에 알츠하이머성 치매환자로 나오기도 했다.
치매환자의 절반 정도는 이 알츠하이머로, 보통 ‘치매’하면 알츠하이머를 말한다. 늙어서 생기는 치매는 대부분 알츠하이머이고, 조기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전측두엽 퇴행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의 뒷부분 세포가, 전측두엽 퇴행 치매는 뇌의 앞과 옆 세포가 먼저 파괴된다.
전문가들은 조기 치매환자가 느는 이유로 혈관질환, 스트레스, 우울증, 지나친 흡연과 음주, 유전 등의 요인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병, 심장병 등이 있으면 뇌의 혈관에 영양과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뇌세포가 서서히 파괴된다.
지나친 스트레스도 뇌세포를 감소시켜 치매 위험을 높인다. 흡연은 동맥경화증 같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고, 유해산소와 염증반응을 유발해 신경세포를 손상시킨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안 피우는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병 발생이 1.3배 증가하고 다른 종류의 치매까지 포함하면 1.8배나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다.
20~30대에 나타나는 치매는 유전적인 요인이 강하다. 때문에 가족 중에 치매환자가 있다면 유전자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1촌 이내 알츠하이머병이 있는 경우에는 1촌 이내 알츠하이머병이 없는 경우에 비해 87세까지 5배 이상 발생률이 높다.
▲ 치매진단검사 PET-CT. |
치매의 원인 중 가장 많은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약물치료로 증상의 진행을 늦출 수 있고, 혈관성 치매는 조기에 진단해 치료하면 더 이상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또한 불면증이나 우울증, 의심, 망상, 환각, 초조, 배회, 공격적인 행동 등 치매 환자에게 흔한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약물치료를 하기도 한다.
유제춘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는 “이런 이상행동이 심할 때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약물치료를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모든 치매가 갈수록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수십 가지가 넘는 치매의 원인에 따라서 고쳐지는 치매도 10~15%가량을 차지한다. 바로 뇌종양이나 수두증, 경막하출혈, 갑상선 질환, 약물에 의한 치매, 매독에 의한 치매, 비타민 부족증, 우울증, 경련성 질환으로 찾아오는 치매 등이다.
#건망증일까 치매일까
무엇보다 치매는 건망증과 달리 진행성 장애이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력이 나빠진다. 기억력이 계속해서 나빠진다면 치매 검사를 서둘러서 받아봐야 한다.
치매 의심 증상은 △사람 이름, 전화번호, 약속 등을 자주 까먹고 물건 둔 곳을 모른다. △날짜나 계절 감각이 둔해진다. △같은 말이나 질문을 반복한다. △물건 이름이나 하고 싶은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길을 잃거나 헤맨 적이 있다. △계산 능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진다. △평소와 성격이 달라진다.
갑작스런 몸무게 변화도 살펴야 한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가 많이 떨어지면 알츠하이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알츠하이머 발병이 기억과 관련된 뇌부위뿐 아니라 음식물 섭취, 신진대사와 관련된 뇌부위 손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주 맡았던 냄새조차 모르는 후각 기능 이상 역시 치매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 후각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일반인보다 인지기능장애 위험이 50%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중 지갑이나 열쇠, 전화번호를 잊거나 익숙한 길을 찾지 못하는 일은 나이 들면서 흔히 겪는다. 그래도 자주 반복된다면 ‘경도인지장애’를 의심해 보는 게 좋다. 특히 최근의 일을 잊어버리는 단기기억력이 떨어지고, 이전엔 잘하던 일을 갑자기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경도인지장애는 건망증과 치매의 중단단계로, 정상적인 노화와 알츠하이머 치매의 중간상태를 말한다.
미국의 한 치매병원에서 경도인지장애 환자 270명을 10년 동안 추적 관찰했더니, 이들 중 10∼15%가 매년 치매로 진행됐다. 또한 6년간 80% 정도가 치매로 진행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방수칙 알아두자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질증, 심장병 등 성인병이 생기지 않도록 하거나 이미 이들 병이 있는 경우에는 잘 관리해야 한다.
평소 두뇌를 많이 사용하면 인지기능의 저하나 장애,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텔레비전만 보는 것보다는 책을 읽거나 외국어를 배우고 바둑, 퍼즐 등을 맞추는 것이 낫다.
두뇌활동과 함께 적당한 신체 활동을 해준다. 특히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면 치매 예방에 좋다. 40분 이상 빨리 걷기를 1주일에 적어도 5회 이상 한다.
또한 사회 활동을 같이 할수록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사회활동은 뇌의 기능을 촉진시키고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활발히 해준다.
균형 잡힌 영양도 중요하다. 뇌가 제 기능을 하도록 규칙적으로 식사하되, 골고루 먹는다. 또한 비타민 C와 E처럼 산화를 방지하는 데 좋은 영양소가 많은 식품을 신경 써서 섭취한다.
술, 담배는 멀리하는 것이 좋다. 과음이나 폭음을 자주 하면 인지장애가 찾아올 수 있다.
비만이라면 건강 체중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비만도 치매 발생위험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비만인 사람이 3년 후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정상 체중인 사람에 비해 1.8배 높다고 한다.
우울증이 있으면 잘 치료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된다. 특히 노년기의 우울증은 치매로 혼동되거나 서로 동반, 악화시킬 수 있어 치매 예방과 치료에 매우 중요하다.
머리 부위는 다치지 않도록 한다. 교통사고 등으로 머리에 충격을 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기억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약물의 부작용으로 치매 증상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불필요한 약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성병에도 주의한다. 매독 치료가 늦어지면 신경매독으로 진행돼 치매증상을 보이고, 에이즈 역시 HIV 바이러스가 나중에는 뇌까지 침범해 치매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만약 기억력이나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등 이상 증상이 보이면 조기에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까운 보건소를 찾으면 60세 이상 노인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무료로 치매검사를 받을 수 있다. 가벼운 치매의 경우에는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인지치료 등의 치매 관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유제춘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교수
알츠하이머 체크리스트
초기에는 약속을 자꾸 잊고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말기가 되면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등 증상이 심해진다. 해당되는 내용에 표시해 보고, 여러 항목에 해당된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초기
□ 귀한 물건을 둔 장소가 기억이 안 난다.
□ 약속을 자꾸 잊는다.
□ 같은 내용의 말이나 질문을 반복한다.
□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한다.
중기
□ 새로운 장소에 가면 길을 잃는다.
□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나 금방 했던 일을 까맣게 잊는다.
□ 돈 관리나 가사일, 가전제품 사용 등을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 움직임이 느려지고 자세가 불안정하다
말기
□ 생일이나 고향, 자녀의 이름 등 간단한 것조차 모른다.
□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어진다.
□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말을 안 한다.
초기에는 약속을 자꾸 잊고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말기가 되면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등 증상이 심해진다. 해당되는 내용에 표시해 보고, 여러 항목에 해당된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초기
□ 귀한 물건을 둔 장소가 기억이 안 난다.
□ 약속을 자꾸 잊는다.
□ 같은 내용의 말이나 질문을 반복한다.
□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한다.
중기
□ 새로운 장소에 가면 길을 잃는다.
□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나 금방 했던 일을 까맣게 잊는다.
□ 돈 관리나 가사일, 가전제품 사용 등을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 움직임이 느려지고 자세가 불안정하다
말기
□ 생일이나 고향, 자녀의 이름 등 간단한 것조차 모른다.
□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어진다.
□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말을 안 한다.